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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를 찾은 추모객들이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을 추모하고 있다.
 6일 오전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를 찾은 추모객들이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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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세 살의 현수는 미국 메릴랜드주 저먼타운 소재의 한 병원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죽음을 맞이했다. 부검 결과에 따르면 내부 장기 출혈, 두개골 골절, 이마의 멍과 함께 몸 여러 곳에서 상처가 발견되었다. 2013년 10월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현수는 양부의 폭행으로 숨졌다. 

현수는 입양된 지 석 달 만에, 서울 양천구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정인이는 271일 만에 양부모의 학대로 인해 짧은 생을 마감했다. 둘 다 홀트아동복지회에 의해 입양되었다. 1955년 설립된 홀트아동복지회는 현재까지 17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해외입양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며 한국 입양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곳이다. 이 아이들의 죽음은 단지 부모를 잘못 만난 불행 때문일까? 아니면 입양 시스템의 문제일까?

현수의 양부인 브라이언 오캘러핸(Brian O'Callaghan)은 이라크전 참전 이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오랜 기간 약을 복용해오고 있었다는 이유로 감형을 요구했다. 한국입양인 단체에 속해 있는 안나 레이 아모르(Anna Lei Amoro, 한국 이름 이난희)는 '현수의 사망은 입양기관이 입양 부모 자격 심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의 입양 실무메뉴얼에 따르면 입양 심사 과정에서 양친이 될 사람의 건강 상태(질병 유무,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 치료 경험) 등을 조사해야 한다. 정인이의 양모도 정신과 치료를 받은 기록이 있지만 법원은 이를 인지하고서도 입양을 허가했다. 정신과 치료 경험이 있다고 해서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입양기관과 법원은 이에 대한 지침을 명확히 하고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 

2012년 처음 제정된 입양특례법 제25조(사후서비스 제공)에 따르면 입양의 사후관리는 지속해서 이루어지되 1년간은 의무적으로 이행되어야 한다. 입양기관은 1년 내 4회 사후관리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하며 최소한 2번의 가정방문(필수)이 요구된다.

가정방문 시 아동의 신체 발달 역시 확인 사항이다. 또한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연계하여 입양 부모에 대해 학대 신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지체 없이 수사기관이나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신고하여야 한다.

입양기관은 왜 신고하지 않을까?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최근 공개한 보건복지부의 '서울 양천구 입양아동 사망 사건' 자료에 따르면 홀트는 아동보호 전문기관으로부터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발생해 지난해 5월 26일 두 번째 가정방문을 실시했다.

정인이의 몸에서 상흔을 발견했지만 "평소 아토피와 건선이 있어 생긴 상처"라는 양부모의 말을 믿고 별다른 후속 조치 없이 "아동 양육에 보다 민감하게 대처하도록 주의를 주고 아동을 섬세하게 보살펴 줄 것을 당부"하였다고 한다.

홀트는 6월에도 아동 전문기관을 통해 정인이가 2주간 깁스를 했고, 7월에는 가정방문을 통해 양모가 정인이를 자동차에 30분간 방치한 사실을 인지했으나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고 "아동의 안전을 위해 가정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또한 9월에도 피해 아동 체중이 1kg쯤 감소해 아동 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았으나 양모가 거부한다는 이유로 가정 방문을 10월 15일로 미뤘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인 입양기관은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에서 이를 신고하는 것이 의무이지만, 홀트는 아동학대 가해자로 의심되는 양부모에게 아동을 잘 보살펴 줄 것을 당부하는 선에서 그쳤다. 

홀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 번의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경찰은 세 번 모두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종결지었고 아동보호기관의 대처도 미흡하였다. 하지만 정인이의 아동학대 정황을 포착하고 이를 신고한 어린이집 선생님들, 소아과 의료진과 같은 신고의무자들과 달리 신고의무자이자 사후서비스 담당자인 입양기관은 왜 신고를 하지 않은 걸까? 만약 지금 어린이집이나 병원을 가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정인이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신고를 통해 이 입양아동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입양기관뿐이다.

국내 입양에는 인력이나 자원이 적절히 투입되지 않아
 
지난 12월 23일 국내입양인연대 등이 서울 마포구 홀트아동복지회 앞에서 '홀트아동복지회 부실한 입양절차 책임지고 사과'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지난 12월 23일 국내입양인연대 등이 서울 마포구 홀트아동복지회 앞에서 "홀트아동복지회 부실한 입양절차 책임지고 사과"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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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2016년 한국 입양기관 담당자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담당자는 2007년부터 정부 시행으로 국내 입양 우선 추진제도와 해외입양 수를 매해 10%씩 줄이는 쿼터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이는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국내 입양에는 인력이나 자원이 적절히 투입되지 않아 실무자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입양아동의 수가 너무 많다고 했다. 본인도 아이들을 잘 돌보고 싶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한 담당자는 이윤이 남지 않는 국내입양과 달리 입양 부모가 많은 금액을 지불하는 해외입양을 입양기관은 선호한다고 했다. 담당자의 말 이외에도 입양기관이 해외입양을 우선시하는 정황은 2008년 입양기관 특별감사(08.11.20)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국내 입양 우선 추진 제도 하에서 입양기관은 입양대상 아동이 입양기관에 입소한 날로부터 5개월 동안은 우선적으로 국내 입양을 추진토록 하고 있으나, 홀트아동복지회는 입양대상 아동에 대해 국내 입양 우선 추진 기간에 국내 입양은 시도하지 않고 국외 입양을 추진하고, 국외에 입양된 아동의 국내 입양 추진 기록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 정황이 밝혀졌다. 

국내 입양 우선 추진 규정을 어긴 것은 홀트뿐만이 아니다. 홀트와 함께 국내 3대 입양기관인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도 이 규정을 어긴 것으로 2014년 조사 결과 나타났다. 2014년 남인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입양기관 지도 점검 결과 및 조치사항'을 보면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2012년 8월 이후 홀트는 17건, 대한사회복지회는 108건, 동방사회복지회는 1건의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렇게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해외입양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만나본 몇몇 입양기관 담당자들과 입양인 단체들은 아기 수출로 인해 벌어들이는 이윤 창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홀트아동복지회와 연계해 해외입양을 주선하는 홀트 인터내셔널(Holt International) 홈페이지에 따르면, 한국 아기를 입양하기 위해서 양부모가 지불하는 비용은 한화 4200~6000만 원(3만9135~5만5530달러)이고 중국 아기를 입양하는 경우에는 3500~4400만 원(3만2750~4만475달러)이다. 

필자가 만나본 해외 입양인 중의 많은 수가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수가 어린 시절에 겪은 양부모의 학대로 인한 상처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입양인들이 한국 친생 가족을 찾고 싶어 하지만, 입양기관으로부터 발급받은 입양서류가 사실과 달라 가족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이들은 단지 아이들이란 이유로 행복할 수 있어야

입양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근거로 하여 입양기관의 사후관리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바로잡기 위해 2012년 입양인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입양특례법이 제정되었지만 입양기관의 미흡한 입양 전후 관리는 2014년 현수에게도 2020년 정인이에게도 일어났다. 

한국전쟁 후 전쟁고아와 당시 사회에서 용인하지 못한 혼혈아들 때문에 해외입양이 시작되었고 70년대와 80대를 걸치며 입양은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입양기관은 이윤 창출을 위한 곳으로 전락하였고 국가도 외화를 벌어들이는 입양기관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취하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가 발전한 현재에도 현수와 같은 아이들을 해외로 더 보내기 위해 정인이와 같은 아이들의 국내 입양 전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인이와 현수의 죽음은 불운이나 사고가 아니다. 입양기관이, 경찰이, 국가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막아야 했던 죽음들이다. 아이들 죽음의 원인 중 하나는 한국 사회가 오래도록 묵인하고 있던 입양시스템의 문제다. 입양은 이윤추구가 아닌 아동복지와 아동권리를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 거대해질 대로 거대해진 입양기관의 자체적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국가의 적극적 제재 및 조치, 규제와 함께 시민들의 감시로 입양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

아이들은 단지 아이들이란 이유로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윤추구가 목표인 민간기관(입양기관)에 아이들의 행복과 안전을 맡겨둘 수는 없다. 이 글은 입양기관의 시스템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썼기 때문에 입양 부모에 관해서 초점을 맞추었지만, 아동학대는 친부모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다.

아이들은 입양 가정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입양 부모, 친생부모의 문제가 아니다. 미성숙하고 바르지 못한 부모들의 문제이다. 아이들의 행복과 안전을 부모의 사람됨에만 맡겨두기에는 너무 많은 아동 학대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다시는 아이들이 학대받고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태그:#입양, #홀트아동복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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