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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먼저일까, 간호사가 먼저일까.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질문처럼 답하기 곤란할 건 없다. 고정관념과 보는 관점에 따라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답변이 나올 성싶다. 물론, 십중팔구는 의사라고 답할 것이다. 나도 입원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입원 환자라면 간호사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의사의 정확한 진단만큼이나 간호사의 자상한 돌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질병의 종류와 경중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하루 중 의사를 만나는 시간은 길어야 10분을 넘지 않는다.

이른 아침 병실에 찾아와 안부를 물어주는 이도, 시간마다 찾아와 혈압과 체온을 재는 이도, 하다못해 끼니때마다 처방된 약을 가져다주는 이도 간호사다. 이 모든 행위가 의사의 지시에 따른 것은 아닐 테다. 간호사를 의사의 보조 역할로 규정할 순 없다는 이야기다.

환자에게 둘은 같은 의료인으로서 팀워크를 발휘하며 협력해야 하는 관계이지 위계질서를 따질 순 없다. 의사와 간호사는 서로 넘나들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 분명 있다.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좋은 간호사의 돌봄을 받는 건 환자에겐 축복이다.

외래 환자를 담당하는 곳이야 대개 오후 6시면 문을 닫지만, 입원 병동은 응급실처럼 24시간 운영 체제다. 한밤중에도 당직 의사와 간호사는 비상 대기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운위되는 시대라지만, 다른 업종은 몰라도, 병원에서 밤샘 근무가 사라질 가능성은 없을 듯하다.
 
과연 의대와 간호대의 내신과 수능 점수 차이가 평균 대여섯 배의 급여 차이를 정당화할 만큼 중요한 지표일까.
 과연 의대와 간호대의 내신과 수능 점수 차이가 평균 대여섯 배의 급여 차이를 정당화할 만큼 중요한 지표일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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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원한 한방 병원엔 응급실이 없어 아침 동이 틀 때까지 환하게 불이 켜진 곳은 간호사실뿐이다. 수면 장애로 한밤중 쉽게 잠들지 못해 거의 매일 복도와 휴게실을 어슬렁거리며 간호사실을 지나쳤다. 그때마다 두세 명의 간호사가 졸린 눈을 비벼가며 근무하고 있었다.

자정을 넘긴 늦은 밤에도, 3시경 이른 새벽에도 간호사실이 빈 경우는 보질 못했다. 잠자는 시간이 불규칙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들의 근태를 감시하는 꼴이 됐다. 난 병원에서조차 초저녁에 잠이 들어 자정 무렵 깨는가 하면,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 이루는 때도 있다.

그러다보니 밤샘 근무 중인 몇 분의 젊은 간호사와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수면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을 만큼 세심하고 친절한 분들이다. 환자와 간호사 사이의 시시껄렁한 대화였어도,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보는 나름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아래 내용은 이분들의 의견일 뿐, 전체 간호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간호사를 꿈꿨다며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남달랐다. 여느 직업에 견줘 필요로 하는 곳이 많고, 퇴직 이후 할 수 있는 영역도 넓다며 내심 뿌듯해했다. 병원 내 20명 안팎의 간호사 모두가 정규직이라며, 신분이 안정돼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고도 했다.

아쉬운 점도 덧붙였다. 당당히 의료 면허를 취득한 전문직인데도, 반말투로 하대하거나 아직도 '간호원'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러 있어 당황스럽단다. 심지어 다짜고짜 의사 선생님을 모셔 와라며 폭언을 일삼는 '진상' 환자들이 여전히 있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간호사를 의사의 손발 노릇을 하는 시중처럼 여기는 이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는 거다. 심지어 수시로 병실에 호출하여 간병인처럼 부리는 환자도 만난 적이 있다면 고개를 가로저었다. 병원에서 나이 든 남자 의사와 젊은 여자 간호사의 조합은 참으로 질긴 고정관념이다.

남자 간호사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밤중 환자 이송이나 응급처치 등 물리적 힘을 필요로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러한 경우 여자 간호사만으로는 힘에 부친다는 것이다. 최근 대학마다 간호학과에 지원하는 남학생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말한 이유다.

교대제라는 근무 여건에 대해서도 물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밤샘 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다는 뉴스를 들은 터다. 현재 3교대제로 운영되고 있다는데, 근무표를 보면 부정기적이지만 얼추 나흘에 한 번꼴로 밤샘 근무를 하도록 편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은 교대제 근무 방식이 현재로선 최선이라며 수긍했다. 환자에게 낮과 밤이 없다면, 간호사에게도 당연히 낮과 밤이 없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밤샘 근무를 한 뒤에도 바로 다음 날 오후에 출근해야 했던 과거에 비하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건 사치라고 했다.

애먼 교대제를 손보기보다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이구동성 말했다. 교대 근무에 따른 체력적 부담이 만만치 않아 한두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은 하게 된단다. 

그래선지 그들은 의사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의 주장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 어떤 이유를 들이대건 결국은 돈 문제 아니겠느냐며 눈을 흘겼다. 지금도 결코 소득이 적지 않은데, 만약 자신이라면 돈을 위해 시간과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진 않을 거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급여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간호사의 초임은 여느 직장에 견줘 낮은 편은 아니지만, 급여 인상 속도가 너무 더디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병원급에 따른 간호사의 임금 격차가 서둘러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적이 놀라웠던 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큰(작년 기준, 의사의 평균 월 소득이 1,400만 원에 이른다) 의사의 급여에 대해선 언뜻 당연하게 여겼다. 자신들보다 학창 시절 공부를 훨씬 잘했고, 의대 진학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했으니 응분의 대가라는 것이다.

이태 전 '수능 점수가 한 사람의 평생 자존감을 결정짓는다'는 한 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수시충', '지균충' 등 대학 입시와 관련된 온갖 혐오 발언이 난무하던 때였다. 이는 정시 합격자가 수시나 지역 균형 선발을 통해 입학한 이들을 향해 실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싸잡아 조롱하는 표현이다.

과연 의대와 간호대의 내신과 수능 점수 차이가 평균 대여섯 배의 급여 차이를 정당화할 만큼 중요한 지표일까. 이러한 승자독식의 능력주의야말로 의료 공공성을 해치는 주범인지도 모른다. 지금 학교마다 오로지 의대 진학을 위해 삼수, 사수도 불사한다는 수험생이 적지 않다.

시선이 아이들을 향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한 이가 진정한 교사이듯,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들 곁에 오래 머무르려는 이라야 진정한 의사이고 간호사다. 만연한 능력주의는 환자를 '고객'으로 여기게 될 공산이 크다.

간호사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낀 입원 기간이었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최전선에서 헌신하는 분들인 데다, 얼마 전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하며 집단행동을 이어갈 때 의료 현장을 묵묵히 지켜낸 분들이라 더욱 감사하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른바 'K-방역'도 없었다.

오늘도 두세 분의 간호사들이 밤샘 근무를 견뎌내고 있다. 그들의 퀭한 눈을 보노라니, 간호사의 처우 개선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자면, 그들도 능력주의에 순응하기보다 돈과 권력을 모두 손에 쥔 의사의 특권 의식에 맞서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태그:#능력주의, #간호사, #의사 파업, #교대 근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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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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