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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오후 9시 27분께 포천시 영로대교에서 미2사단 210포병여단 소속 미군장갑차에 SUV 차량이 들이받아 50대 부부 4명(여성 2명, 남성 2명)이 사망했다. 이후 사고 당시 주한미군이 2003년 체결된 '훈련 안전조치 합의서'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다.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을 계기로 체결된 이 합의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장갑차가 공공도로를 주행할 경우 호위차량을 동행하도록 하는 등의 안전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한밤중, 운전자의 시야 확보를 위해선 더더욱 필요한 조치였다.

때문에 정치권과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사고의 원인이 미군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단은 지난 9월 8일부터 미2사단 앞에서 기자회견과 집회를 이어가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한 포천경찰서는 미군이 합의서는 어겼으나, 도로교통법 상 처벌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주한미군을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처벌 규정이 없다며 합의서를 어긴 미군을 처벌하지 못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이번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자 하는포천경찰서의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포천경찰서는 운전자에게 면허 취소 수준의 혈중알코올농도 수치가 나왔고, 시속 60km 제한 구간에서 100km 이상 과속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포천경찰서는 블랙박스나, CCTV, 구체적인 혈중알코올 농도 수치 등 명확한 증거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을 뿐더러 수사과정에서 미군의 책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장갑차 운전병을 불러 기본적인 신원조사를 하는 데 그쳤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을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야 할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의 태도로 보기도 어렵다.

나아가 포천경찰서가 이 사건의 사망자인 50대 부부 4명을 가해자로 보고 있다는 것이 파악됐다. 지난 2일 포천경찰서는 SUV 운전자와동승자들이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하겠다고 밝혔다. 통상적으로 '공소권 없음' 처분은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에 이뤄진다. 다시 말해 포천경찰서는 사망한 4명을 피의자 즉, '범죄의 혐의는 받고 있으나, 아직 공소 제기가 되지 않은 사람'으로 단정지어 버린 것이다.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단이 동두천 시내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단이 동두천 시내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하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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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필자는 7일, 포천경찰서 관계자와 통화에서 "왜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이냐"라고 질문 했고, "공소권 없음 자체는 죄는 인정이 되나 가해자가 사망을 했을 경우에는 공소권 없음으로 한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포천경찰서는 "사망한 4명을 가해자로 보고 있는 것이냐" 라는 질문에 "그러니까 그렇게 된 것(공소권 없음)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필자가 "미군이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냐"라고 묻자, 포천경찰서는 "답변해 줄 수 없다"며 대답을 피했다.

문제는 이 사건에서 사망한 4명을 왜 피의자로 보고 있냐는 것이다. '훈련 안전조치 합의서' 내용에 따르면 '모든 전술차량에 대해 운전자의 시야를 저해하는 요소가 있는 경우에는 앞 뒤로 호위차량을 배치'하도록 되어 있으며, '군과 지자체를 통해 마을 주민에게 알리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합의 사항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의 명백한 가해자는 주한미군이다. 주한미군의 편을 들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 이러한 포천경찰서의 태도는 우리 국민을 기만하는 처사다. 대한민국 경찰이라면 마땅히 우리 국민이 억울하게 사망한 사건에 대해 미군의 책임을 묻고 책임자를 확실하게 처벌하고자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단이 포천경찰서 앞에서 제대로 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단이 포천경찰서 앞에서 제대로 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하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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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은 미군 여중생 압사(미선이 효순이) 사건 이후, 한미 당국이 2003년 체결한 '훈련 안전조치 합의서'를 주한미군이 지키지 않으면서 발생한 제 2의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다. 이번 사건의 분명한 책임과 과실은 미군에 있으며, 사망한 4명의 국민은 피해자다. 이러한 미군에 의한 끔찍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포천경찰서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포천경찰서는 국민을 선택할 것인가, 주한미군을 선택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하인철씨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활동가입니다.


태그:#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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