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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3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시험실에 입실한 수험생이 막바지 공부를 하고 있다.
 2021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3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시험실에 입실한 수험생이 막바지 공부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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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능은 1교시부터 어려웠다. 그러나 많은 언론이 '평이했다'고 보도했다. 수험생은 '나만 못 봤나보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런데 객관적인 난이도 평가자료라 할 수 있는 수능 등급 컷이 공개되자 언론이 틀리고 수험생이 맞았음이 증명되었다.

1교시 국어, 2교시 수학 가형(이과생), 4교시 생명과학, 사회문화 등 탐구 선택과목들이 작년 수능보다 어려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절대평가라서 쉬워야 할 3교시 영어 역시 결코 쉽지 않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즉, 모든 과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 시각에도 언론은 '평이했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고, 수험생인 우리 아이는 '자살유도 뉴스 아니냐'고 되물었다. 내년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기사를 쓴다.

12월 3일 오후 2시

수능 시험장에서 문제와 씨름하고 있을 아이를 떠올리며 기사를 검색했다. 수능 난이도에 대한 뉴스들이 검색된다. 다행이다. 1교시부터 수험생 정신력을 무너뜨린다는 국어, 올해는 작년보다 쉬웠다는 평가다. 

- 국어 난이도, 전년도 수능·모의평가보다 다소 쉬워 (쿠키뉴스)
- 수능 국어영역... "작년보다 약간 쉬워... 신유형·고난도 적어" (조선비즈)
- 현직교사·입시업체들 "2021 수능 국어, 평이했다" (매일경제)


오후 3시
  
2교시 수학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대부분 언론은 출제자(한국교육과정평가원)와 평가교사의 말을 빌려 이과생들이 주로 선택하는 수학(가)형은 작년 수능보다 까다로웠지만, 문과생들이 주로 택하는 수학(나)형은 작년과 비슷했다고 보도했다.

이과생 학부모들은 걱정스러웠을 것이고 문과생 학부모인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기사에 붙은 댓글 한 개가 범상치 않다.

"작년과 비슷? 작년 수학 얼마나 어려웠는데..."

오후 5시
 

수능 시험장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도로는 이미 주차장으로 변했고 수백 명의 학부모가 교문 밖에서 수험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아이의 얼굴도 보였다. 그런데 표정이 어두웠다. 시험이 다 끝난 뒤 울었다고 한다. 1교시 국어부터 어렵게 느껴져서 시험 중간에 가방을 챙겨 나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코로나19로 학교도 제대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해온 아이였다.

그 시각 언론은 '종합'이라는 부제 아래 이번 수능은 '비교적 평이했다'는 제목을 뽑아내고 있었다. 연합뉴스는 코로나19 학력 차이를 고려했는지 올해 수능은 전반적으로 평이했다고 썼다. 또 다른 언론은 '너무 쉬워져서 변별력이 있을지 염려된다'고 쓰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할 말을 잃었고, 아이는 고개를 떨궜다.  
   
수능시험 종료 후 보도된 연합뉴스 온라인 기사 국어는 쉽고 수학 가형만 까다롭게 출제되었다는 연합뉴스 기사는 수능 종료 직후인 3일 오후 6시 26분에 보도되었다.
▲ 수능시험 종료 후 보도된 연합뉴스 온라인 기사 국어는 쉽고 수학 가형만 까다롭게 출제되었다는 연합뉴스 기사는 수능 종료 직후인 3일 오후 6시 26분에 보도되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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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반전이 일어났다. 7개 주요 입시업체의 수능등급 커트라인 분석 결과, '전반적으로 평이했다'는 언론 보도와는 달리 올해 수능은 1교시 국어부터 4교시 탐구영역까지 곳곳에 작년보다 어려웠던 과목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어려운 과목의 커트라인이 낮아진다고 했을 때, 올해 수능의 예상 커트라인은 작년과 비교해서 1교시 국어, 2교시 수학가형(이과생 선택), 4교시 탐구영역 중 생명과학, 사회문화 등 많은 수험생이 선택하는 탐구과목들이 작년보다 어려웠음을 말해주고 있다. 
 
 2020학년도 수능과 2021학년도 수능 과목별 커트라인 비교?(1~3등급 원점수기준, 7개업체평균)
 2020학년도 수능과 2021학년도 수능 과목별 커트라인 비교?(1~3등급 원점수기준, 7개업체평균)
ⓒ 노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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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학년도 수능과 20201학년도 수능 탐구영역 과목별 비교 (1~3등급 원점수기준, 5개업체평균)
 2020학년도 수능과 20201학년도 수능 탐구영역 과목별 비교 (1~3등급 원점수기준, 5개업체평균)
ⓒ 노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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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시
 

그러나 뉴스에는 이런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다. 지상파 3사의 저녁종합뉴스는 '코로나19를 감안해 쉽게 출제했다'는 출제자의 인터뷰와 '다소 쉬웠다'는 일부 수험생 인터뷰만 나오고 있었고, 1등 신문들의 보도내용 또한 다를 게 없었다.

한 뉴스전문채널은 비교적 평이했고 다만 수학은 변수라고 보도했다. 이 뉴스를 우리 집 수험생에게 보여줬더니 대뜸 이런 말을 한다. '자살유도 뉴스' 아니냐고.
 
수능 당일 YTN의 난이도 평가 보도 밤8시경 7개 입시업체들이 분석한 '수능 예상등급컷'이 공개되어 국어 등 과목들의 등급하락이 가시화되었지만 밤 8시52분에 온라인에 공개된 해당보도는 여전히 '비교적 평이했고 수학만 변수'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 수능 당일 YTN의 난이도 평가 보도 밤8시경 7개 입시업체들이 분석한 "수능 예상등급컷"이 공개되어 국어 등 과목들의 등급하락이 가시화되었지만 밤 8시52분에 온라인에 공개된 해당보도는 여전히 "비교적 평이했고 수학만 변수"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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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전문가들 "젊은 사회부 기자들이 입시현장 취재하는 현실"

이처럼 수능 난이도에 대한 언론의 평가가 빗나가는 일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시민 손지용씨는 "제가 수능을 봤던 해에도 비슷한 반응들이 언론에 나왔는데 며칠 뒤 '역대급 불수능'이었다고 밝혀졌다"며 언론의 성급한 보도를 지적했다.

복수의 입시전문가들은 취재 전문성 부족을 지적한다. 교육전문 기자는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 사회부 기자들이 수능 등 입시뉴스를 작성한다. 심지어 갓 들어온 인턴기자에게 취재를 맡기는 경우도 있어 사실관계에 대한 종합적인 취재가 되지 못한 채 출제자나 일부 전문가 등 취재원에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언론 현실에 비춰볼 때 시스템의 개선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수험생 학부모로서 한 가지만 부탁드리고자 한다. 수능 난이도는 출제자도 학생도 전문가도 시험이 다 끝나고 분석해보기 전까지는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는 일이다. 쉽게 낸다고 쉽게 풀리지 않는 게 난이도 조절의 어려움이다.

최소한 수능 시험 후 예상등급컷 나오기 전까지는 신중한 보도 태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코로나19 속에서도 온종일 수능 시험을 치르고 삼삼오오 시험장 밖을 빠져나오던 아이들의 꽃 같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 이 기사에 언급된 '탐구 영역 커트라인 비교표'는 수능 다음 날인 12월 4일 발표된 5개 입시업체들의 예상커트라인 공개자료를 바탕으로 필자가 작성한 것으로 17개 탐구영역 선택과목 중 문과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인문계 두 과목(생활과윤리, 사회문화)과 의대 지망생들이 선호하는 자연계 두 과목(생명과학, 화학)을 임의로 선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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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저널리즘을 연구해 경제학박사학위를 받고 FM 99.9 경기방송 편성책임자로 일하던 중 제보-부당해고-복직-폐업으로 이어지는 아수라를 겪으며 현재 경기지역 공영방송의 꿈을 향해 뚜벅뚜벅 갑니다. 이달의 피디상 2회,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2회, 한국방송대상 1회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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