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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아래의 오리발, 대학원생
 
지난 10월 6일 오전 10시 30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가 국회 정문 앞에서 '안전한 대학 조성 및 대학 공공서 확대를 위한 대학원생노조 국회 앞 농성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0월 6일 오전 10시 30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가 국회 정문 앞에서 "안전한 대학 조성 및 대학 공공서 확대를 위한 대학원생노조 국회 앞 농성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 대학원생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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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3일에 설립총회를 가졌으니, 곧 있으면 대학원생노조 활동도 만 3년에 접어든다. "노동자도 아닌 학생들이 무슨 노조를 만드느냐"라는 물음과 "근로기준법을 지킬 거면, 공부는 하루에 8시간만 할 거냐"라는 비아냥을 헤치며, 힘겹지만 열심히 싸워온 기간이었다. 

조교 대량해고 저지, 강사법 개정, 대학 내의 인권 문제, 권력형 성폭력 등의 사건들을 거치며 '대학원생이 노동자'라는 것까지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대학 내에 산적한 문제와 대학원생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공감대는 꽤나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대학원생도 노동자"라고 외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대학과 학계는 대학원생의 노동에 상당 부분 기대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곳곳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행하고 있는 수많은 조교가 있다. 대학 행정의 많은 부분이 조교들의 역할에 기대고 있다. 다양한 프로젝트에는 연구보조원, 학생연구원 등의 다양한 이름을 가진 대학원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실제 프로젝트의 수행을 위한 기초연구와 실무는 이 대학원생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많은 연구자가 모여 학술적 논의와 연구를 수행하는 학회와 연구기관에도 대학원생들은 존재한다. 역시 다양한 실무와 행정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생노조 출범선언문에 쓰인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지식생산의 공장인 대학의 필수불가결한 노동자들"이며, 대학은 "성원들을 착취하여 자신을 보존"하고 있다.

평온하게 물 위에 떠 있는 오리의 발은 물속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듯, 조용해 보이는 대학과 학계를 떠받치는 대학원생의 노동 역시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당연하게도 대학과 학계 바깥의 사람들은 이를 느끼기도 찾아보기도 어렵다. 이렇게 '비가시화된 노동' 일수록 '착취'는 쉽게 일어난다. 결국 '비가시화된 노동'을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한다.

대학원생들의 절박한 외침

"대학원생도 노동자다."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가 된다면, 다음의 문장은 어떠한가?

"대학원생도 사람이다."

대학원생 농담 중에 연못에 빠진 대학원생은 "대학원생 살려!"라고 외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대학원생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 살려!"라고 하면 다른 이들이 구해주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모 국회의원실에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에 "사람(대학원생을 포함한다)"이라는 개정항목을 집어넣기도 했다. "역시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다"며 다시 한번 대학원생 사회가 들썩였던 해프닝이다.

근데 이것을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는 사건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하여 모두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그로 인한 여러 갈등 또한 표면화되며 폭발하고 있다. 이는 대학사회도 마찬가지이다. 확진자 발생으로 폐쇄된 건물의 연구실에 출근을 강요받는 등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 사례가 보도되면서 대학원생의 현실이 폭로되는 중이다. 

작년 12월 27일에는 경북대 화학관에서 시료를 폐기하던 중 일어난 폭발사고로 4명의 학부생 및 대학원생이 커다란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엄연히 대학 안에서 실험이라는 '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지만, 대학원생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의 대상이 아니었다. 경북대는 피해자 가족 및 대학원생노조 등의 끈질긴 투쟁 끝에 치료비 지급을 약속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사례들이 대학에는 넘쳐난다. 

이렇게 커다란 사고가 발생하고, 누군가는 생명에 큰 위협을 느낄 정도의 피해를 입어야만 그의 삶은 가시화 된다. 그 이전까지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 놓여 있는, 여전히 비가시화된 존재들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현재 대학원생노조가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게 된 것은 이와 같은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해결의 첫 걸음
 
지난 10월 6일 오전 10시 30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가 국회 정문 앞에서 '안전한 대학 조성 및 대학 공공서 확대를 위한 대학원생노조 국회 앞 농성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0월 6일 오전 10시 30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가 국회 정문 앞에서 "안전한 대학 조성 및 대학 공공서 확대를 위한 대학원생노조 국회 앞 농성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 대학원생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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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6일, 대학원생노조는 국회 앞 농성에 돌입하면서 아래와 같은 '대학원생노조의 대국회투쟁 4대 요구안'을 내걸었다.

- 실험실 안전 강화 및 대학 소속 학생연구원 산재보험 적용
-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근절을 위한 관련법안 개정
- 대학원생이면서 조교, 연구원, 학회 간사, 대학 강사직을 수행하는 대학원생 노동자에 노동기본권 보장
- 등록금 감면, 교육/연구환경 개선, 구성원 처우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4대 요구안 관철은 대학원생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것은 "대학원생도 노동자고, 사람이다"라는 외침이기도 하다. 각각의 요구안에서 드러나는 대학원생의 현실은 앞으로 이어질 글들을 통해 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태그:#대학원생,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대학원생노조, #대국회투쟁,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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