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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내가 없다면>
 책 <내가 없다면>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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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월이 막바지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맘때면 올해는 어떤 일을 했고, 어떤 글을 읽고,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저절로 돌아보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새해 다짐과 함께 구매해 놓았던 책들 중에 미뤄두고 책장에 꽂아만 두었던 책들을 들추어 봅니다.

그렇게 먼지만 쌓여가는 책 목록 중에 깊은 뜻 없이 '제목과 헤드 카피에 이끌려서 구매'했다가, 계속 뒤로 뒤로 밀려나 여름에서야 선택되었고, 40일이 꼬박 걸려서 다 읽은 책이 바로 이책 애덤 해즐릿 장편소설 <내가 없다면> 입니다.

"수도 없이 가슴이 무너졌다는 말 말고는 달리 이 작품이 지닌 힘과 깊이를 표현할 길이 없다."
"'타임', '월스트리트저널', 'BBC' 등 올해의 책 선정, 퓰리처상 최종후보작"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 소개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어요.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는 이와 그 가족의 삶을 그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과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소개 문구에 저는 큰 고민 없이 이 책을 구매했습니다. 잘 알 수 없지만, 잘 알고 싶은 이야기였거든요. 그리고 언젠가 이 소설책을 통해서 나도 또 내가 아는 사람들도 더 깊이 이해하고 품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들었거든요.

그런데도 이 책을 선택해서 펼치는데에는 시간이 참 오래 걸렸네요. 그야말로 우울감의 연속! 올해는 정말이지 그런 날들이었잖아요. 그래서 아마도 더 쉽게 펼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았어요. 이 책은 너무도 훌륭하게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두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다면>에는 5명의 가족이 나옵니다. 존, 마거릿, 마이클, 실리아, 앨릭.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입장에서 이야기와 상황과 감정이 전개됩니다. 우리는 보통 주인공의 시각에서 사건의 전개와 감정의 흐름을 느끼게 되는데요. 저는 항상 그게 좀 불만일 때가 있었어요. 

물론 불꽃같은 연기력이나 흡입력으로 존재감을 떨치는 신스틸러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그렇게 주인공과 주조연을 통해서만 알게 되잖아요. 물론 이 이야기에도 주인공은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5명이니 주조연도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인공의 가족들 모두에게도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도 슬픈 그런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한달하고도 10일. 이 소설이 어렵다거나 재미가 없다거나 그런 류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네 ,역시나 넘기기가 쉽지 않았어요. 물론 제가 감정 이입을 너무 잘 하는 탓도 있었겠만, 올해는 7월 한달을 넘어 8월까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들에 이렇게도 사랑하는 소설 속 가족들의 마음이 너무 애달팠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다 읽고 났더니 뿌듯하면서도 꼭 기록을 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책장을 덮었을 때의 기분이 이제는 약간 희미해져버렸지만, 그래도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따뜻한 느낌은 여전합니다. 사람에게는 그런 힘이 있는 거 같아요.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소중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더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주 좋은 소설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있고, 사랑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아픔이 있고, 그리고 그 뒤에 다른 삶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하게 해 준 고마운 소설이었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혹은 내 안에서 또 내 가족, 내 지인들의 삶 안에서... 마치 감기처럼 걸렸다가 사라지고, 다시 걸리고 다시 사라지고... 아주 사소한 부주의로 아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찾아왔다가 모두를 휘저어 놓고는 사라지는 우울감. 우울증, 불안감, 불안증, 강박, 강박증... 그런 사소한 단어들로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응어리 덩어리 같은 것들을 생각해 봅니다.

너무 무겁게도 너무 심각하게도 너무 사소하게도 너무 안일하게도가 아니라, 현상으로 현실로 실체로 뚜렷하게 보려고 노력해 봅니다. 그래야 이 소설 속 이야기를, 이들 가족의 삶을, 그리고 나의 이야기와 우리 사회의 모습들도 하나씩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전혀 쉽지도 좋지도 않겠지만, 꼭 필요하고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살아가고, 세상 속에 서 있는 당신에게도 이 책을 추천합니다.
 
장거리 운전에 대비해 깜짝 선물 상자들을 미리 준비해서 아이들이 기대하게 만들고 길을 절반쯤 갔을 때 나눠주면 30분 정도 평화를 만끽할 수 있다. 이 상자들은 자동차 번호판 게임, 땅콩, 오렌지, 앨릭을 위한 작은 레고 세트, 실리아를 위한 책, 마이클을 위한 음악 잡지로 가득 차 있다. 아침에 아이들이 아래층에 내려오기 전에 선물 상자 제작을 끝내야 한다. 들키지면 재미없어지니까. 오늘은 앨릭이 부엌에 와서 아침으로 뭐 먹을 거예요? 하고 물어보기 1분 전에 간신히 끝냈다. -p.18 마거릿

그게 누군가의 생일이나 기일이나 결혼기념일이 아닌 이상, 다들 조금 놀란 표정으로 '왜 굳이 그런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나, 왜 그게 중요하나' 같은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대신 아이들에게 말한다. 아이들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사실 제대로 듣지도 않지만 어쨌든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자기들이 궁금한 걸 물어본다). 예를 들어 존이 예고도 없이 음식과 와인으로 가득 채운 차를 몰고 나타나서 나를 하일랜드로 데려간 건 16년 하고도 한달 전이었다. 존은 그곳에 나와 주말을 지낼 수 있게 친구 집을 빌려놨었다. -p.36~37

1부는 가족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부터, 점차 망가지고 어딘가 이상해지고, 돌이킬 수 없는 먼 곳으로 갔다가는, 존이 최종적으로 선택해야만 했던 그 처절한 순간까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들과 그것을 기억하는 엄마(마거릿)의 마음과 아주 사소한 일들도 처리하지 못하는 자신이 가족들의 삶을 갈아 먹는 것으로 생각하는 아빠(존)의 마음이 처음과 마지막에 상반되게 배열되어 더욱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의혹과 궁금증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이 책장들을 넘겼습니다. 
 
아빠의 아주 오랜 친구인 피터 로리언 아저씨가 전화로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줬어요. 나는 아빠를 어디서 발견했느냐고 물었어요. 숲속에서 발견됐다고 아저씨가 대답했어요. 다음 날 아침에 히드로 공항에서 아저씨와 만나기로 했어요. 아저씨가 우리 둘이 같이 보스턴에 갈 수 있게 비행 편을 예약해뒀다고 하더군요. 아저씨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하면서 이제 내가 엄마를 돌봐야 한다고 했어요. 나는 전화를 끊은 후에 이층으로 다시 올라가 45분을 더 자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어요. 사이먼과 사이먼 가족에게 그 소식을 전했을 때 모두 끔찍한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죠. -p. 147 마이클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도 내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과제(내 진짜 일)를 받게 됐죠. 그것은 단어들 속에 살지 않는 것들을 기록하는 작업이자, 귀로 유령들을 추적하는 작업입니다.
다음에 열거하는 약 중에 하나라도 복용한 게 있나요? 그랬다면 언제 얼마나 복용했고, 거기에 대한 당신의 반응은 어땠나요?  -p. 175

심지어 오빠까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오빠는 우리가 오빠를 위해 원한 삶을 자신도 원해보려는 노력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빠가 어떻게 멈출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개인이 아닌데. 산 자도 죽은 자처럼 우리에게 들러붙어 우리를 괴롭힌다. 난 전에 그걸 믿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게 사실이란 걸 안다. 오빠가 계속 우리에게 하려던 말은 바로 그것이었다.  -p. 405 에필로그
 
이야기는 존이 떠나고 남은 가족들의 일상을 세세히 비추고 있습니다. 결코 그대로일리 없을 것 같은 그들이지만, 그들의 삶은 견고합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하는 가족의 삶이, 각자가 맡은 가족으로서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죠. 각자의 자리를 지켜내야 했을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만 했고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이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보이지 않는 끈에 단단히 매여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빠의 부재 이후에 더욱 더 끈덕지게...

정말 존의 표현처럼 우연이 빚어내어 바람 한줌에 사라지고 부서져버릴까봐 걱정이 들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는 그 존재들이 얼마나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얽혀있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지 저는 알것만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그 소속과 유대감 때문에 언제라도 곧 무너지고 엉망이 될 것 같은 사람도 자신을 세우고 맡은 바 역할을 다하기 위해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애를 쓰고,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서로를 북돋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희생과 노력과 애달픔과 시간과 간절함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돌아올지라도. 가족 안에서 사람 안에서 '희망'을 생각해 봅니다. 그런 이야기가 이 소설 속에는 담겨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제게도 이 가족의 우울감이 전이되어 휩싸고 돌았습니다. 그래서 이미 너무도 우울한 지경에 빠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또 점차 우리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정신적 피로감과 위로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상황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합니다. 또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폴이 마거릿에게 해주었던 것 처럼' 누군가에게 귀기울여 주고 싶을 때라면 분명히 참 좋은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https://hearthouse.tistory.com/602?category=14072  [심동(心動) 마음이 움직이는 공간]


내가 없다면

애덤 해즐릿 (지은이), 박산호 (옮긴이), 은행나무(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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