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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서 5일 오전 추모객들이 방문해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추모함에 쌓인 눈을 걷어내자 정인이의 생전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인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서 5일 오전 추모객들이 방문해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추모함에 쌓인 눈을 걷어내자 정인이의 생전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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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16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정인이가 죽기까지, 한국 사회의 어떤 아동 보호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은 세 차례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도 무혐의 처분했고, 아이와 부모를 분리조치 하지 않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역시 세 차례 현장조사를 하고 작성한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서'에서 9점 만점에 각각 3점, 2점, 2점을 줬다(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 4점 이상이면 즉각적인 아동보호 조치를 고려할 수 있지만, 아보전의 판단은 그렇지 않았다. 

세 번째 신고 때 정인이를 진료한 소아과 의원의 의사가 '구내염'이라는 소견을 내면서 아동학대가 입증되지 못했고, 정인이 입양을 담당한 홀트아동복지회 또한 두 차례 학대 사실을 파악했지만 가정 방문을 하지 않고 양부와 통화만 했다. 이렇게 정인이를 살릴 수 있는 기회들은 허무하게 날아갔다.

이 때문에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정인이 사건'이 보도된 이후,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 역시 3일 동안 무려 11개의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형량강화, 신상공개, 부모와 아동 '즉시 분리(원스트라이크 아웃)' 등을 담았다. 여야는 8일 '정인이법'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방송이 나간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속전속결로 입법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법이 개정되면 '제2의 정인이 사건'을 막을 수 있을까? 아동 학대 사건을 전문적으로 담당해온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발 진정하세요!!"라며 국회가 '여론 잠재우기식 무더기 입법'을 한다고 썼다. 지금의 갑작스러운 입법이 오히려 아동학대를 막는 현장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권한과 책임을 정확하게 나누고, 매뉴얼대로 일하게 만드는 것이 법을 순식간에 개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쉼터' 등의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즉시분리를 추진하는 것이 해법이 아니며, 오히려 정작 꼭 분리되어야 할 아이들이 분리가 안 되는 상황을 초래해 "아이들이 또 죽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형량 강화'의 경우, 높은 형량을 인정할 정도의 엄격한 증명책임이 요구되므로, 오히려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상 불가능한 아동학대의 경우는 증거부족으로 불기소나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도 국회의원들이 '현장을 망쳐놓는 입법'을 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며 "국민적 공분이 있을 때 형량강화나 신상공개를 이야기할 게 아니라, 아동학대 현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형량 강화는 아동학대 해법이 아니다"
 
김예원 변호사
 김예원 변호사
ⓒ 박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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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에서 아동학대 형량을 두 배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이유가 궁금하다.

"형량을 강화하면 그 형량을 인정할 정도로 엄격한 증명책임이 발생한다. 동시에 가해자도 극렬하게 부인을 하게 된다. 증거가 부족해서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사건은 더욱 더 혐의의 입증이 어려워진다. 장애인 성폭력도 형량이 높아진 뒤로 불기소가 늘어나고 있다.

피해 아동들은 집에서 맞는다. 게다가 부모를 떠나서 사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아동들은 자신의 피해를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없다. 어떻게 유죄를 너끈하게 입증하려는 건가? 피해자를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무책임하게 형량 올리는 게 너무 화가 난다. 오히려 불기소나 무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강력처벌에는 동의한다"라면서도 "이미 무기징역까지 상한선이기 때문에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권고양형을 상향조정하면 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분리'하는 게 왜 문제라고 보나.

"과거에도 '즉시 분리'는 처음 신고받았을 때도 가능하게 매뉴얼이 있었다. 정인이 역시 즉시 분리할 수 있었다(영유아). 그러면 법은 현장에서 매뉴얼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건데, 천안 가방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2회 신고시 무조건 분리'로 개정(지난해 12월)했다. 참고로 천안 사건은 신고가 1번밖에 안 됐다. 

사실 즉시 분리해 봤자 아이가 갈 곳이 없다. 현재 쉼터가 분리아동의 10%도 수용하지 못하는 처참한 상황이다. 가출청소년 쉼터나 보육원에서는 아이들을 선뜻 수용하지 않고, 가서도 적응하기가 힘들다. 아이들은 차라리 집에 가고 싶어하기도 한다. 실효성 있는 분리조치를 위해 아이들을 도대체 어디로 보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는 '2회 신고 즉시분리'도 '개악'이라고 강조했다. 이혼소송하는 집에서 서로 양육권을 가지려고 신고를 악용하는 사례까지도 나오며 아이가 물건 취급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한 정확하게 나누고, 아특대 만들어서 전문성 키워야"
 
김창룡 경찰청장이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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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가장 큰 문제가 권한을 너무 분산 시켜놓는 데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수사·조사 할 수 있는 주체(경찰, 아동학대전담 공무원, 아보전)가 많을수록 피해자가 겪는 2차피해가 커지고, 가해자에 의해 진술이 오염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서로 책임도 떠넘기게 된다. 그 사이에 아이는 죽는다.

아동학대 조사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책임감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저도 10년 동안 현장을 봐왔지만 조사가 제일 어렵다고 느낀다. 지난 10월부터 아동학대 조사업무를 맡고 있는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에게는 전문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일단 각 기관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해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만 더 잘 하게 해서 서로 협력하게 해야 한다.

먼저 공무원은 데이터 베이스를 성실하게 구축하고,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서류 행정처리를 해야 한다. 아보전은 피해자 지원과 사례 관리를 하면 된다. 조사와 수사는 경찰이 해야 한다. 경찰서에 부서를 둘 게 아니라, 전문성 있는 인력으로 '아동학대특별수사대'(아특대)를 만들어야 한다."

- 그렇다면 아특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2013년에 광역청 단위로 만들어진 성폭력특별수사대(현재는 여성범죄특별수사대-여특대)가 전문성과 역량이 키워지면서 2차 피해가 줄어들었다. 현재 여특대는 13세 미만 성폭력, 장애인 성폭력 등을 전담하고 있는데, 이 역량이 일선 경찰서에도 전달되고 있다.

비슷하게 광역청 단위에서 아특대를 운영하면서 미취학아동 사건, '2회 이상 신고 사건'부터 먼저 다뤘으면 좋겠다. 계속 업무를 맡다 보면 역량이 향상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충분히 전문성을 갖출 때까지 최소 2년은 기다려줘야 한다."   

-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법이 무엇일까.

"아동학대 현장에서 분리조치 등을 방해해도 과태료 처분을 하는데 그치고 있다. '방해 행위'를 형사 처벌을 하는 방향으로 바꿔서 분리조치가 실효성 있게 이뤄지게 해야 한다. 또한 쉼터를 더 만들기 위해서 법적인 근거도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 국회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법을 무작정 바꿀 게 아니다. 법이나 정책이 마구 바뀌어서 일하기 힘든 상황이 되면, 현장의 분위기는 자포자기나 보신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국민적 공분이 있을 때 형량강화나 신상공개를 이야기할 게 아니라, 아동학대 현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법과 매뉴얼대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제발 이런 식의 입법을 멈춰달라."

태그:#정인이 사건, #아동학대, #김예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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