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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 점심 메뉴는 뭐야? 우리 뭐 먹어?" 밥때만 되면 딸과 손자는 가끔씩 물어본다. "글쎄, 무얼 먹을까." 나는 밥을 해야 하는 시간만 되면 고민이 된다.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가고 밥 먹을 시간은 어김없이 돌아오는지. 사람이 한 끼라도 안 먹고살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을 가끔 해 보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밥 먹을 시간만 되면 남편은 정확한 시간에 "밥 먹지"라는 말은 한다. 함께 같이 있다가도, 나는 헛웃음이 나오고 만다. 부엌을 향해  걸어가면서 긴 숨 한 번 쉬고, 혼잣말로 '아니 내가 밥으로 보이나, 밥 준비할 시간도 없이 밥을 먹자고...' 한다. '밥이 하늘에서 떨어지나' 궁시렁 대면서 밥 준비를 위해 일어난다.

사람은 날마다 때만 되면 먹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진리이다. 생존한다는 것은 몸에 먹을 것을 공급해 주는 일이다. 주부란 가족의 생명인 먹거리를 책임지는 역할을 해내는 일이다. 나는 몇십 년을 이 일을 해 오고 있는데, 그 생각을 하면 아득하다. 어떻게 해 냈을까.

코로나19로 외국에 살던 딸이 돌아가지 못하고 우리 부부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늘어났다. 음식 메뉴도 각기 다르다. 손자가 좋아하는 메뉴는 남편은 먹지 않는다. 딸이 좋아하는 메뉴 또한 다르다. 각기 다른 입맛을 가지고 있으니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밥도 다르다. 팔십이 넘은 남편은 이가 부실해 단단한 것은 잘 못 먹는다.  

찹쌀을 맵쌀을 반반씩 섞어 2~3시간 정도 물에 불린 후 냄비에 따로 밥을 한다. 옆에 지켜 서서 밥물이 넘치지 않도록 불 조절을 하고 누룽지를 살짝 눌려 긁어 주어야 만족하고 좋아한다. 불 조절이 잘못되면 누룽지가 두껍고 딱딱해서 맛이 없다. 냄비밥의 오랜 노하우가 맛있는 누룽지를 만들어 낸다. 당뇨가 있는 나는 압력솥에 잡곡밥을 해서 다른 가족들과 먹고 있다.

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하고 

딸은 할 일이 많다. 학원 강사 일과, 애들 과외, 또 다른 회사 재택근무도 해야 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니 밤 늦도록 일을 하는 게 다반사다. 세 가지 일을 혼자 해 내고 있으니 부엌에 들어와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떤 날은 나도 힘들어 두 손 들고 모르겠다고 데모라도 하고 싶으나 어쩌랴,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가족들 생활은 엉망이 되고 말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사하다고 나에게 최면을 건다. 이 나이에 내가 아프면 요양원 밖에 갈 곳이 더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내가 건강이 허락되어 가족들을 건사할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기쁨이 반이면 슬픔이 반이다. 그러니 사는 건 공평한 일이 아닐지, 혼자 생각하곤 한다. 또한 기쁜 일만 있으면 사는 묘미가 없다. 고통 속에 삶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은 우리의 삶을 여러 방향 바꾸어 놓고 말았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딸도 집에서 세상 여유롭게 봉사 생활을 하며 지내오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인류 재난이 생활 속에 훅 치고 들어왔다. 무슨 수로 막을 수가 있겠는가. 모두가 사는 게 힘겹다고 말한다. 힘겨운 건 비단 우리 가족만이 아닐 것이다.

가족들 식사를 책임져야 하는 나에게 반가운 소식이 생겼다. 우리 동네에 유통기한 임박 식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마켓이 들어온 것이다. 며칠이 지나도 나는 잘 몰랐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과일이며 식품을 잔뜩 사 가지고 오는 이웃이 말을 해 주어 알게 되었다. "물건이 엄청 싸고 신선해요. 한 번 가보세요." 다음 날 나도 한번 가보았다. 마켓은 우리 아파트에서 길만 건너면 있다.

밀키트 덕분에 한시름 덜었습니다 
 
집에서 만든 야채 샐러드
▲ 야채 셀러드 집에서 만든 야채 샐러드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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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도 싸고 특히 야채가 엄청 싸다. 그 중에서 인기 있는 품목은 반제품인 '밀키트'란 음식들이다.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많이 싸다. 떡볶이, 월남쌈, 베트남 쌀국수, 감바스, 분짜, 파스타... 나는 이름도 모르는 생소한 음식들이 많다. 무엇을 사야 할지 몰라 하루는 딸과 함께 장을 보았다. 그리고 요리 방법을 물어보았다.

우리는 나이 든 세대라서 밥도 옛날 방식으로 어렵게 하고, 찌개 끓이고, 나물을 만들고 여러 가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한다. 그래서 집밥은 일이 많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참 세상은 편리해졌고 많이 변했다. 변한 만큼 나도 생활 방식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요즈음 코로나로 외식도 못하고 집밥만 먹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매장에는 젊은 사람들이 더 많다. 나이 든 사람은 모른다, 새로운 음식에 대해서.

요즈음 점심 한 끼는 마켓 음식으로 대체해서 좋다. 빵 종류도 많고 값도 저렴하다. 샐러드도 신선하고, 식탁의 신세계가 펼쳐진 듯 간단해졌다. 아침이면 빵과 샐러드, 계란 하나, 과일 한 조각이면 그만이다. 이제 삼시세끼 집밥에서 해방하고 싶다. 나머지 시간으로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나만의 여유 시간을 많이 갖기를 희망해 본다.

신은 힘들 때면 적당히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는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19의 3차 유행으로 앞으로 다섯 사람 이상도 모이지 말라는 당국의 발표가 있다. 이 어렵고 힘든 날에는 견디는 일뿐이다. 견디다 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임재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해 보련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오픈마켓, #집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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