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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뉴스를 비집고, 급격히 떨어지는 출산율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이 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애를 낳겠다'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왜 그런지 혹은 아이가 꼭 있어야 하는지 등 출산에 대한 각계각층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결혼하면 최소 셋은 낳을 거야.'

철부지 학생의 꿈이었다. 나는 여전히 철부지 유부남이지만 다둥이 가정을 꿈꿀 만큼 비현실적이지는 않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린 아이들을 좋아했다. 교회에서 영아부 교사와 유치부 교사를 할 정도였으니까. 지금도 공원이나 길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오지랖을 부리기도 한다.

나는 2019년에 결혼했다. 아이를 좋아하지만 아이를 낳고자 결혼한 건 아니었다.

"자녀 계획은 없어?"
"좋은(?) 소식 기다릴게."


가족과 친구들을 비롯해 처음 만나는 이들까지, 우리 부부에게 위와 같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결혼 이후 출산에 대한 질문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에게 어떤 대학을 가느냐는 질문만큼이나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 같았다.

때로는 애정 가득한 축복으로 느껴져 감사했지만, 상황에 따라 불쾌하기도 했다. 우리는 컨베이어 벨트에 놓인 기분이었다. 결혼을 마친 우리는 자동으로 '출산'이라는 단계에 놓여 쏟아지는 질문에 응대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출산 단계에서 머뭇거리게 된 걸까?

출산 단계에서 머뭇거리는 이유
 
출산은 숫자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출산은 '생명'에 관한 문제다.
 출산은 숫자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출산은 "생명"에 관한 문제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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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우리 부부를 위해서다. 우리 부부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식탁에 마주 앉아 오손도손 식사한다. 식사 후에는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본다. 주말에는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시답잖은 수다를 떨기도 하고 근처 공원으로 손을 맞잡고 산책하기도 한다.

두 사람의 편의에 맞춰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때에 쉬고 원하는 때에 집안일을 할 수 있다. 출산 후에도 우리 두 사람에게 맞추어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하고 지금 누리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을까?

물론 셋이면 또 다른 차원의 행복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험가가 아니다. 다른 차원의 행복을 위해 모험할 생각이 없다.

둘째, 아이를 위해서다. 낳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서라니? 아이는 어쩌면 태어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삶의 기회를 갖는다는 건 행운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 시대에 흙수저로 태어나는 건 결코 행운이라 할 수 없다.

착취당하고 동시에 착취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태어난 아이들은 끝없는 경쟁 세계에 놓인다. 부모로서 사랑은 줄 수 있지만 아이의 행복은 보장할 수 없다. 어떻게 양육하고 교육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해야 할지, 경쟁이 없는 대안적 삶으로 인도해야 할지. 어느 쪽이든 자신이 없다.

게다가 지구와 대한민국 상황이 그리 밝지 않다. 대한민국의 어린이 인구는 줄어든다는데 범죄 피해아동의 수는 늘어만 가고 있다. 게다가 학자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지금 상태가 지속된다면 2050년에는 지구가 멸망한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런 땅에서 사는 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우리의 예측 불가능한 행복을 위해 아이에게 충분히 예상 가능한 고통들을 떠안길 수는 없다.

셋째,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일단 육아는 부부가 공동으로 부담해야 하지만 출산만큼은 여성이 부담해야 할 몫이 크다. 280일간 생명을 품고 있어야 하고 출산 이후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는 꾸준히 있다.

여성 직장인을 기준으로 볼 때 임신과 출산은 안전하지 않은 선택이다. 어쩌면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일이다. 여성뿐만이 아니다. 제도적으로는 남성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지만 실상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은 소수에 불과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민간부문의 남성 육아휴직자는 2만2297명으로 2019년 전체 육아휴직자(105,165명) 중에서 21.2%를 차지한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2019년 출생아 수가 30만2700명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남성 육아휴직자의 수뿐만 아니라 전체 육아휴직자 수는 절대적으로 적은 수치라는 걸 알 수 있다.

육아 휴직을 쓴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눈치와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게 현실이다. '육아휴직 의무제도'와 같은 강제적인 제도가 생기지 않는 이상 출산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요건 때문이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2019 대한민국 양육비 계산기' 링크였다. 한 명의 아이를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을 대략적으로 계산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를 낳으면 '모유만 먹일 건지, 분유도 먹일 건지, 일반 유치원을 보낼 건지, 영어 유치원을 보낼 건지'와 같은 항목에 응답하면 이에 따라 양육비를 계산해준다. 수많은 항목에 응답하는 동안 가상의 상황을 떠올려야 했다.

임신과 출산을 겪은 아내와 출산된 아이를 상상했다. 항목들을 보며 고민했다. 절약하는 마음과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오갔다. 하지만 두 마음은 공존할 수 없었다. 절약하게 되면 가족에게 '덜' 마음을 쓰는 것 같고 그렇다고 '가장 좋은' 항목을 선택하면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균형 있게 응답했다고 판단했다.

테스트 결과, 출산부터 대학 교육까지 총 3억9594만8000원이 나왔다. 어마 무시한 금액이었다. 놀라운 건 주거비와 기타 생활비는 제외된 금액이다. 물론 이는 정확한 비용은 아니다. 실제로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양육비는 천차만별로 달라질 테다. 하지만 대략적으로나마 양육비를 실감할 수 있었다.
 
테스트 결과, 출산부터 대학 교육까지 총 3억9594만8000원이 나왔다.
 테스트 결과, 출산부터 대학 교육까지 총 3억9594만8000원이 나왔다.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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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기 위해 애쓴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아이를 낳는 데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아이와 함께 살 주택, 기저귀, 분유부터 시작해서 아이의 교육 문제까지. 아이를 낳기도 전에 예상되는 문제가 산더미였다.

게다가 아이를 낳으면 예상치 못했던 변수들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올 게 분명해 보였다. 간혹 '낳으면 다 알아서 크더라'라는 말을 듣는다. 이 말만큼이나 무책임한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출산은 복권이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가정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는 앞서 언급한 이유들이 중요했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출산을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신혼부부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출산율에 집착할수록
 
아이를 좋아하지만 아이를 낳고자 결혼한 건 아니었다.
 아이를 좋아하지만 아이를 낳고자 결혼한 건 아니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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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는 지난 3일 주민등록 인구 통계를 발표했다. 2020년 출생자는 27만5815명, 사망자는 30만7764명이었다.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앞지르면서 인구가 감소하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이미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지난해 12월 제4차 저출산 고령화 기본계획(2021~2025년)을 내놓았다. 정부는 왜 이렇게 인구와 출산율에 목을 매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국가 경쟁력 때문일 것이다. 인구는 노동력이자 국방력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여러 제도를 통해 결혼을 장려하고 출산 가정을 지원한다. 실제로 많은 제도들이 생겼고 많은 신혼부부가 혜택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를 낳아 키우기엔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출산은 숫자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출산은 '생명'에 관한 문제다. 거리에서 홈리스로 죽어가는 사람,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시설'에서 죽어가는 사람, 아동학대를 받는 아이. 국가가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을 대하는 무심함과 무책임함을, 우리는 일상 속에서 공기처럼 느낄 수 있다.

국가가 출산율에만 집착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슨 희망을 꿈꿀 수 있겠는가? 누가 이 땅에서 아이를 낳고 싶겠는가? 출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때론 병들고 언젠가 죽는다. 이 모든 삶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국가경쟁력을 위해 출산율만을 운운한다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

적어도 이 시점에서만큼은 출산율에만 집착하여 한 '생명'을 숫자로 보는 국가를 위해 우리 가족을 희생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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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덜 폐 끼치는 동물이 되고자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씁니다. 채식, 도시 문제, 동물권, 주거권에 대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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