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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삶이라는 단어가 '사는 일'이라는 걸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느끼게 된 거 같다. 알게 모르게 아등바등하며 살아온 지금까지도 삶은 녹록지 않음이 여전하다. 이러한 나의 영혼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본능적으로 찾아 나서게 된다.

반항과 일탈과 포기의 충동을 다스릴 통제력을 가진 것은 무엇일까. 무언가 대단한 게 있을 것이라 기대할지 모르지만 그런 건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노래 부르기. 소소하게 노래 부르기. 이것이 나를 정화시키는 일등공신이다.

나의 성장기에는 음악 교과서의 노래를 부르기를 자주 했고, 어느 가정에나 한 권쯤 있을 법한 대중가요 모음집의 노래를 몇 시간씩 부르는 것을 즐기며 감정을 추스렸었다.

때때로 부모님께 야단을 맞고 난 뒤에도 나의 입 안에서는 노래가 중얼거려졌었다. 그럴 때는 스스로 개념이 없는 아이 같은 생각을 했었고 그러면서도 중얼중얼,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새 야단을 맞을 때의 나쁜 기분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평온해져 있는 걸 알아차렸다.

내게는 일탈의 용기가 없었지만 만약에 노래 부르기를 하지 않았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건전하면서도 비용이 들지 않는 이 방식은 변덕쟁이처럼 나를 떠나는 일 없이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와 함께 했다.

 
ⓒ 남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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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창력이 좋지 못하다. 다행히 음치도 아니다. 초등 5, 6학년 때 학교 합창반을 하며 지역 단위 합창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는 걸 기억해보니 썩 잘하는 실력은 아니어도 음치는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특별히 어려운 음 구성이 아니면 웬만큼 부를 정도 수준의 가창력은 된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나의 노래 취향이다. 부르기 어려운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잘 부르지도 못하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쉽다고 느껴지는 노래는 수준이 낮은 노래라는 생각을 했었다.

몇 번 들으면 따라 부를 수 있으면서 가슴에 와 닿는 노래도 많은데 꼭 복잡하고 부르기 어려운 노래를 좋아했다. 가창력이 따라주질 않으니 남들 앞에서는 차마 부르지도 못한다. 혼자 있을 때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다가 부족한 가창력에 실망하기도 하고 종종 한탄과 푸념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노래를 잘하지 못해도, 남에게 칭찬받을 일이 없어도 노래 부르기는 나를 치료해주는 최고의 치유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던 내가 노래 부르기를 잊고 가슴이 점점 딱딱해지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하며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팍팍한 일상을 견디어 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자연사랑을 부르짖는 환경 합창단에 가입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노래를 부르는 기회가 생겼다. 선율의 흐름을 느끼는 시간을 거듭하면서 한동안 잊고 있던 멜로디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설립한 오케스트라 시스템인 엘 시스테마 효과가 내게도 조금씩 일어났다. 합창하는 날이 기다려지고 어떤 노래를 부를지 기대하면서 아침을 시작하기도 하고, 하루하루가 풍요로워지고 기분이 가벼워지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엘 시스테마의 기적은 내가 아닌 나의 지인에게 찾아왔다. 나의 소개로 지인인 A가 합창단에 가입하게 되었다. A는 가족 관계를 힘들어하며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던 A가 합창을 하면서부터 나날이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합창을 시작하고 일 년여쯤 후에 A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합창하는 하루하루가 기다려지고 합창하는 날은 하루라도 즐겁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했다.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혼자만 즐거운 것이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그런 이유로 가정으로 돌아가면 가족들에게 점점 더 잘해주게 된다고 했다.

그 후 A 부부를 만났을 때 예전과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휴일이나 틈틈이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에는 카페에 들러 맛있는 차를 마시며 부부간의 정을 쌓아갔다. 지인들과 여행을 다니기도 하면서 애정을 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전업주부로 지내며 예전에 내려놓았던 본인의 전공을 되살리는 기회도 생기게 되어 가족들의 지원을 받으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도 A 부부는 서로 간에 인정할 것을 인정하고 물러나야 할 부분에서 물러날 줄 알아 관계를 잘 다스리며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사실 A는 음악만을 느꼈던 건 아니었던 거 같다. 그전에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단체에서의 생활을 즐기며 거기에서 오는 밝은 에너지가 주변인들에게 표현되고 되돌아오는 긍정적 에너지를 온몸으로 만끽했던 거 같다. 여하튼 A는 합창단을 계기로 새로운 삶을 맞이하고 지금까지도 잘 유지하고 있다.

나는 어떤가? 내 마음이 무겁고 혼란스러울 때 노래 부르기를 떠올려 보자. 무거운 마음일 때에는 당연히 노래가 입 밖으로 나오기 힘들다. 그렇지만 부르려 애를 써본다. 부모님께 야단맞고도 노래를 중얼거리던 그 순간들을 떠 올리며 노래 부르기 효과를 기대한다.

아~ 마음이 무거워지기 전에 노래를 자주 불러서 스멀스멀 침투해오는 어두운 기분을 애초에 막아 버리는 게 훨씬 좋은 방법인 것을 명심하자.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사전 예방으로 밝은 기분을 유지하는 것에 주력해야겠다.

다시 노래를 불러보자. 그 옛날 감성을 되살려 어릴 적 부르던 '노을'이라는 동요도 좋고,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돌아오라 소렌토로'도 좋고, 대중가수의 인기곡도 좋다. 무엇이든 부르기 시작하면 멜로디가 이끄는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태그:#합창,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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