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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신문사 기자다. 주간 신문사인데 매달 마감날이 되면 나는 일찌감치 이분께 문자를 보낸다. 내 글 담당이어서다. "글 쓰고 있습니다. 마감 시간 안에 보낼 테니까 걱정 접고 볼일 보세요"라고.

원고 마감일을 알리고 독촉을 해야 하는 이 분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것인데 그분은 굳이 답장을 보낸다. "네" 또는 "알겠습니다"라는 답장이 아니다. 그 정도라면 내가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짧은 답글 하나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청명한 일기가 이어지고 있네요.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크게 내려가다 보니 목이 자꾸 잠겨서, 혹시 코로나인가 하는 날이 많아지긴 합니다. 어쨌든 고개 들어 올려 다 본 하늘은 맑기 그지없어 좋군요. 마감 안에 글을 보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남은 가을 만끽하시는 날들 되시길 바라며..."

이 글은 짧은 편이다. 어떤 글은 거의 한 편의 수필에 버금가는 분량이다. 그 기자가 보내는 문자 내용은 제각기 그의 정감 어린 일상들이다. 주말에 김천 본가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이 막혔다든가, 긴 장마와 태풍으로 마음이 어수선해 마음 다스리는 방법으로 명상음악을 자주 듣는다든가, 장맛비를 보니 '3년 가뭄은 견뎌도 석 달 장마는 못 견딘다'라는 돌아가신 아버지 말씀이 새삼스레 떠올랐다는 문자들이다.

내가 제주도 어느 시설로 가서 여러 날을 장애인 돌봄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원고를 보내고 나서 무슨 답변이 올까 자못 기다려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문자에는 제주도 이야기가 담겼다.

지난 여름에 장모님 칠순이라 제주여행을 계획 했었는데 마침 가려던 날짜에 태풍이 불고 코로나도 재확산 되는 바람에 못 가서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면서 잘 다녀오시라는 문자였다. 그래서 한때는 그가 신문사의 문자 담당 전문기자일까 생각했다. 문자 담당 전문기자를 두는 신문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 기자가 쓰는 기사가 그 신문에 넘치므로 엉뚱한 생각을 접었다.

코로나로 대면 기회가 적고 안면 없는 사람끼리도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기회가 많아지다 보니 무시되는 예절들이 많다. 앞뒤 다 잘린 용건만 오간다. 몇 년 만에 만나는 경우라도 급한 마음에 다짜고짜 용건만 건넨다.

홍성에 사는 후배다. 근 10여 년 만에 연결되는 문자였는데 간단하기가 단세포생물 같았다. 내가 사는 지역을 가리키며 "**에서는 뒤영벌 분양받을 수 있다면서요?"였다. 벌을 키우지 않는 나는 그걸 알아보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가 왜 물어보는지, 확인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설명이 없다보니 내가 몇 번을 되물어야 했다.

외부 강의를 하게 되는 경우, 해당 기관으로 강사 카드나 통장 사본 등을 보내는 일이 잦다. 어떤 실무자가 내가 보내 드린 서류들을 보고는 질문 문자를 보내왔었다. "주소지 번지수는?"이라고. 우리 집 도로명주소에 뒤 지번이 없어서다. 이때 느낌은 마치 노크도 없이 화장실 문을 여는 듯하다.

온라인 예절이 무시되는 가장 백미는 "말씀하세요"다. 공공기관이나 언론사 등에 전화할 때는 내가 누군지 밝히고 간단히 용건을 말한 뒤에 담당자로 안내된 누구를 바꿔 줄 수 있는지 물었을 때 "말씀하세요"라는 답변을 종종 듣는다. "네. 제가 누구 맞습니다"라고 하면 될 것을 그냥 "말씀하세요"라고 하니까 당사자가 맞는지 아니면 자기에게 얘기하면 전해 주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요즘은 웬만해서는 전화도 불쑥 안 한다. 상대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지라 전화에 앞서 통화 한번 하고 싶다는 문자부터 보낸다. 통화 여부와 통화 시간에 대한 결정권을 상대에게 드리는 태도다. 정보의 홍수시대에는 정보 기기의 남용은 당연히 공해가 된다. 소음공해, 전자파공해, 빛 공해 등등. 공해 물질은 함부로 상대에게 보낼 수는 없다. 공개 단톡방에 사적인 얘기를 늘어놓는 것도 공해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아는 사이에도 자신을 먼저 밝히는 게 좋다. 상대방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있을 때는 전화기에 뜨는 발신자 이름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자도 되도록 6하원칙에 맞게 쓰면 좋다. 음성과 표정이 없는 비대면 대화이다 보니 시제가 없는 문자는 해독이 안 될 때가 많아서다. 이렇게 하면 전달력도 좋고 기분도 좋다.

전화기를 잃어버려서 전화번호가 몽땅 사라진 경우가 있을 것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대뜸 급하게 용건을 늘어놓는다. 누군지 목소리를 감별에 시간이 걸린다. 누구냐고 물으면 바로 이름을 말해 주면 될 텐데 "나 몰라? 섭섭하네"라고 한다. 허 참.

비대면 소통에서는 대면 소통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오해와 와전이 왕왕 있다. 깊어지는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소통의 예절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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