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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고양이도 불면증이 있을까? 너무 잘 잔다. 프로 수면러.
▲ 잠자는 고양이 나처럼 고양이도 불면증이 있을까? 너무 잘 잔다. 프로 수면러.
ⓒ 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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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부신 햇살이 아침을 알린다. 나는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있다. 하루만큼 늙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맞춤과 코맞춤을 한다. 나와 고양이와의 베드신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두 마리의 눈곱을 떼어주고 작고 약한 몸을 골고루 쓰다듬어준다. 한참을 골골송을 들으며 오늘도 서로 이만큼 건강함에 감사한다.

오래전 '버킷리스트'가 유행이었다. '동물과 같이 살기'를 적은 기억이 난다. 언제부터인가 왜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동물과 함께 사는 인간을 이상적으로 생각했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의 숙명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취미와는 다른 층위의 소명의식 같은 것이랄까. 너무 거창한가.

'나만 없어 고양이'라는 유행어가 있다. 그때는 고양이 유튜브의 조회수가 몇백만인 시대가 올 줄 몰랐을 때이다. '휴머니멀'이란 신조어는 당연히 없을 때이다. 버킷리스트란 것이 본래 미래에나 생길 법한 신조어스러운 꿈이 들어가야 뭔가 있어 보이는 법이다.

유기묘를 입양했다. 그다음 해 역시 유기묘를 둘째로 입양했다. 그렇게 나는 집사가 되었다. 퇴근할 때마다 반겨주는 고양이를 보며 하루의 지친 몸과 영혼을 위로받았다. 그 후 이른 은퇴를 했고 재택근무 프리랜서를 하고 있다. 일할 때 고양이들이 옆에 있는 것이 너무 좋다. 출근만 하면 꿈꿨던 장면이 현실이 된 것이다.

요즘은 코로나 시국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요 두 달간은 일체 외출이 없었다. 책도 있고 넷플릭스도 있고 자수도 하고 홈트도 한다. 화분들도 나와 함께 지내지만 고양이라는 존재는 그 어떤 것보다 대체 불가 생명체이다. 우리 고양이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동물과 살기의 본질은 나보다 약한 생명을 보살피는 사랑, 바로 ‘생명애’인 것 같다.
▲ 둘째 고양이 입양 동물과 살기의 본질은 나보다 약한 생명을 보살피는 사랑, 바로 ‘생명애’인 것 같다.
ⓒ 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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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존엄성이 인간에게만 있다는 말인가. 고양이가 얼마나 존엄한지를 알아차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 누구나 안다. 고양이의 호불호와 무관하게 이 생명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 약하고 작은 생명이 내 생을 이어가게 하는 동력이 되고, 나는 또 그 동력으로 내 삶과 더불어 더 작은 생명을 보살핀다. 동물과 살기의 본질은 나보다 약한 생명을 보살피는 사랑, 바로 '생명애'인 것 같다. 인간 대 동물이 아니라 생명 대 생명으로서 앞뒤 위아래를 구분 지을 수 없을 것 같다. 마치 태극무늬처럼. 우리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커피를 끊었다. 아니 끊어야 할까 보다. 커피를 사발로 들이붓고도 잘 잤던 내게, 말로만 듣던 불면증이 찾아왔다. 마치 잘못 온 택배처럼. 우리는 어느새 함께 인생의 중년을 넘어가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쓴 커피 없이 인생을 논해야 하고 우리 고양이도 똥꼬 발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활동이 많이 줄었다.

나처럼 고양이도 불면증이 있을까? 너무 잘 잔다. 프로 수면러, 부럽다. 너무 평화롭다. 자고 있는 우리 냥이를 보고 있으면 '인간의 고도로 발단된 지능과 문명이 꽤 부질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를 불러들이도록 자연을 파괴하느라 너무 할 것이 많았던 우리는 과연, 고양이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바쁘게만 살지 말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만 같다.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이 무언지 알 것만 같은 순간이다. 잠든 고양이를 보고 있을 때 말이다.

궁극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내가 고양이에게 팔베개를 해줄 수 있는 그 시간. 이 특권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성공한 인생이다. 불면증에 불만 없다.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내가 고양이에게 팔베개를 해줄 수 있는 그 시간.
▲ 팔베게 고양이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내가 고양이에게 팔베개를 해줄 수 있는 그 시간.
ⓒ 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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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체온은 인간보다 2도가 높다고 한다. 내가 고열에 몸살이라도 나면 고양이는 자신보다 더 따뜻한 나를 파고든다. 혼자 살면서 아픈 날은 더러 있지만 꼭 오늘을 못 넘길 것만 같이 호되게 앓는 날이 있다.

'오늘 밤 내가 죽으면 우리 고양이들은 어떡하지? 사료를 다 먹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먹을 게 없을 텐데. 내가 죽은 것도 모르고 자는 줄만 알고 밥 달라며 계속 깨울 텐데.' 대답 없는 내 곁에서 우리 고양이들이 굶고 있을 상상을 하니 주책맞게 눈물부터 글썽인다. 만일에 그런 일이 진짜 벌어진다면 어떻게든 구조될 때까지 어서 나를 먹고 우리 고양이들이 살아있어 주길 나는 정말 바란다.
 
"고양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인간을 섬겨야 한다는 정설을 깨뜨리러 세상에 왔다."
-폴 그레이 (랩 메탈 락밴드 'SlipKnot' 베이시스트)
 
인류의 역사는 지독한 야만성 속에서도 꿋꿋이 약한 생명에게로 공감을 꾸준히 넓혀가는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흑인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고 여성은 마침내 참정권을 쟁취했으며 아동에겐 이제 노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 모두가 처음부터는 아니란 걸 누구나 안다.

인간은 인간을 제물로 바쳤다가 그것이 동물이었다가 이젠 어떤 생명도 제물로 바치지 않는다. 인간이 비로소 동물에게까지 공감하기 시작하였다. 나 또한 나의 사유가 인간에서 동물로, 환경과 생태로, 지구와 우주로 확장하는 것을 느낀다.

함께 지구에 와서는 인간이 최상위 포식자가 된 것은 우연일 뿐, 오만하지 말지어다. 언젠가 전 지구인이 기후 위기를 맞이하여 사상 유례없는 고난을 겪더라도, 혹 지구를 버리고 다른 별로 이주하는 날이 오더라도 약자에 대한 공감의 확장은 한 걸음 한 걸음 용기 있게 나아가길 바란다. 약자를 보살피는 인간의 신성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도 인간은 여전히 잔인하고 폭력적이지만 나는 인간을 믿는다.

우리 고양이들은 양쪽에서 팔베개를 하고 잔다. 나는 불편한 십자가 자세로 잠들지만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십자가를 베고 나를 사랑으로 구원할 그 이름은 '고양이'. 주어진 생을 오롯이 그대로 다 살고 나중에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잘 먹고 잘 쉬다 간다'는 눈빛이었으면 그것으로 바랄 게 없겠다. 나에게 고양이는 오직 '사랑'이고 오로지 '사랑'이며 다만 '사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반려동물, #유기묘, #불면증, #생명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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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두 마리 고양이 집사입니다. 오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부모님과 밭농사일을 하고 글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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