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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집안에서의 돌봄노동을 전적으로 맡는 경우가 많고,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가사노동까지 부담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한다. 이런 현실이 여성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한다.
 여성들은 집안에서의 돌봄노동을 전적으로 맡는 경우가 많고,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가사노동까지 부담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한다. 이런 현실이 여성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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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밖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집안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다. 가사의 A부터 Z까지 꿰고 있으며 요리는 별로지만 나머지 집안일은 꽤 한다. 육아를 비롯해 모든 집안일은 양성평등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남편과 책임을 함께하고 있다. 얼마 전 이직을 알아보았다. 조건도 좋고 마음에 드는 자리 하나는 야간진료를 제안했다. 두 아이 때문에 퇴근 시간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는 포기했다. 눈 딱 감고 하면 못 할 것도 없지만 그러면 다른 가족의 돌봄 부담이 커지는데다가 나도 아이들과 보내는 저녁을 소중한 의무로 여겼기에.

내가 첫째를 낳고 키우며 들었던 생각은 이 '미친 육아(육아에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가사까지)'라는 고된 일을 어떻게 '별 볼일 없는 여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해왔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여의사들의 익명 게시판에서 본 자조적인 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원장이라면 여의사들 뽑기 싫을 것 같다, 왜냐하면 머릿 속에 아이는 어떤 상태이고 집에 먹을 것이 얼마나 남아있고 무엇을 언제 주문을 하며 돌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적절히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는 등 항시 딴데 신경쓰고 있으니까 일에 충분한 집중을 못 하지 않겠냐'는 요지였다. 동의한다. 아이가 있는 남자 의사라면 어땠을까? 일을 구할 때, 업무시간에 위 고려를 하는 남자 의사는 얼마나 될까?

어쨌든 내가 원해서 애는 세상에 나왔고 돌봄을 해도 힘들고, 안 해도 죄책감에 괴로운, 어려운 미션이 시작되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육아의 로딩에 허덕이며 세상 모든 어머니들에게 경외심(이 힘든 걸 알려주지 않았다는 원망감도)이 생길 정도였으니. 사정이 좋은 편인데도 쩔쩔매는 나는 진료실에 온 여성 환자들에게 괜히 미안하다. 그 여성이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로 불리든 아니든, 돌봄 노동은 대부분 여성에게 당연하게 요구되고 편중되어 있다.

돌봄노동을 떠맡는 여성 노동자들

비교적 내밀한 사정까지 듣는 직업 특성상 여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인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듣곤 한다. 특히 기혼의 유자녀 여성 환자들로부터 가사와 돌봄 책임 때문에 정신건강이 위협받는 과정, 그녀가 노동자라면 자본주의적 생산성마저 어떻게 손상되는지 생생한 증언이 쏟아진다.

전문직 남편을 둔 30대 전문직 여성은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해 병원을 방문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결과물을 성취하는 것이 익숙했던 환자는 학업, 업무로 이뤄낸 결과가 자기 정체성의 큰 부분이었는데 임신, 출산으로 성과를 유지할 수 없게 되고 아이 돌봄을 위해 덜 바쁜 일터로 이직을 했다. 거기서도 업무 시간 내내 줄곧 일을 해야 겨우 칼퇴가 가능했지만, 일찍 퇴근을 한 이후에도 육아와 가사는 고스란히 이 여성의 몫이 되었다.

당시 환자는 너무 고된 나머지 아기가 사랑스럽다기보다 부담스럽다는 감정을 느꼈고, 그에 따른 죄책감마저 있었다. 그리고 늘 뒤로 물러서있는 남편에 대한 실망과 미움이 강했다. 부정적 감정은 부정적 생각을 불러 잠을 방해했고 업무에서도 성과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약물과 상담치료 이후에 다시 생산성이 좋아진 그녀는 남편에게 짜증도 덜 내고 집안팎의 일을 더 잘 처리할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녀의 남편이 편해졌으리라... 아차!

지금은 환자가 안정되어 아이와의 시간이 좋다고 하지만 남편과는 이미 마음의 거리가 상당하다. 남편은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기여를 다 했다고 스스로 판단해 일차적 양육자가 겪는 미칠 듯한 과정을 함께한 적이 없었다. 아이를 같이 돌봐주는 이모님(육아도우미)이 그만둘 때 붕괴되는 멘탈을 붙잡고 아이의 상실감을 달래준 것도, 다음 이모님을 구하며 우여곡절을 겪어낸 것도 환자 혼자였다. 사회적으로 유능한 부인이 커리어를 희생해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키워내고 있을 때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던 남편은 아이가 자기와 친하지 않아 불만이고 환자가 억울함을 보일 때 오히려 화를 낸다.

위 사례와 유사한 워킹맘들의 하소연이 매일같이 진료실에서 반복되고 있다. 아이 성장 과정에서 한 번도 일차적 책임자였던 적 없는 남편 때문에 늘 혼자 전전긍긍하며 외로웠다는 중년 공무원, 돌봄 부담에 대해 수동적인 남편과 싸우다 감정의 골이 깊어져 결국 이혼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언론인, 출산 후 악착같이 복직한 후 감당하기 어려운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느라 업무 능력이 저하되고 생기를 잃은 금융노동자 등. 진료실에서 만난 기혼 (특히 유자녀인) 여성들은 예외 없이 돌봄 부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집에서 '논다는' 여성
 
집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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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임신, 출산 그리고 돌봄의 책임을 떠맡느라, 노동시장에서 생산성이 낮은 존재가 된다. 안 그래도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여성이 가정주부의 역할을 맡는 게 전체 가정경제에 이득이라면서 맞벌이를 하느니 집을 보라는 압박이 생기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여성들은 직장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집에서 노는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다 자기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온 정성을 아이에게 쏟아 '훌륭한 성과'를 내려 한다. 아마도 이렇게 육아 과몰입, 과도한 교육열이 돌봄노동의 전가와 일부 닿아있는 게 아닐까. 아이들을 돌봄·교육 기관에 보내고 남편 일할 시간에 모여 커피 마시며 수다나 떠는 아줌마들은 여성혐오의 흔한 소재이지만, 많은 환자는 그 수다의 장을 긴장이 팽팽한 사회생활로 묘사한다. 육아 팁, 교육과 돌봄 관련 고급 정보들이 공유되기에, 마치 회사 회식 자리처럼 비록 내키지 않아도 참여하게 된다.

자녀가 다 컸어도 뼈에 새겨진 가족 돌봄과 가사의 의무는 여성에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 50대 여성은 교직 은퇴 후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은퇴해 같이 지내면서 집이 다시 일터로 느껴진다고 했다. 주말부부로 지내 온 세월동안 밥 빼고 집안일 스킬을 충분히 연마한 남편이건만, 그 환자는 혼자 집안일을 해야하는 사람처럼 스스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남편이 깔끔한 사람이라 자꾸 더 쓸고 닦아야할 것 같고,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이라도 해놔야할 것 같다고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장성한 자녀들마저 재택근무 등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이 여성은 일할 게 계속 보여 쉴 수 없었다. 집안일의 전체 그림은 자기만 알고 있어서 가족들에게 일일이 집안일에 대한 도움을 청하는 것, 집안일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촘촘히 지시하는 것 또한 품이 드는 일이라 점점 지쳐갔다. 그러니 가족들이 단순히 식단에 대한 의견만 내도 반찬투정으로 보이고 자신에게 숙제를 주는 것 같아 답답하고 화가 치민다고 했다.

퇴근과 퇴직이 없는 여성들의 책임감 넘치는(?) 노동을 통해 자본주의는 자신을 재생산 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가사노동에 큰 빚을 지고도 빚진 걸 애써 부정하며, 다시 말해 가치 없는 노동으로 취급한다. 더욱이 시장에 상품으로 나와 있는 '여성적 노동'들은 싼값에 거래 된다. 예컨대, 보육 교사나 가사 및 육아도우미들은 그 노동강도와 사회적 가치에 비해 매우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돌봄 노동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어떤 취급을 받아야 지금의 사회가 굴러가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돌봄노동의 사회적 인정을 위해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 그리고 같이 살고 가족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서로에 대한 돌봄은 모두의 몫이다. 그러나 돌봄이라는 공통숙제를 받고서, 여성은 숙제가 많아 부담을 느끼고 남성은 내 숙제는 아니지만 도와주면 생색나는 것으로 치부하는 문화는 여전히 지배적이다. 책임이 일방적으로 몰리는 상황은 결국 희생을 강요받는 느낌을 주게 된다. 그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억울함 등 온갖 감정은 여성의 정신 건강을 위협한다. 또한 많은 경우, 젊은 여성들이 비혼, 비출산을 다짐하게 되는 건 이런 문제 의식에서 비롯된다.

오늘도 진료실에서 보이지 않는 여성의 노동을 마주한다. 이 사회에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여성의 돌봄노동, 가사노동에 기반해 있음을 여성들의 입으로 확인한다. 그들의 말과 목소리가 안에서 맴돌며 자신을 탓하지 않기를. 밖으로 나와 더 외쳐질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권윤영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2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여성정신건강, #돌봄노동, #가사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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