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천은 항구다. 항구의 앞바다엔 섬들이 지천이다. 푸른 바다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있다. 물경 170개다. 그중 맏형은 강화도다. 인천 섬들 중에선 가장 크고 넓다. 대한민국 전체 섬 중에서도 네 번째다. 생긴 지도 가장 오래다. 역사의 섬이다. 선사시대부터 오늘의 분단사까지를 관통한다. 섬 전체가 유물이고 유적이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특히 강화의 역사는 그 주제가 명확하다.

첫 번째 키워드는 종교다. 다양한 종교의 성지다. 시조 단군께선 이 섬 가장 높은 곳에서 천제를 지냈다. 천년고찰 전등사와 손꼽히는 관음성지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상은 우리 불교사의 보물이다. 존스 선교사의 선상 세례를 받은 교화교회 이승환 모자(母子)는 초기 기독교 선교의 전설로 남았다. 수많은 교인이 순교한 진무영은 군사유적이 아닌 천주교의 성지가 됐다. 이 한적한 섬마을에 성공회 성당이 두 개나 섰다. 유교 향교는 곳곳에 산재한다.

다른 또 하나는 구국과 저항의 정신이다. 강화는 이 땅을 넘보는 외세와의 격전장이었다. 첫 상대는 몽골이었다. 중국대륙과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정복한 대 제국이었다. 태생이 거친 유목민에 오랜 전쟁 경험까지 더 해졌으니, 반도의 소국쯤은 상대도 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고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수도를 옮기면서까지 맹렬히 맞서 싸웠다. 40여 년을 저항했다. 끝내 패배했으나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길이 남을 전사(戰史)였다. 당시 새로운 수도가 강화였다.

구한말 프랑스와 미국도 강화를 노렸다. 신식 함선과 화포로 무장한 서구의 군대는 강화의 해안을 유린했다. 하지만 우리 병사들의 반격은 만만치 않았다. 화살과 창으로 최신 병기에 맞섰다. 프랑스군은 정족산성에서 일격을 당하며 패퇴했다. 미국은 더 많은 물량으로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당시 실력자 흥선대원군의 결사 의지는 미국의 기세마저 꺾었다. 그들은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두 차례의 전쟁을 양요(洋擾)라 부른다. 그저 오랑캐의 난동 정도였다.

서양인들의 난동이라 치부했지만 섬의 곳곳이 파괴됐으며 수많은 병사들과 무고한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나라를 위한 강렬한 결사항전의 정신은 오늘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후손들은 터만 남은 고려궁지와 해안 곳곳의 진지를 돌아보며 선조들의 기개를 되새긴다. 국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다짐한다. 처절한 대외 항쟁의 기록은 강화를 애국과 충절의 본향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했다.

난리통에 탄생한 음식, 젓국갈비
 
돼지갈비와 두부, 감자 등을 넣고 새우젓으로만 간을 한다. 천천히 끓이면서 먹는 데 시간이 지날 수록 다른 맛이 난다
▲ 강화 젓국갈비 돼지갈비와 두부, 감자 등을 넣고 새우젓으로만 간을 한다. 천천히 끓이면서 먹는 데 시간이 지날 수록 다른 맛이 난다
ⓒ 이상구

관련사진보기

 
몽골의 침략을 받은 고려정권은 수도를 강화로 옮기고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육지와 동떨어진 한적한 섬 마을은 척박했다. 먹을거리마저 부족했다. 당장 임금께 올릴 수라부터 걱정이었다. 당신의 옥체는 곧 국가의 안위였다. 상궁나인들은 지혜를 모았다. 맛도 그러려니와 임금님의 기력을 보할 음식이 필요했다. 돼지를 잡아 섬에서 나는 푸성귀와 인삼까지 넣어 푹 끓였다. 오늘의 젓국갈비는 그렇게 탄생했다.

젓국갈비는 그 이름처럼 오직 새우젓만으로 간을 한다. 젓갈도 3년 정도 묵힌 것이어야 비리지 않고 제맛을 낸다. 다른 양념은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돼지고기는 갈비 부위를 쓴다. 물에 담가 피를 뺀 갈비를 미리 한 번 삶는다. 이 과정에서 기름기가 쏙 빠진다. 숭숭 썬 감자와 다진 마늘, 매운 고추 몇 개를 썰어 넣는다. 하이라이트는 강화인삼이다. 실한 인삼 한 뿌리를 바닥에 깔고 푹 끓인다. 어느 정도 익으면 불을 줄이고 계속 끓이면서 떠먹으면 된다.

전골냄비에 국물이 자작하게 담겨 나온다. 국물은 말갛다. 빨간색 전골에 익숙한 눈에는 낯설다. 다른 양념이 들어가지 않고, 고기의 기름기까지 뺐으니 맛은 담백할 수밖에 없다. 젓갈 간은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진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지만 천천히 끓일수록 맛이 깊어진다. 인삼의 향도 처음엔 좀 세다 싶지만 점차 그윽해진다. 고추의 매운 맛이 전체를 압도하지는 않는다. 다른 맛과 어우러진다. 칼칼하면서 개운한 끝 맛을 남긴다.

맛은 세 번 바뀐다. 첫 맛은 돼지국밥 비슷하다. 순댓국 느낌도 있다. 어딘가 익숙한 향이다. 두 번째 맛은 처음과는 사뭇 다르다. '이게 뭐지?' 싶다. 아는 듯 모르는 맛이다. 세 번째 가야 그 맛의 정체를 알게 된다. 마지막 맛은 소고기 뭇국 맛이다. 그것도 명절 끝 무렵에 먹는, 몇 번을 다시 끓인 소고깃국이다. 구수함의 절정이다. 그러니까 두 번째 맛은 돼지와 소고깃국을 섞어 놓은 중간 맛이었던 거다.

"그동안 많이 연구했고, 이런저런 실험도 해 봤지만 역시 옛날식이 최고더라고요. 다른 집은 버섯도 넣고 이런저런 푸른 채소 같은 걸 넣는다는데 우린 그냥 감자, 두부, 고추가 다예요. 전통 방식 그대로죠."

한은석 사장 부부가 운영하는 일억조 식당은 젓국갈비의 원조격으로 대우받는다. 다른 곳도 그렇겠지만 이 식당은 강화에서 나는 식재료만 쓴다. 순무김치와 밴댕이 젓갈은 물론 다른 밑반찬이 다 그렇다. 쌀도 강화 브랜드인 '강화섬쌀'이다. 재미있는 건 밥이며 나물, 김치까지 다 단 맛이 난다는 사실이다. 끝 맛이 그렇다. 설탕으로 낸 억지 단맛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달콤함이다. 익은 양파에서 나는 듯한. 강화의 땅속엔 꿀이 흐르는 게 분명하다.

광활한 갯벌이 키운 힘 좋은 장어
 
강화 더리미 장어타운에 가면 만나는 흔한 밥상이다. 주로 강화에서만 나는 식재료를 쓴다(강화군청 제공).
▲ 강화 갯벌장어 한상 강화 더리미 장어타운에 가면 만나는 흔한 밥상이다. 주로 강화에서만 나는 식재료를 쓴다(강화군청 제공).
ⓒ 이상구

관련사진보기

 
하루 두 번 강화의 땅은 몇 배가 늘어난다. 바다 밑으로 숨은 땅, 갯벌이 드러나는 썰물 때다. 강화 갯벌은 세계적이다. 세계 5대 갯벌의 하나다. 아직 자연유산 인증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에 버금간다. 갯벌은 깨끗한 바다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바다로 흘러들어온 모든 오염물을 빨아들여 건강한 미생물로 걸러 낸다. 많은 생명체들이 갯벌에 깃들어 산다. 갯벌은 그 자체로 거대한 생태계다. 자연의 보고다.

강화의 갯벌에는 장어도 산다. 그 맛 좋고 영양 많기로 소문난, 저 지방 고 단백의 보양식으로 유명한 그 장어 말이다. 갯벌에서 자라니 갯벌장어다. 물론 예전 강화 앞바다에서 지천으로 잡히던 순수 자연산은 아니다. 그래도 그에 못지않다. 한 달쯤 자란 새끼 장어를 강화 갯벌에 놓아기른다. 여기서 두어 달쯤 자라야 살이 제대로 오르고 맛도 가장 좋아진다고 한다. 강화군이 야심 차게 내놓은 지역 특산품이다.

군이 공인 관리하는 갯벌장어 양식장은 총 세 곳이다. 여기서 자란 장어는 섬 곳곳의 장어식당으로 팔려나간다. 선원면 더리미 마을은 아예 장어타운이 됐다. 그 마을 앞의 포구는 장어와 황복을 잡던 고깃배들이 드나들었다. 그때부터 있었던 유서 깊은 식당들이 모여 있다. 고기들의 씨알이 마르자 어부들은 떠났고 포구는 희미한 옛 기억으로만 남았다. 더리미란 하나씩 더해졌다는 뜻이다. 어부와 고깃배는 하나씩 떠났지만 식당은 하나씩 둘씩 늘었다.

갯벌장어와 민물장어는 확연히 다르다. 갯벌장어는 전반적으로 투박하다. 생김새며 색깔이 그렇다. 씨알은 훨씬 굵다. 갯벌을 자유자재로 헤집고 다닌 덕인지 몸집이 단단하다. 그냥 살이 아니라 근육이다. 숯불에 올려 구우면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그 고소한 냄새가 십리를 간다. 살코기는 두툼하다. 한 점만 넣어도 입안을 가득 채운다. 씹는 맛도 일품이다. 쫄깃함이 목젖까지 느껴진다. 가격은 다소 부담스럽지만 맛과 영양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보라색 순무의 미스터리
 
순무는 오직 강화 땅에서만 난다. 강화 앞바다에서 잡은 밴댕이나 새우로 만든 젓갈로 만들어야 제 맛이난다.
▲ 강화순무김치 순무는 오직 강화 땅에서만 난다. 강화 앞바다에서 잡은 밴댕이나 새우로 만든 젓갈로 만들어야 제 맛이난다.
ⓒ 강화군청 제공

관련사진보기

 
오직 강화에서만 나는 식물이 있다. 순무다. 강화와 맞닿아 있는 김포 땅에서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강화와 김포는 불과 800m 정도다. 두 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다. 그런데도 그렇단다.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의 순무는 오래전부터 강화에서 자라던 토종 순무와 구한말 유입된 영국 종자의 교잡종이라 한다. 영국 종자는 당시의 해군사관학교 격인 통제영학당의 교관 콜웰이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네이버 백과사전).

생김새도 색깔도 일반 무와는 많이 다르다. 씨알은 작고 동글동글하게 생겼다. 색깔은 선명한 보라색이다. 뿌리 부분만 놓고 보면 얼핏 자색 양파 같다. 주로 아래쪽의 뿌리를 김치로 담가 먹는다. 순무김치 혹은 순무 깍두기다. 그 맛은 독특하다. 기본은 무의 매운맛이다. 혀끝을 톡 쏘는 게 겨자나 고추냉이 같기도 하다. 김칫국물도 탄산수 같다. 어떤 이는 강화인삼 맛이 난다고도 한다. 그게 어떤 맛이든 그 느낌은 깔끔하고 시원하다. 건강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순무김치도 다른 지역에서 담그면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젓갈이 특히 중요하다. 반드시 강화 앞바다에서 잡은 밴댕이나 새우로 담근 젓갈을 써야 한다. 배 위에서 바로 소금에 절인 강화젓갈은 전혀 비리거나 텁텁하지 않다. 순무 고유의 시원한 맛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풍미를 돋우고 단맛이 돌게 한다. 결국 순무김치 맛의 비밀은 염기 머문 강화 땅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농작물과 그 바다에서 난 해산물이 빚어낸 천상의 조화였던 거다.

강화도야말로 최고의 가족여행지다. 섬 곳곳의 유적과 유물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생생한 역사의 산교육이 된다. 각자 믿는 종교의 뿌리와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신심을 더욱 돈독히 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나라를 위한 애국충절의 정신이야 말 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 여정의 마지막에 만나는 오직 강화만의 맛은 절정이다. 강화의 맛은 입이 아니라 온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 기억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아로 새겨질 것이다. 강화로 가자.

태그:#강화도, #젓국갈비, #갯벌장어, #강화순무, #애국항전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