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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저녁 서울 노원구 원지력병원 장례식장 고 김례정 여사 빈소에 한 조문객이 분향을 하고 있다. 옆은 상주 우원식 의원.
 29일 저녁 서울 노원구 원지력병원 장례식장 고 김례정 여사 빈소에 한 조문객이 분향을 하고 있다. 옆은 상주 우원식 의원.
ⓒ 김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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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새벽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4선, 서울 노원을)의 모친 김례정(104) 여사가 별세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29일 서울 노원구 원자력병원 장례식장에 마련한 빈소에는 많은 조문객들이 다녀갔다.

추석 연휴로 4일장을 치르기로 해 오는 10월 2일이 발인이다. 29일 여야 국회의원, 정치인, 지역 주민 등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했다. 이날 노원이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비롯해 서영교 의원, 안규백 의원, 천준호 의원과 정의당 이은주 의원도 모습을 보였다.

이외에도 많은 정치인들이 조문을 했다. 각계에서 보낸 조화도 줄을 이었다. 특히 고 김례정 여사(1917~2020)의 영정 옆에는 문재인 대통령, 정세균 국무총리, 박병석 국회의장 조화가 놓였다. 고인의 초상 밑에는 부친인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 초상화와 훈장증, 지난 2010년 10월 30일 금강산 면회소에서 북측 딸(우정혜)과 조우한 사진 그리고 우원식 의원이 지난 2011년 모친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책 <어머니의 강>이 놓였다.

이날 밤 조문을 하며 고인의 영정에 국화꽃 한 송이를 받쳤다.

고 김례정 여사는 어떤 분이었을까.

1917년 서울 마포에서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과 배명원 여사의 3녀로 태어났다. 부모 슬하에 4명이 자식이 있었다. 첫째 원정, 둘째 인정, 셋째 례정, 넷째 외아들 담이었다. 둘째와 넷째는 어린 시절 일찍 사망했고, 큰 언니 원정은 이화중고 5년을 마치고 이화보육전문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큰언니 원정은 남편 김삼만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23년 김상옥 의사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으로 아버지 김한이 구속됐다. 그해 9월 동경 천황국 폭탄투척 사건의 박열 선생과 대질을 위해 아버지 김한이 도쿄 감옥으로 이감했다. 1930년 이화중학, 1931년 서울여상에 입학했고, 1936년 남편 우제화와 결혼해, 첫아들 영식(38년)과 첫 딸 정혜(40년), 덕혜(42년), 관혜(44년)를 낳고, 45년 8.15 해방을 맞는다. 이후 승혜(46년)를 낳고, 2년 후인 1948년 원우관 선생으로부터 부친 김한 선생의 사망소식을 듣는다.

인식(49년)이 태어나고 50년 6.25를 겪게 된다. 이 때 영식, 정혜, 덕혜를 황해도 연백으로 보낸다. 술장사, '양키' 물건 장사를 하며 6.25전란 중 생계를 꾸린다. 51년 1.4후퇴 때 고향에 내려온 영식을 상봉하고, 난혜(52년)를 낳는다. 53년 남북분단 휴전협정으로 딸 정혜·덕혜와 헤어진다.

53년 10월 딸 승혜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54년 남편 우제하의 금강채석장 등 사업에 힘을 보탠다. 이 때 천식(54년)과 막둥이 (우)원식(57년)을 낳는다. 77년 원식의 백지유인물 사건으로 연행되고, 원식 친구인 김거성, 노영민, 강성구 등도 시위 주도로 구속된다. 78년 원식이가 군대에 입대하고, 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총에 맞아 쓰러지고, 그해 12월 12일 전두환 쿠데타 성공을 목격한다.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고, 81년 5월 전두환 반대 학내사건으로 원식(3년형 선고)이 구속된다.

86년 5월 24일 청운동 자택에서 자식과 손주 등과 함께 금혼식을 한다. 이듬해인 87년 남편 우제화가 세상을 등진다. 2004년 우원식이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2005년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부친(김한)의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고 독립운동가의 딸이 된다. 2010년 10월 금강산 이산기족 상봉장에서 큰딸 정혜를 만났다.

고인은 생전 서울 노원구에 있는 꽃동산교회에 다녔다. 고인은 물론 막내아들인 우원식 의원 부부도 독실한 신자였다. 빈소에 많은 교인들이 다녀간 이유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고인은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의 따님이다. 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을 지낸 김한 선생(1887~1938)은 일제강점기 때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김상옥 의사에게 폭탄을 건넨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출옥 이후 신간회 활동을 했다. 연해주에서 스탈린에게 저항해 처형당했다. 정부는 2005년 고 김한 선생에게 독립운동을 인정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고인은 생전 최고령의 나이(당시 96세)로 2010년 10월 30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면회소에서 60년 만에 북측에 사는 딸(우정혜, 당시 71세)을 상봉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0년 10월 31일 자 <경향신문> 보도를 인용해 본다.
 
남측 최고령자인 김례정씨(96)는 1·4후퇴 때 황해도 연백에 두고 온 딸 우정혜씨(71)를 보자 "너를 어떻게… 꿈에만 보던 너를 어떻게…"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부둥켜 안았다. 딸은 "한시도 잊은 적 없습니다. 저는 잘 있습니다"라며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에게 안겼다. 우원식 전 국회의원의 어머니인 김씨는 다른 딸 덕혜씨(69)도 북에 살아 있다는 소식에 "꿈만 같다"는 말을 되뇌었다.
 
 
우원식 의원의 저서 "어머니의 강'에 수록된 2010년 10월 30일 고인이 북측 딸 상봉 사진들이다.
▲ 상봉 우원식 의원의 저서 "어머니의 강"에 수록된 2010년 10월 30일 고인이 북측 딸 상봉 사진들이다.
ⓒ 김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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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이듬해인 2011년 고인의 막내아들인 우원식 의원이 어머니의 구술을 바탕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기록한 책 <어머니의 강>(2011년 아침이슬)을 출판했다. 책은 60년 만의 상봉(1부)과 100년의 세월, 김례정 여사의 자서전(2부)으로 구성됐다. 특히 책은 최고령인 남쪽의 어머니 94세, 북쪽 딸 71세, 만남 자체가 기적 같은 일임을 그리고 있다.
 
'저기, 정혜다!' (우)영식 형님은 낮은 목소리로 정혜 누님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더니 바로 알아보셨습니다. 이게 혈육이란 것인가 봅니다. 정혜 누님이 엄마 앞에, 그리고 형제 앞에 환한 얼굴로 다가옵니다. 60년 만에 다시 만나는 모녀 간의 재회는 서로 끌어안으며 시작되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어머니의 강>은 우원식 의원이 썼지만, 어머니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기록한 자서전이나 다름없다. 책은 60년 만에 딸 상봉, 부친 김한 선생의 투옥과 감옥 생활, 입학한 이화중학 포기와 상고 간 이유, 남편 우제화와의 만남, 제관(霽觀) 김한 선생의 동지인 우관(友觀) 원정룡 선생에 대한 용서, 어려운 살림에 대한 책임감, 6.25사변 시절 딸 정혜·덕혜와 헤어진 사연, 전쟁의 고통, 술장사와 양키 물건 장사, 버스 바퀴에 깔린 어린 딸 승혜를 하늘로 보낸 날, 막내 (우)원식의 민주화운동과 투옥 그리고 구속자 가족 모임, 남편 사망, (우)원식이 국회의원 되던 날, 독립유공자의 딸 등의 내용을 담았다.

상중인 우원식 의원은 30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북측에 사는 누님들에게 "정혜 누나, 덕혜 누나, 막내 동생 원식이다. 누님들, 우리 어머니가 오늘 돌아가셨다"라고 글을 올렸다.

우 의원은 "10년 전 정혜 누님 만날 때도 만나지 못했던 덕혜 누나를 만나길 평생 기다리다 결국 못 보고 가셨다"며 "두 형님과 넷째 누님과 저, 그리고 우리 아이들, 손주들까지 모여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우 의원은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황해도 연안의 우정혜씨, 재령의 우덕혜씨에게 이 소식을 전달할 수 있는 분이 있을까, 있다면 꼭 전해주시기 바란다"며 "104세 어머니가 그리운 자식 얼굴 그리다 끝내 영면하셨다"고 글을 올렸다.

태그:#우원식 김한 김래정, #독립운동가 딸, #어머니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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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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