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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인터뷰·글 마르쿠스 베른센, 기획·편역 오연호)을 읽은 독자들이 '행복한 배움',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가작 수상작입니다.[편집자말]
 학교, 그리고 교실. 학교는 민주주의의 배움터지만 가장 비민주적이라는 모순을 안고 있는 공간이다. 이런 모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학교.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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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도 봄, 첫 담임을 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 선명합니다.

"선생님 이름은 김용만입니다. 축구를 좋아하고 여러분을 숫자로 평가하고 싶지 않아요. 하루라도 빨리 여러분의 이름을 외우고 싶어요. 해서 선생님이 부탁 하나 할게요. 혹시 지나가다 샘을 보면 인사하며 이름을 말해주세요. 선생님도 나름 노력하겠지만 여러분이 도와주면 더 빨리 이름을 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름을 외운 친구에게는 이름 안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때부턴 인사할 때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되요. 도와줄 수 있겠어요?"
"네!!!!!"


아이들의 대답은 우렁찼습니다. 흐뭇한 마음으로 교실을 나섰고 교무실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교무실에서 초임인 저에게 중견 선생님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시며 이런 조언을 하셨습니다.

"김용만 샘, 초반부터 아이들 너무 편하게 대하면 안되요. 애들이 교사를 만만하게 봐요. 초반에 잡아야 뒤로 갈수록 편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경어 쓰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세요. 후회할 수도 있어요."

"네"라고 답은 했지만 마음은 불편했습니다. '아이들을 잡으라니? 편하게 대하면 안 된다니? 아이들에게 경어를 쓰지 말라니...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전 지금도 수업시간 등 공식적 자리에선 학생들에게 경어를 씁니다. 쉬는 시간이나 개인적 만남에는 편하게 부르지만 수업시간 만큼은 경어를 씁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일반 학교에서 10년 근무하며 회의가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교사 생활은 이게 아닌데, 아이들은 끝없는 시험 스트레스와 성적 비교, 사교육에 내 몰리며 힘들어하는데, 난 아이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방학 때도 보충수업 나와야 한다고 말하고, 야간 자율학습 빠진 친구는 다음 날 혼내고, 성적이 나쁜 아이들이 방황하면 혼내고... 난 어떤 교사인가...'

자연스럽게 교육 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한국교육의 체질적 변화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려 애썼습니다. 결국 2014년, 경남에 최초로 생긴 공립 대안중학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과 너무 다른 학교 생활

대안학교는 아이들 뿐 아니라 저에게도 신세계였습니다. 이 학교는 아이들에게 성적이 1순위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수업과 규칙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외모, 복장으로 아이들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자율성을 강조했고 책임을 가르쳤습니다. '함께'를 경험케 했고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 배움을 주고 받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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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은 덴마크 교육에 관심이 많은 오연호 대표가 2017년부터 마르쿠스 베른센씨와 같이 기획한 책입니다. 덴마크의 훌륭한 교사는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소개합니다. 총 10명의 덴마크 선생님들이 각자의 교직관, 학생관, 꿈들을 보여줍니다.

읽으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릅니다. "그래, 내가 궁금해했고 고민했던 것이 바로 이거였어. 덴마크에서 가능하다면 우리나라, 아니 우리 교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거야." 저는 이 책을 읽고 희망을 다시 품게 되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시험 자체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단순히 암기하거나 그대로 따라 하는 시험이 싫은 거죠. 나는 이것을 '앵무새 시험'이라고 불러요. 학생들은 자기가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선생님의 말을 그냥 흉내 낼 뿐이에요. 그 주제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 없이 그냥 따라 하면 되는 거죠. 나는 이런 시험을 통해 학생들이 뭔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험을 위한 공부일 뿐 그 주제에 대한 깊은 지식은 얻을 수 없죠. 그래서 학생들에게 실질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는 시험이라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업무와 상관없는 주제로 시험을 보게 한다면 어떤 직원이 좋아하겠어요? 학생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 <삶을 위한 수업> 본문 55쪽

한국의 시험은 대부분 서열 매기기가 주목적입니다. 내신 점수를 평가하고 수능 등급을 매겨 점수에 맞게 진학을 합니다. 진학의 결과가 사회생활 시작에도 많은 영향을 줍니다. 잘 외운 학생이 높은 점수를 받는 현 시험은 한계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공감합니다. 하지만 개선되지 않습니다. 숫자 외에 누구나 인정할 만한 공정한 기준 합의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에 의문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높은 점수를 가지고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과연 그 자리에서 그만큼의 역할을 하는가? 반면 낮은 점수로 대학조차 가지 못한 학생들은 사회 첫 걸음을 딛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면 안되는가? 그들은 낮은 자리에서 시작해야만 하는 것인가?
 
"시험을 봐야 한다면, 교사와 학생이 지난 몇 주 동안 했던 수업이 그 시험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선후가 바뀌어서는 안 되죠. '시험을 위한 공부'가 되면 안 됩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시험이 좌우하게 되면, 교사는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도 제대로 된 학습 동기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알아갈 것인가'가 아니라 '정답을 맞히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가는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가장 나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걱정스럽게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아직도 이런 방법으로 교육을 하고 있어요.

학생들은 이런 교육을 지루해합니다. 교사에게도 지루하죠. 이런 식의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오로지 시험을 준비할 목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교사도 학생도 아닌 다른 사람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하는지 결정하는 셈입니다. 그러니 동기와 의지가 사라지죠. 결과적으로는 배우는 것도 별로 없어요. 시험을 위해 얻은 지식은 시험이 끝나면 금방 잊어버리니까요." - 본문 55-56쪽

호우키에르 선생님의 말씀을 우리는 쉽게 넘겨선 안 됩니다. 시험을 위한 지식은 시험이 끝나면 금방 잊힙니다. 누군가에게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좋은 선생님이 계신가요?'라는 질문에 "어떤 단원의 내용을 이렇게 가르쳐 주셔서 고마웠어요"라고 답하는 분은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주로 학생들이 기억하는 교사는 "제가 이런 상황일 때 이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제 편을 들어주셨어요. 제 이야기를 들어 주셨어요. 친절하신 분이셨어요"라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가장 나쁜 가르침은 '너는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사가 반 학생들 모두에게 똑같이 높은 기준을 정해준다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아이들이 패배자로 남지 않겠어요? 그 패배감이 아이들의 의욕을 빼앗을 거예요. 영어뿐 아니라 모든 공부를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약해지고 우울해집니다. 교사가 높은 성취 기준을 일률적으로 제시해서 학생들을 경쟁하게 만들면 소수의 학생들만 교사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어요. 결국 교사는 10퍼센트의 승자만 돕게 되고 나머지 90퍼센트의 학생들은 점차 약해질 거예요. 그러지 말아야죠. 우리 교사들은 모든 학생들이 지금보다 점점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현재 자기가 서 있는 사다리에서 한 단 한 단 올라가고 있다면 그 학생은 매우 훌륭하게 공부하고 있는 거죠. 모두가 도달해야 하는, 하나의 정해진 목적지는 없어야 합니다." - 본문 86쪽 

영어와 과학을 가르치는 트레크로네르스콜렌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그는, 학생들은 모두 개인차가 있고 발걸음이 다른데 성취 기준을 일률적으로 갖다 대는 것은 소수의 학생 외에는 좌절감을 준다고 말합니다. 현장에서 저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다면 10퍼센트의 승자 학생들은 행복한가? 안타깝게도 성적이 높은 학생들은, 10퍼센트를 유지하기 위해, 더 높은 점수를 목표로 하며 힘겨워했습니다. 결국 만족하는 학생은 적었습니다. 각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의 만남 과정을 배려하지 않은 채, 똑같은 성취기준 잣대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갖다 대는 것은 폭력일 수 있습니다. 모래알의 모양이 모두 다르듯, 아이들의 능력도 제각각임을 존중해야 합니다.

안데르스 울랄 선생님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이 와닿습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너는 매우 소중한 사람이야'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영어 실력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전부가 아니며 영어 능력에 상관없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엄하고 가치 있음을 느끼게 한다. 수업을 받는 학생 이전에 한 인간으로 대하려는 교사의 마음이다." - 본문 88쪽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학교

덴마크 학교에서는 민주주의를 교과서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 생활 속에서 배웁니다.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는 행동, 친구가 말할 때 조용히 듣는 자세, 누구든 의견을 낼 수 있으나 결정은 대화를 통해 합의하는 것 모두가 학교 생활 속에 일어납니다.

여기서 교사의 역할은? 단지 기다려주고 참견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사도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강요하진 않습니다. 결정은 아이들과 함께합니다. 민주주의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학교에 참여하고 모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학생회에서 결정된 내용이 교무실에서 반려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산이 없다, 현실 가능성이 없다. 위험해서 안 된다'는 등의 논리로 말입니다. 결국 학생들은 기획자의 역할만 할 뿐 최종 결정은 학교장이 합니다. 같이 논의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학생들은 미성숙하다'는 전제는 학생들의 성장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실패를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실패는 학교에서 많이 경험해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가 허용적인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학교가 학생들을 관리하는 기관이 아닌, 학생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시험 과목으로 배우는 것과 생활속에 체험하며 배우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삶을 위한 수업>을 다 읽고 나니 저는 힘을 얻었습니다. "왜 한국 학교는 이럴까? 왜 한국 교육은 바뀌지 않을까?"라며 불평만 한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 한 명, 한 명의 마음가짐이 중요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이상한 교사가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나야 할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 현실에서 방향을 못 찾으시는 선생님들, 자녀분의 성적 등으로 고민하시는 부모님들, 학교 생활 자체를 힘겨워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곧 있을 시험, 곧 진학할 학교, 곧 취직할 직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삶의 위한 공부, 삶을 위한 방향, 내 삶을 찾으려는 노력이 교육의 기본일 수 있습니다. 더 나은 것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해 온 지금의 학교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개인의 성공을 위한 학교가 아닌, 모두의 성장을 위한 학교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삶을 위한 수업>은 우리 교육에, 잔잔하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한국 교육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요?'

삶을 위한 수업 -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 오연호 (편역), 오마이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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