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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읽다>(사계절)는 국어 교사인 서현숙이 한 해 동안 소년원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보낸 국어 수업 이야기다.
▲ 서현숙이 쓴 <소년을 읽다> 표지 <소년을 읽다>(사계절)는 국어 교사인 서현숙이 한 해 동안 소년원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보낸 국어 수업 이야기다.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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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읽다>(사계절)는 국어 교사인 서현숙이 한 해 동안 소년원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보낸 국어 수업 이야기다. "다르게 살고 싶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그저 소년"인 그들과 사계절을 보내며 마음을 나눈 일기다.

그가 만난 "쓰레기", "인간 말종"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 소년들은 작은 일에 웃고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일 줄 아는 "수다쟁이 학생"들이다.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는 '투명인간'으로 살아가기를 강요받으며 자신을 돌볼 기회를 잃어버린 아이들이다. 서현숙은 그들이 '우리 곁'에서 '좋은 삶'을 욕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쓴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줄곧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밀려오는 졸음과 창문 밖 세상에 정신 팔려 같은 공간에 있는 선생님과 친구들 이야기가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듯했다. 그러다 그만 책 마지막 쪽에 있는 <까대기>를 쓴 만화가 이종철의 추천글까지 지나버리고 말았다. 그는 소년원 국어 교실에 초대된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소년원 아이들이 책에 빠진 이유 

낯선 소년원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국어 수업으로 들어가는 철창을 여는 '철컹철컹' 소리도 희미하게 듣고 말았다. 팔다리에 문신으로 물고기 서식지를 만든 근철이가 무슨 시를 외웠는지 놓쳤다. '블라인드 신비주의' 동아리가 성공했었는지 실패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국어쌤'을 신처럼 떠받들던 강준이가 밖으로 나간 후 선생님께 보낸 편지에 학력 인정 서류만 달랑 들어 있었다는 이야기에도 그의 안부를 건성으로 물었다. 소년들의 좋은 삶을 위해 사회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강조도 귓등으로 흘렸다.

'도대체 저 학생들은 무엇 때문에 책에 빠져들었을까?' 관심은 온통 이 질문에 매달렸다. 2시간 영화도 너무 길어 20분짜리 몰아보기 영상으로 대신하는 시대인데. 시를 외우고 책을 읽으며 깔깔거리는 소년들, 그들에게 감동하는 교사라니! 이것이 내가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빠져들었던 '딴생각'의 정체다. 산만한 허튼짓은 결국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며 교실 안과 밖에서 벌어진 서사와 등장인물들의 풍부한 감정선을 읽지 못한 변명거리를 찾는 데로 이어졌다.

내가 만난 변명이자 소년원 학생들의 무섭도록 시린 집중력의 원인은 두 개의 장면에 닿았다. 굳이 찾았다기보다는 그냥 만났다. 고병권이 쓴 <묵묵>과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이다.
 
"수십 번이고 똑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말해준 야학 학생들 덕분에 겨우 몇 마디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알아차린 것 하나. 세상에 목소리 없는 자란 없다. 다만 듣지 않는 자, 듣지 않으려고 하는 자가 있을 뿐이다." (고병권, <묵묵>, 9쪽, 돌베개)
 
고병권이 노들 야학에서 장애 학생들과 철학 수업을 하며 깨달은 것을 쓴 말이다.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애쓰지만 많은 이들은 힘을 가진 큰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며 정작 애쓰는 사람들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사람들,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기는커녕 일터에서 쫓겨나는 이들이 아무리 크게 외쳐도 경찰 벽과 언론의 무관심에 갇혀 그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재벌 2세 마약 소식이 노동자 죽음보다 크게 기사화된다. 이런 사회에서 '목소리 없는 사람'은 없지만 '듣지 않으려는 자'는 있다는 고병권의 말은 사람을 대할 때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편견 없이 그들이 온몸으로 보내는 신호에 집중하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래야 한다는. 편견이 덮치기 좋은 소년원이라는 벽이 아닌 소년에 집중한 국어 선생님이 소년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확성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사람은 배우고자 할 때 자기 자신의 욕망의 긴장이나 상황의 강제 덕분에 설명해주는 스승 없이도 혼자 배울 수 있다."(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29쪽, 궁리)
 
'무지한 스승'이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법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지적으로 평등하다". 이렇게 주장한 '무지한 스승'의 말이다. '지식'과 '지도', '설명' 대신 '배우려는 의지'를 북돋워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많이 알고 잘 아는 사람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학생을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게 되는 순간 배움은 멈춘다.

학생을 자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평등하게 대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학교가 아니어도 일을 배우려는 사람을 가르치는 이가 자신과 같은 무게로 존중하기는 어렵다. 이 어려운 일이 랑시에르가 말하는 '스승 없이도 혼자서 배우는' 학생을 만드는 비밀이다. 학생들은, 배우는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가르치는 사람, 선생들이 자기를 존중하는지 아닌지를 느끼고 알아챈다. 아마도 소년원 안 국어 교실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의 분위기가 흐르고 있지 않았을까?
 
"주제를 정하고 한 달 동안 정성을 들인 수업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얼마만큼 끼쳤을까. 드라마나 영화 같은 극적인 변화, 그런 것은 없다. 그러면? 미풍 같은 것 아닐까? 그저 평소에 불어오던 바람과는 아주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결의 바람이 뺨 한쪽에 살짝 닿았다가 스쳐 갔을 것이다. 딱 그 정도였으리라. 변화시킬 수 없음이 이곳에서 나의 몫이다."(<소년을 읽다>, 101쪽)
 
"변화시킬 수 없음"이 자기 몫이라는 글쓴이의 겸손함이 '너희도 나랑 똑같은 존재의 무게를 지닌 중요한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소년들에게 다가갔을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짐작한다. 책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어설픈 독자의 결론이다. 제대로 된 교실 수업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책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태그:#소년을 읽다, #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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