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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저는 지난달 병역법 위반 혐의로 치러진 2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건조한 어조로 주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1분 30초 정도 이루어진 선고 재판은 아주 길게 느껴지기도 아주 짧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무죄 선고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무죄가 나오기를 오랫동안 바랐지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례 변경 이후에도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아닌 병역거부자에게 계속 유죄 판결이 이어지는 현실 앞에서 저의 기대는 막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유죄 판결을 받고 더 나아가 구속되면 어떡하나'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선고 재판을 기다리며 자리에 앉아 묵주기도를 드렸습니다.

제 사건은 그날 오후에 열린 공판에서 제일 먼저 진행됐습니다. 재판부는 간단한 인적사항을 확인한 이후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뜻밖의 판결에 반가움을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중에도 미소가 자연스레 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법 절차가 진행되는 중에 재판부가 별다른 의향을 내비치지 않았던 터라 선고를 앞두고 조마조마했던 만큼 더욱 기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피고인은 무죄'라는 부분보다 '원심판결을 파기한다'라는 부분이 더욱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피고인을 신문하는 심리 공판과 선고 공판을 모두 합쳐도 채 10분도 되지 않을 1심 법원의 신속하고 가혹한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오랜 기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불안과 고통 역시 원심판결과 함께 파기되기를 바랐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가장 커다랗게 부푼 감정은 얼떨떨함이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거쳐온 시간이 예측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정리된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재판을 방청하러 온 동료, 친구, 가족이 우는 모습을 보면서 상황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법원을 나와서 병역거부 과정에 함께한 분들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늘 선고가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꺼내면 '추운 날 재판에 가느라 고생했다' '법원까지 먼 길 다녀오느라 수고했다'라는 안부만 전하고 정작 재판 결과에 대해서는 단 한 명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다행히 무죄가 나왔다'라는 말을 건네면 깜짝 놀라며 들뜬 목소리로 축하해주었습니다. 2심 재판은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이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것임을 알려준 경험이었습니다.

변해가는 것, 끝나가는 것, 시작되는 것
 
하자센터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 '남자답고 싶은 남자들, 남자답기 싫은 남자들'에 패널로 출연해 남성성과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우
 하자센터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 "남자답고 싶은 남자들, 남자답기 싫은 남자들"에 패널로 출연해 남성성과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우
ⓒ 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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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가까이 진행된 2심 재판을 돌아보면 여러 장면이 떠오릅니다. 1심 유죄 선고에 대해 항소를 진행하고 몇 달이 지났을 무렵,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를 마련하라는 결정을 내렸고 대법원은 병역거부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습니다. 대법원판결 다음 날, 2심 재판부에서는 처음으로 공판 기일(재판받을 날짜)을 지정했습니다.

한 차례 연기된 재판은 결국 해를 넘겨서 열렸고, 피고인의 온라인 게임 가입 여부와 이용 사실을 조회해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해당 자료와 사건과의 관련성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재판부에서 적절하게 대응했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재판부는 '많은 게임회사로부터 회신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재판 진행이 어렵다'라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예정된 재판 바로 전날에 정확한 날짜를 지정하지 않은 채 후속 재판을 나중으로 미뤘습니다.

두 번째 재판이 열리기까지 1년 5개월이 흘렀습니다. 그 기간을 나름대로 의미 있게 채워 보려고 부단히 애를 썼던 한편, 비슷한 시기에 병역을 거부한 다른 이들이 2심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올봄 예고 없이 재개된 재판에 작은 기대와 많은 긴장을 갖고 법원에 갔습니다.

검찰은 이른바 폭력적인 게임과 '음란물' 시청을 금지하는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에 기초해서 온라인 게임과 웹하드 업체 가입 여부 및 이용 사실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고, 새로이 구성된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습니다. 1심 공판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던 탓인지 검찰과 재판부는 제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해당 내용을 지적하고 성공회 신자라는 점을 밝히자 검찰은 종교 생활을 성실하게 해왔는지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고 제가 매주 성당에 갔는지 위치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현재 재판을 받는 많은 병역거부자가 겪는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2심 재판 중에 몇 차례 진행된 신문 과정도 기억에 남습니다. 캠퍼스에서 함께 사역했던 선교단체 간사님이 법정에 오셔서 증언해주셨고, 여러 병역거부 사건을 변론해온 변호인이 제가 법정에서 차분하게 진술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검사가 진행하는 신문에서는 사건과의 관련성이 적다고 여겨지는 질문('여성의 군 복무에 대해서 반대하는지')이나 다소 악의적으로 느껴지는 질문('5·18 광주민주화항쟁에서 시민이 총을 든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있었지만, 병역거부자에게 건네는 익숙하고 무딘 질문이 많았습니다. '외국에서 한국에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군대도 보유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그중에는 특히 매우 문제가 많은 질문도 있었습니다. 변호인의 문제 제기로 인해 실제로 질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검사가 준비한 질문 가운데는 "피고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이 존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피고인은 일본군이 성노예를 삼기 위해 피고인의 지인 여성들을 데려갈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요?" "피고인이 주장하는 평화 방법으로 제2의 위안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위안부'라는 표현에는 따옴표가 있어야 하지만 검사의 질문지에는 표기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성적 차별과 폭력에 맞서는 다양한 움직임을 접했고, 이 과정에서 '위안부' 여성의 명예와 인권을 외치는 수요시위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관련된 사항이 질문에 반영되었음을 감안하더라도 검사의 질문이 지나치게 모욕적이고 터무니없이 부당한 것이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듯합니다.

최후 진술

공판 과정의 가장 마지막 순서에는 재판부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수개월에 걸친 법적 절차에서 재판부가 제게 무언가를 묻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질문을 들었습니다. 재판부의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단지 여러 사정상 군대에 가기를 원치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군대에 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이었습니다.

답변을 고민하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질문에 답변을 잘하면 유리한 판결이 나오지 않을지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그간 재판에서 양심과 신념에 대해 진술한 내용은 존재에서 비롯된 고민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건지 걱정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려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서 답답한 상황인지, 아니면 유죄를 선고하려는데 그저 마지막으로 진술할 기회를 주는 상황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기대와 체념을 오가며 말을 고르던 순간, 문득 저와 비슷한 시기에 재판을 받는 동료 병역거부자와 감옥에 갇힌 평화수감자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재판부가 건넨 질문에 답하기보다 재판을 겪으면서 들었던 감정을 솔직하게 전했습니다. 함께 고통스러운 시기를 견디며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때로는 얼마나 무력해지고 마는지에 대해서. 재판 과정에서 서로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지만, 이 모든 사법 절차가 한 편의 부조리극처럼 느껴지는 현실에 얼마나 지치는지에 대해서.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 말을 하는 자신조차 이미 유죄 선고가 예정되어 있음을 직감하며 얼마나 절망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는 '만약 재판부에서 저의 고민이 존재론적인 차원에 이르지 못했다고 판단한다면 제가 아니어도, 그 이후에라도 다른 병역거부자에게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라고 진술을 마무리했습니다.

한 친구는 그때 제가 삶의 모든 간절함을 담아 울면서 이야기했던 모습이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글쎄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검사가 질문할 때는 혹시라도 함정에 빠지지 않을까 긴장하면서 가능한 논리정연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던 반면, 재판부의 질문에는 그저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답했으니까요.

그러나 양심과 신념을 존중받는 일이 왜 이렇게 가혹해야만 했는지, 제가 그랬던 것처럼 법정에서 진심으로 모든 것을 쏟아냈던 다른 병역거부자는 왜 유죄 선고를 받아야 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양심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하는데, 정작 양심의 자유를 보호받기 위해 절실하게 호소하는 피고인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국으로 치닫는 모습을 법정에서 보여야만 그제야 간신히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울먹이는 제 목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던, 완전한 침묵으로 가득 찼던 법정의 모습이 아마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아니라 '지금부터'라면
 
무기박람회 DX KOREA에서 무기거래를 반대하는 직접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우
 무기박람회 DX KOREA에서 무기거래를 반대하는 직접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우
ⓒ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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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병역거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번 무죄 선고는 "모두의 이름으로 다만, 저의 이름을 빌린"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보다 앞서, 저와 같은 시기에 부단히 평화의 씨앗을 심어온 분들의 노력이 소중한 열매로 다가왔음에 감사합니다.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맞서 '평화로 가는 길은 평화여야 한다'고 외쳐온 이들,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겠다는 소박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형사 처벌을 감수하고 좁은 길을 선택해온 이들, 평화에 대한 질문을 따로 또 같이 풀어나가며 서로에게 기꺼이 위로와 용기가 되어준 이들, 그렇게 현재와는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간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마주한 반가운 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뜻밖의 경험을 하고 난 이후에 관점이 조금 달라져서인지 때때로 마음에 흐린 날씨가 이어지기도 합니다. 선고 재판이 있던 날, 무죄 판결을 받으니 어떤 기분이 드는지 물었던 동료 활동가에게 기쁘면서도 얼떨떨하고 신기하면서도 다행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난 요즘에는 안타깝게도 좌절감과 분노, 외로움과 슬픔 같은 것이 크게 다가오고는 합니다.

'피고인은 무죄'라는 이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형사 처벌로 인해 힘겨워하며 보냈던 시간을 너무 늦게 찾아온 무죄 선고가 과연 얼마나 회복할 수 있는지, 이렇게 무죄를 선고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 왜 추운 겨울 감옥에 수감된 병역거부자가 아직도 있어야 하는지, 이른바 진정한 양심과 거짓된 양심, 진짜 병역거부자와 가짜 병역거부자를 가려내려는 시도는 도대체 언제까지 반복될 것인지. 수신인을 찾지 못한 물음이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저는 1심 재판 과정을 돌이켜보며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가끔씩은 '내가 이러려고 병역거부를 했나' 하는 허탈감에 씁쓸한 마음을 달래야 하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스럽게도,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 아닐까요?"

무죄 선고의 '모든' 내용에 대해 검사가 상고를 제기한 시점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만 '고통스럽게도, 어쩌면 다행스럽게도'라고 덧붙인 수식어를 '다행스럽게도, 어쩌면 고통스럽게도'라고 옮겨야 하지 않을지 고민해봅니다. 제가 무죄 판결을 받기 이틀 전 동료 병역거부자는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최근 또 다른 병역거부자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역사적 결정을 이끈 병역거부자는 2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사법부를 설득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병역거부자가 유죄 판결을 받는 일, 심지어는 유죄 판결로 인해 주변 사람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에 사과하는 일은 언제쯤 그칠 수 있을까요? 사회적 변화는 왜 때로는 다행스러운 소식으로, 그러나 고통스러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인지 묻게 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살며시 헤아려봅니다. 제 사건이 '퀴어 페미니스트 그리스도인'이라는 독특하고 이상한 피고인을 구제한 예외적인 사례로 남지 않도록, 재판이 진행 중인 모든 병역거부자가 마땅히 무죄 선고를 받고 감옥에 있는 모든 평화수감자가 지금 당장 나올 수 있도록, 더 나아가 군대를 해체하고 감옥을 폐지하며 전쟁을 없애도록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되짚어봅니다.

한편으로는 무죄 소식이 널리 알려져서 병역거부에 참여하고 전쟁에 저항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가 인정한 병역거부자'가 전하는 '수상소감' 혹은 '간증'이 가리는 것은 무엇인지도 고민해봅니다. 이미 많이 왔음에 안도하고 아직 갈 길이 남았음에 한숨을 쉬는 오늘, 다시 시작되는 우리 모두의 게임이 그전보다는 아주 조금은 더 정의롭고 평화롭기만을 간절히 바라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withoutwar.org/?p=16906


태그:#병역거부, #무죄 선고 , #평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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