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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 '코나투스'를 지닌 동물이다. 생의 대척점인 죽음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드러낸다. 정OO(61세)씨를 향한 사람들의 지나친 경계심 또한 살고자 하는 코나투스의 반작용,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를 향한 무의식적인 저항감의 발현일 것이다.

"지인이나 친척 어른들 문병을 맘대로 못 갑니다. 어르신들이 위독하거나 편찮으셔도 문병도 못가고 안부전화도 자연스럽게 못해요. 제가 전화를 해서 건강 여쭙거나 찾아뵙거나 하면 괜히 오해들을 하신단 말입니다. 아예 드러내놓고 싫은 내색하는 분들도 계세요. 저를 마치 저승사자 보듯 합니다."

정씨는 인간관계의 기본 도리인 안부인사조차 편하게 못하고 사는 처지를 하소연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자신의 업체홍보나 영업행위를 하지 못하는 직업을 가졌다. 지인의 문병이나 안부인사 같은 자연스런 예절조차 삼가야 한다. 죽음에 임박한 이들일수록 그의 접근을 더욱 꺼린다. 본인은 순수한 의도로 하는 안부인사, 병문안이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자신에게 임박한 불행을 기회로 영업을 하려든다고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의 등장이 어떤 이들에겐 불길한 죽음의 신호인 것이다.

올해로 16년차 장례지도사인 정씨의 특수한 직업으로 인한 애환이다. 장례식장 사장인 그는 더욱 자신의 무심한 행동이 죽음에 가까워진 이들에게 계산된 사전작업으로 비칠까봐 신중을 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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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 4는 한국인들에게 죽음의 상징이다. 건물의 층수 표기에서도 아라비아 숫자 4를 영어 이니셜 F로 대체하는가 하면 아예 한 층을 없는 공간 취급하여 5층으로 건너뛰기도 한다."
 "숫자 4는 한국인들에게 죽음의 상징이다. 건물의 층수 표기에서도 아라비아 숫자 4를 영어 이니셜 F로 대체하는가 하면 아예 한 층을 없는 공간 취급하여 5층으로 건너뛰기도 한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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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4는 한국인들에게 죽음의 상징이다. 건물의 층수 표기에서도 아라비아 숫자 4를 영어 이니셜 F로 대체하는가 하면 아예 한 층을 없는 공간 취급하여 5층으로 건너뛰기도 한다. 단지 죽음을 뜻하는 한자와 발음상 동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에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숫자를 이토록 배척하는 한국인의 집단정서에도 죽음에 대한 인간의 저항의지가 드러난다. 그러나 남들은 되도록 꺼리는 이 숫자를 특별히 선호하고 애용하는 기이한 직군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분하는 모든 식별번호에 숫자 4를 의도적으로 남발한다. 휴대전화번호는 물론 사업체 전화 또는 업무용, 자가용 차량 번호판에도 4라는 숫자를 끌어다 쓰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4자를 외부적으로 되도록 많이 나열하는 것만이 자신들의 생업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해당 국번 뒤에 4자가 연달아 이어지는 통신가입자가 있다면 그 회선은 장례식장 전화임에 틀림없다. 자신들의 사업 활성화를 위해 타인의 죽음을 적극 장려하고 종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죽음을 연상하는 숫자 4를 대대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노리는 것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홍보다.

정씨가 몸담고 있는 사업장 입구 커다란 간판에도 숫자 4, 네 개가 나란히 도열하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거래를 성립하여 생업을 잇는 장례지도사다. 지인들이 업무상 관계로 거래하지 않을수록 좋은 직업인 것이다. 그러나 유사시 사람들은 그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는 누군가의 사후를 수습하는 유능한 장례지도사다.

상을 당한 상가의 상주가 상중에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하는 업무는 다양한 이동식 서류에 서명을 하는 일이다. 조문객을 맞는 기본적인 임무 외에 상주가 식의 진행에 관여하여 하는 일이 사인이라고 할 만큼 서명할 일이 많다. 장례용품지정, 옵션 선택, 접대음식 입고 확인, 화환 수령 등등 상복 입은 사람만 보면 해당 업체 직원들은 끊임없이 무언가 서명을 요구한다. 경황없는 와중에 직원이 바삐 손가락으로 짚어 주는 항목에 기계적으로 사인을 할 뿐 상주는 그 내용을 정확히 알지도 못한다. 심지어 요새는 화환업체들이 조의금 편부까지 대행하게 되면서 의뢰인의 조의금 봉투가 정확히 전달되는지를 입증할 인증 샷을 위해 상주에게 조의함 앞에서 포즈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밀려드는 조문객을 맞이하고 각종 옵션을 선택하고 서명하기도 바쁜 상주는 정작 중요한 장례절차를 챙기고 점검할 겨를이 없다. 대개 상주들에게 상주 역할은 평생에 걸쳐 몇 번 안 해본 서툰 경험이다. 그래서 실제 장례식은 전문 장례지도사들에 의해 진행된다.

장례지도사는 장례의식의 근엄한 제사장이자 유능한 행동요원이다. 의식을 집전하고 가족들을 안내하여 식을 이끌어나간다. 복잡하고 잡다한 일을 세세한 부분까지 총괄한다. 그러나 역시 장례지도사 업무의 진수는 염습이다. 안치대 위 낯선 주검으로 놓여 있는 고인의 신체를 능수능란한 솜씨로 씻고 닦고 단장해주고 염을 한다.

정 장례지도사의 직책은 사장이다. 사장으로서 장례식장의 운영과 의전을 책임지고 지금도 가끔 염습에 참여하는 등 활발하게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흔히 장례지도사하면 시신을 염하는 극한 직업만을 연상한다. 그러나 염습은 장례지도사들의 다양한 업무 중 극히 일부다. 장례지도사들은 장례식의 의전, 행정, 대외업무, 잡무, 상주 안정 등 모든 부분을 총 대행하는 전문인이다.

"아버님의 갑작스런 죽음이 계기였습니다. 아버님이 너무 이른 나이, 79세에 돌아가셨는데 그때 제가 받은 고통이 너무 컸습니다. 의지하고 존경했던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니까 사는 것이 너무 허무하고 부질없어 보였어요. 그 충격과 좌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한의사라는 유익한 직업으로 평생 남의 생명과 안녕을 위해 전념한 아버지가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데는 소홀하여 갑작스런 죽음의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걸 보면서 자식으로서 느끼는 부당하고 허무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깊은 슬픔과 절망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그는 어느 순간 아버님의 갑작스런 부재가 자신의 인생에 던지는 의미를 겸허히 되새겨보게 되었다.

대기업 부장에서 '저승사자'로

그는 아버님의 죽음을 계기로 중대한 결심을 했다. 한 대기업의 간부로 재직하면서 업무상 과로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시점이기도 했다. 대기업 부장이라는 직책은 그 이름값의 무게만큼 심리적 압박감으로 그를 옥죄고 있었다. 심신은 극도로 피폐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믿었던 아버님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허울 좋은 대기업 부장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 훨씬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생업에 남은 인생을 바치고 싶다는 강한 욕구에 휩싸였다.

17년 근무한 직장에 과감하게 사표를 썼다. 안정된 지위, 고액연봉이 보장되는 직장을 미련 없이 버린 그가 사표를 내자마자 곧바로 재취업의 기회를 찾아 향한 곳은 장례지도사 교육원이었다. 아버님의 장례를 치르는 며칠 동안 장례식장의 장례지도사들에게 강한 인상을 받은 터였다. 슬픔에 빠진 그의 가족을 대신하여 아버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던 장례지도사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그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제 자신도 그들과 같은 직업으로서의 동료가 되려 하고 있었다.

파격적인 그의 전업 시도로 가장 고통 받은 이들은 당연히 가족이었다. 대기업 부장님에서 하루아침에 장례지도사 연수생으로 신분이 바뀐 가장의 변신은 평온했던 가정에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어머님의 반대가 가장 극렬했다. '내가 너를 어찌 길렀는데, 남 시신 염이나 하려고 대학공부 했나', 어머님은 읍소로 만류했다. 어머님과 형제들 그를 아끼는 주변인이라면 모두 그를 제지하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런 그도 한창 예민한 사춘기 아들이 겪었을 혼란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들을 그는 아침이면 차로 등교시켜 주곤 했는데 새 직장인 상조회사 상호가 새겨진 승용차를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교문에서 멀찌감치 내려줘야 했다. 이직을 결심할 때 충분히 각오했던 난관이었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가족이 겪는 고통과 불편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 괴로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의 결심을 뒤흔들 수 있는 위치인 아내의 반응은 의외로 명쾌했다. 아내는 그의 충격적인 이직선언을 흔쾌히 받아들이는가 하면 적극 지지하기까지 해주었다.

장례지도사 교육원을 이수하고 정식 장례지도사로서 본격 업무에 투입되면서 그는 자신의 선택이 순간적 충동에 의한 무모한 것이 결코 아니었음을 확신했다. 단독으로 고인의 염습을 진행하던 날, 그는 인생에서 치렀던 그 어떤 시험보다 긴장되고 떨렸다. 그리고 첫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을 땐 온몸이 땀범벅이었지만 마음만은 평생 전념할 과업의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기쁨으로 벅찼다.
 
 염습실 내부. 두 장례지도사가 염습을 하고 있다.
 염습실 내부. 두 장례지도사가 염습을 하고 있다.
ⓒ 정OO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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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재취업에 성공한 그는 현재 16년째 두 번째 직업인 장례 업에 전념하고 있다. 남들에게는 극한 이색 직업으로 비치는 이 일이 그에게는 허무와 절망에서 돌파구를 찾아 발굴한 천직이다. 전문적인 장례지도사 자질을 갖추기 위해 그는 부단히 노력했다. 업종관련 자료를 열심히 찾아 배우며 그렇게 습득한 지식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다. 탄탄한 이론을 겸비하려 애쓰는 한편 현장 업무에는 늘 희생과 봉사정신이라는 초심에 충실했다. 한 사람 생애의 마지막을 위로하고 고독한 죽음에 존엄을 부여한다는 사명감으로 임했다. 지금은 장례식장 사장 직함에 이르렀다.

일반인들이 상상하듯 장례식장의 음습한 지하 염습실에서 시신을 씻고 닦는 일만을 전담하는 전통적 의미의 장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조회사 혹은 전문장례식장의 유니폼을 입고 상가를 책임지고 상담과 안내, 의전, 현장을 아우르는 장례지도사의 복합적인 업무가 제공되는 것이다.

장례지도사라는 자부심

"이 일을 돈 벌기 위한 직업으로만 접근하면 절대 안 됩니다. 특별한 사명감, 봉사정신이 없으면 길게 할 수 없는 직업입니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에요."

정씨의 본인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절대적이다. 장례지도사라는 직종은 일반인에겐 여전히 생소하고 선정적이다. 죽음 관련 직종에서 오는 호기심과 부정적 거부감이 우세하다. 그러나 정씨는 자신의 직업을 고인의 영혼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자로 규정한다.

그러나 정씨는 직업으로서의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업무의 성격, 강도에 적합한 수준의 금전적 보수를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두렵고 외로운 죽음에 대한 연민과 동정, 그리고 실의와 절망에 처한 상가에 위로와 구원이 되고자 하는 사명감, 봉사정신이 이 업종으로의 도전에 앞서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고인을 꼭 살아 있는 사람 대하듯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장례지도사들이라면 다 그런 자세로 대합니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산 사람과 망자 구분이 없어져요.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하듯이 똑같이 예우하게 됩니다."
 
 염습이 끝나면 입관한다.
 염습이 끝나면 입관한다.
ⓒ 정OO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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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지도사들에게 고인은 여느 사업체의 고객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고객을 대하듯 고인을 대한다. 깍듯이 예우하고 존중한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 대하듯 실감나게 응대하고 교감하는 자세는 장례지도사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직업병적 현상이다. 안치대(시신을 씻고 닦는 작업대) 위의 고인에게 공손하고 정중하되 삼가고 조심하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 비록 시신상태는 의식이 없는 무생물에 가깝지만 그들에게 고인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생명체처럼 소통하고 교감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장례지도사들은 시신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이 전혀 없다.

그들이 마주하는 인간의 마지막 떠나는 모습은 삶의 연장선이다. 상가마다 다양한 장례식 풍경이 펼쳐진다. 무연고 시신, 행려병자, 고독사, 자살자, 돌연사, 사고사 등 제각각 다른 사연을 안고 온다. 고인의 형태는 장례식장 환경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인다. 전문장례식장, 병원부속장례식장 또 병원장례식장 중에서도 종합병원과 요양병원 장례식장 상가 풍경이 다르다.

산부인과 항목이 개설되어 있는 종합병원의 장례식장에서는 영아 고인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그런 장례 진행은 장례지도사들에게도 상당한 정신력을 요구한다. 영아 고인도 엄연한 인격체로 간주되어 정식 장례절차를 밟도록 법제화 되어 있다. 주민등록번호와 이름도 얻지 못한 고인이 임시번호와 'OO아빠의 아기'라는 인식표를 달고 화장장으로 향할 땐 아무리 능숙한 장례지도사라도 냉정함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 외에도 우리 사회엔 안타깝고 슬픈 죽음의 사례가 넘쳐난다. 이런 상가의 다양한 성격은 장례지도사 업무와 직결된다.

심한 가난으로 수의 한 벌 입혀 보낼 수 없는 고인이 있는가 하면 장례식 비용을 엄두조차 낼 수 없어 가족이 혼자 집에서 치르는 장례도 있다. 정 장례지도사는 직업적 양심으로 자신이 접한 상가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자가 부담으로 수의를 구매하여 고인을 모신다. 근무 외 시간에 장례용품 일체를 챙겨가서 고독한 가정 장례식을 치러준 적도 있다. 살아생전 망자가 이 사회에서 차지한 신분의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그의 칠성판 위의 고인은 모두 평등하다. 인간으로서 마지막 가는 길, 최소한의 존엄을 누릴 권리가 그들에게 있다. 그는 이 당연한 인간의 권리를 위해 자신의 신체적, 물질적 희생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가 아버님의 죽음 앞에서 다짐했던, 대기업 부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장례지도사 교육원 접수처의 문을 두드릴 때 품었던 꿈과 이상을 그의 죽음관련 직업을 통해 구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시신의 원형회복

"우리 장례지도사들은 거의 맥가이버가 되어야 합니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다 사용해서 복원합니다. 우리 손을 거치면 아무리 훼손이 심한 고인의 신체도 보기 좋게 복원이 가능합니다."

장례지도사들의 염습과정에서 시신의 원형회복은 중요한 작업이다. 사고나 질병으로 훼손, 부패하거나 선, 후천적으로 신체에 결격상태를 지닌 시신도 온전한 형태로 복원하여 입관하는 것이 관례다. 복원을 위한 도구가 별도로 있지는 않다. 현장에서 조달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활용한다. 원형에 근접한 형태로 손상부위를 복원한다. 한쪽 팔이 없으면 팔 모양을 만들어 붙이고 다리가 한쪽 없이 한평생을 살았던 고인에게는 감쪽같이 다리 한쪽이 갖춰진다. 기상천외한 순발력으로 온갖 복원기술이 총 동원된다. 조만간 화장, 매장되어 자연으로 분해될 신체지만 이승을 떠나는 순간만큼은 온전한 형태로 보내고픈 장례지도사들의 배려다.
 
 배우 하지원은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장례지도사 역할을 맡았다.
 "조만간 화장, 매장되어 자연으로 분해될 신체지만 이승을 떠나는 순간만큼은 온전한 형태로 보내고픈 장례지도사들의 배려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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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시신을 똑바로 펴서 자세를 잡아주는 작업을 전문용어로 '수시'라 한다. 수시는 경직이 진행되기 전 진행해야 하는 촌각을 다투는 일인 동시에 고도의 집중력과 노동력을 요구하는 힘든 작업이다. 불행히도 고독사와 사고사가 빈번한 우리 사회에서 사후 경직이 완성된 채 발견되는 고인이 많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딱딱하게 굳어 뒤틀리고 산만한 형태의 신체를 무리가 가지 않게 하면서 똑바로 펴는 기술이 진정한 장례지도사의 능력이라고 할 만큼 고인의 자세교정은 중요한 작업이다.

복원 작업에 단순 탈골형태의 교정만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피부 복원도 중요한 복원작업의 하나다. 찢기거나 심하게 박피된 피부를 미관상 원만한 모습으로 꿰매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장례지도사 교육과정에는 피부에 하는 바느질 실습이 첨가된다. 돼지사체를 상대로 피부 꿰매는 연습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래서 염습 도구에는 외과용 바늘과 실이 구비되어 있다. 그런데 베테랑 장례지도사인 정씨가 유일하게 못하는 일이 바로 이 피부 바느질이다.

"망자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해요. 근데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피부 꿰매는 일은 못하겠어요. 아무리 여러 번 시도해봤지만 도저히 못하겠어서 그 일은 늘 동료들에게 위임합니다."

그만큼 장례지도사들도 각각의 개인차로 인한 업무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2편] 장례식장의 '관계자외 출입금지'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http://omn.kr/1p69l)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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