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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개천절에 번개가 열렸다. 서울, 부산, 대전, 대구, 울산 전국에 있는 사람 뿐 아니라 캐나다, 중국에 있는 사람까지 대거 모인 이 번개는 광화문에 세운 경찰차벽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이른바 '온라인 번개'.
 
코로나로 집콕할 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주는 온라인 번개
 코로나로 집콕할 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주는 온라인 번개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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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카페에서 개천절이면 매번 오프라인 번개를 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번개를 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한 분이 온라인 번개를 한다고 게시글을 올렸다. 자기 소개를 하며 어떤 음식을 먹을 건지 알려달라는 요청에 따라 댓글로 한 명 한 명 모이기 시작했다.

"저는 OO에 살고요. 8살 아이랑 지지고 볶고 있어요. 음식은 곱창에 소주 안 될까요? 1차는 가볍게 식사라고요. 그럼,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랑 자몽에이드 시킬게요. 후식은 파르페~"
"저는 지금 고속도로 위에요.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OO에서 남매를 키우고 있어요. 음식은 떡볶이랑 쿨피스 주세요." 
"안녕하세요? (살포시 앉는다) 오마자마 자기소개하려니 쑥스럽네요.(바스락 겉옷을 벗고 배꼽인사) OO에서 온 OOO입니다. 6살, 2살 아이 키우고 있고 반갑습니다." 


속속들이 올라오는 댓글들에 음식 사진이 붙여지고, 얼굴 한 번 못 보고 닉네임만 아는 사이들이 너무도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회비가 2만 원이라 스테이크는 시킬 수 없다는 주최자의 단호한 거절에 좌절한 회원도 있고, 캐나다에서 참석한 회원에겐 회비를 면제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 이런 분도 있었다.

"저는 부산 시가에서 올라가는 중인데 안타갑네요. 가까운데서 열렸는데 참석을 못 해서.(주최자가 경남)"
"괜찮아요. 온라인이잖아요."
"저 지금 영동고속도로에요."
"앗, 그런 거예요? 그럼 참여해야죠."


카페 회원이 헷갈릴 정도로 우리는 진짜 번개처럼 놀고 이었다. 화면도 없는 온라인에서 자기 소개를 하며 상상력을 총동원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자기 소개가 무르익어 갈 때쯤 친분을 쌓은 이들이 정담을 주고 받는 댓글이 이어졌다. 급기야는 고속도로 위에서 번개에 참석한 회원에게 일이 생겼다.

"제가 달리는 차 안에서 번개를 하다보니... 우웁."
"봉지 여기 있어요."


60명이 참여해서 1차에 7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자기를 소개한다며 사진을 올리는 데 막 김태희고, 그런데 사람들은 또 호응을 하면서 즐겼다. 뭐 이런 데가 싶은 이 카페는 다름아닌 그림책으로 소통하는 모임이다. 

1차를 마무리 하고 오후 6시에 술판 번개가 열렸다. 이름하여 '번개 뒷풀이'. 곱창에 소주, 치킨에 맥주, 치즈에 와인까지 주종과 안주를 넘나드는 2차는 더욱 화끈했고, 10명이 추가 되어 이제 번개 인원은 70명이 되었다.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실제 먹고 있는 음식도 올라왔다. 맛있는 음식을 올린 회원에게는 댓글로 옆에 앉아도 되겠냐, 한 젓가락만 달라며 애교를 부리는 회원들이 등장했다.

이날 번개의 절정은 선물이었다. 이 카페의 특징 중 하나가 서로 선물을 퍼주는 거다. 평소에도 책, 아이들 장난감, 직접 만든 비누 같은 것들을 내놓아서 상품으로 나눠준다. 이번 온라인 번개에도 22명이 선물을 들고 참가했다.

책, 떡, 꽃에 커피 쿠폰이랑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선물이 쏟아져 나왔다. 번개에 참석한 70명 중 22명에게 선물을 나누는 방법은? 가장 공정한 사다리 타기. 사다리 타기 임무를 맡은 회원은 전지에 사다리를 직접 그리는 대담한 방법을 시도했다. 

선물도 나눠가졌으니 온라인 번개가 끝났을까? 여기서 끝나면 그것은 진정한 번개가 아니다. 모름지기 번개가 있었으면 후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새싹(신입) 회원에게 후기를 작성하는 특명이 주어졌다. 사상 초유의 온라인 번개 후기를 맡은 회원은 번개 후기 예고 글에 이어 후기 1탄과 2탄 총 3회에 걸쳐 후기를 남겼다. 그는 번개 후기글에 <사피엔스>책의 한 부분을 인용했다.

"사피엔스 언어의 특징은 전혀 존재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었다. 이 같은 인지혁명으로 인해 전설, 신화, 신, 종교가 등장할 수 있었다. 허구는 위험하고 시간을 낭비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됐다."

개천절 온라인 번개에서 그 옛날 사피엔스가 이뤄냈던 가상의 실재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공통의 믿음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가상의 실재. 서로 다른 곳에 있으면서 댓글로 실제 만난 것마냥 인사하고 음식 사진을 나누고 이야기 꽃을 피운 온라인 번개는 가상의 실재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으로 후기를 남긴 회원이 그날 있었던 일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이러더란다. 

"좀 이상한 사람들 아니야?"
"진짜 이상하다. 아니 다 가짜인 줄 아는데 왜들 그래?"
"그런 게 재미있어?"


집단적 상상을 경험하지 못한 이가 상상하고 즐기기엔 무리가 있을 만하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 보면서 왜 자꾸 웃냐는 옆지기에게 아무말 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동안 만남에 대한 갈증이 우리 안에 많이 쌓여 있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만남과 소통에 대한 욕구를 온라인 번개로 해결했다. 줌, 카카오톡, sns 외에 새로운 방법 소통 방법을 개척한 우리의 위대한 상상력은 유발 하라리가 말한 호모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이었다.

이 글을 읽는 사피엔스의 후예들은 온라인 번개, 집단상상력 놀이를 꼭 해보길 권한다. 코로나로 집콕할 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 준다.

태그:#온라인번개, #개천절, #집단상상력,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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