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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과학 시간에 생체 실험을 한다. 실험 대상이 벌벌 떤다. 적어도 아이들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마음 굳게 먹고 실험하세요." 나는 최소한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설득한다. 실험은 총 네 그룹으로 진행된다. 이 중 두 경우는 실험 대상의 생명을 빼앗게 될 예정이다. 어떤 아이도 죽음의 집행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무작위 추첨을 한다. 생과 사를 가르는 운명의 순간, 결과가 나왔다. 

"앗싸, 콩나물 안 죽인다."

맞다. 우리는 지금 콩나물 생체실험(?) 중이다. 햇빛과 물이 콩나물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는 실험이다. 어떤 콩나물은 햇빛과 물을 모두 제공받고, 다른 콩나물은 둘 다 제공받지 못할 수도 있다. 실험 기간은 일주일. 페트병 시루에서 콩나물을 기른다. 각 페트병에는 물과 햇빛의 제공 유무가 O, X로 표시되어 있다. 

콩나물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하다

실험 결과의 예상은 쉽다. 물과 햇빛을 보지 못한 콩나물은 시들거나 죽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잘 자랄 것이다. 직관적으로 알기 쉬운 결과다. 그러나 과학은 탐구와 실험의 학문. 뻔히 알고 있는 사실 같아도 가설을 설정하고, 실험 설계를 하고, 실험 결과를 관찰 및 정리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물을 줄 때는 일정량을 주어야 합니다. 또 그룹별로 물의 총량도 맞아야겠죠? 당연히 어둠상자를 수시로 들춰보는 것도 안 됩니다."

아주 간단한 지침이다. 햇빛이야 창가에서 자동으로 공급되니 신경 쓸 게 없고, 학생들이 관리해야 할 것은 오직 물의 양과 물을 주는 간격뿐이다. 나는 실험 세팅을 마치고, 마음을 푹 놓았다. 불이나, 칼을 쓰는 요리 실습에 비하면 콩나물 실험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처음 며칠은 괜찮았다. 창가의 콩나물은 햇볕을 쬐며, 푸르게 자랐다. 

3일째부터 변화가 나타났다. 햇볕만 쬐는 콩나물이 마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가을이라 건조한데 볕이 강한 곳에 두니 쭈글쭈글해지는 걸 피할 수 없다. 본잎을 틔우기는커녕, 떡잎을 지켜내는 것도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으음,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군', 하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아이들은 곤란해 보였다. 콩나물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죄책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는 물을 줘서는 안 되는 페트병에 물을 넣으려 했다. 

"안 됩니다. 이건 콩나물 기르기가 아니라 실험이에요. 마음이 아프겠지만, 또다시 물을 주려 하면 수행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참읍시다."

나는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무언가 불길한 기척 같은 것이 교실 안을 배회했다. 나는 그것을 확실히 느꼈다. 시간이 어찌어찌 흘러 드디어 실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내 걱정과 달리 돌발상황은 벌어지지 않은 듯했다. 실험 결과를 확인하려 네 개의 실험군을 한데 모았다. 창가에 둔 두 콩나물은 성장 차이가 확연했다. 평소 봐 오던 모습이었기에 차분하게 실험 결과를 정리했다. 이윽고 어둠상자에 갇혀 있던 콩나물을 확인할 차례가 왔다. 검은색 상자를 들어 올렸을 때, 나는 일주일 내내 뒷덜미를 섬뜩하게 하던 불안감의 정체와 마주하고 말았다.

의외의 변수 
 
 콩나물 실험 네 그룹
 콩나물 실험 네 그룹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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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상자 안에 있던 두 페트병에 모두 물이 들어간 것이다. 원래라면 한쪽 페트병은 완전히 건조해야 한다. 그런데 콩나물 아래 깔아 둔 거즈에 물기가 약간 있었다. 희미하긴 해도 확실한 물의 흔적이다. 아이들이 규칙을 잊은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3일째 되던 날, 중간 점검 차 확인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싹 말라 있었다. 나는 누누이 변인 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아이들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경우의 수는 오직 하나다. 누군가가 3일 이후 의도적으로 물을 준 것이다. 

투입된 물의 양이 적어서 실험 결과에 큰 지장은 주지 않았지만, 명백한 변인 통제 실패였다. 해당 어둠상자를 관리한 학생은 모두 다섯 명. 그러나 누구도 물을 넣지 않았다고 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첫날부터 이 아이들은 앞으로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되겠네"라며 흡족해했으니까. 

외부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근거는 나머지 어둠상자에 들어 있는 페트병의 물의 양이다. 애초 이번 실험에서 물을 주기로 계획한 페트병은 두 개였다. 원래라면 두 페트병에 같은 양의 물이 들어가야 하지만, 창가 페트병보다 어둠상자 안 페트병에 물이 더 많았다. 실수라고 하기에는 물의 양이 확연히 차이 났다. 아마도,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아까 건조한 거즈에 물을 부은 범인이 다른 어둠상자에도 물을 더 부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 감시를 피하기 위해 어둠상자 안에 들어 있는 페트병만 노린 것도 공통점으로 보였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짧은 수업 시간 동안 그것까지 파악할 여유는 없었다. 다만, 이번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있다. 수업이 끝나고 콩나물 분양 의사를 물어보았다. 햇빛과 물을 공급받은 콩나물은 싱싱하고 건강했다. 나머지 세 콩나물은 폐기하더라도 이 콩나물은 가져가려는 아이가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이거 가져다가 길러볼 사람?"

네 명이 손을 들었다. 가위바위보로 한 명을 뽑았다. 그런데 나머지 세 명이 다른 콩나물도 괜찮으니 가져가겠다고 나섰다. 그중 K는 햇빛도, 물도 못 받은 화분을 고집했다. 

"이거 곧 죽을 텐데. 치우기 곤란하지 않을까?"
"제가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도 이런 화분 살려 봤거든요."
"괜찮겠어?"
"이대로 죽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단호한 눈빛에 나는 페트병과 어둠상자를 덜컥 내주었다. 나는 정말 모른다. K가 이들 콩나물에 물을 주었는지 아닌지. 사건의 전말은 오직 묵묵한 저 콩나물만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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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교육, 그림책, 육아, 일상 주제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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