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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국을 달구고 있는 주요 사건들에서 사실 미확인 혹은 출처 불명의 가짜 뉴스를 그 동력으로 삼는 경향이 발견됩니다. 사회 구성원 간의 합리적 소통과 대처를 막고, 사회적 불안과 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이에, 조선시대의 익명성을 담보로 한 여론 조작 혹은 몰이 사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960년 2월에 있었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의 사망을 애도하고, 그해 3월의 조기선거를 비판하는 벽보.
 1960년 2월에 있었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의 사망을 애도하고, 그해 3월의 조기선거를 비판하는 벽보.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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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총리와 유사한 영의정부사) 하연은 가혹할 만큼 까다롭게 따지고, 또 노쇠해 정신이 가물가물하여 일 처리에 착오가 많았으므로, 어떤 사람이 언문으로 벽 위에다 썼다. '하 정승아, 또 공무를 멋대로 처리하지 말라.' (세종실록 31년 10월 5일)

누군가가 한글로 벽보를 남깁니다. 아마도 정부 조직·업무·인사 등에 대한 이해와 불만이 있는 자의 소행으로 보이는데요. 창제된 지 육년 만에, 이미 훈민정음이 상용화되었음을 유추하게 하는 기록입니다. 또한 한글로 작성한 최초의 익명 대자보로서 실록에 등장합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조선시대에도 익명 대자보가 있었습니다. 실록에는 벽서(壁書)·괘서(掛書)·익명서(匿名書)·방(榜)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대체로 임금·관리·국정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 지역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의 고발 등 공개적으로 하기 힘든 말을 적어서,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붙였습니다.

익명 대자보는 효과적인 소통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익명성이 주는 자유를 통해 민의의 표출과 파악이 용이하여, 소외되어 있던 현안을 해결하거나, 정치 문화의 개선을 도모하는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특정 집단이 허위 조작 정보를 유포하거나 누군가를 무고·비방하여, 민심을 흩트리고 선동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민란(民亂) 혹은 변란(變亂) 등의 반정부 투쟁을 촉발시키려는 시도도 동반합니다. 따라서 국가에서는 엄한 법으로 단속했습니다.
 
 명나라의 기본 법전인 <대명률>에 대한 해설서 <대명률강해>
 명나라의 기본 법전인 <대명률>에 대한 해설서 <대명률강해>
ⓒ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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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위(예언)·요서(민심을 어지럽히는 글)·요언(유언비어)을 짓거나 퍼뜨려 대중을 현혹시킨 자는 모두 목을 벤다. 요서를 소유하거나 감추며 관청에 제출하지 않은 자는 장 백 대와 강제노역형 삼년에 처한다. (<대명률강해(大明律講解)> 18권 '형률(刑律)' '적도(賊盜)')

익명서는 나랏일에 관계된 것이라도 그 내용을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조차 말을 옮기지 못한다. 말을 옮긴 자나 여러 날이 되도록 불태우지 아니한 자가 있으면 모두 법률에 따라 죄를 따진다. (<경국대전(經國大典)> '형전(刑典)' '추단(推斷)')


당시 조선에서도 통용되던 명나라의 형법전 <대명률>이나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 등에서는 익명 대자보를 작성하거나 소지한 자, 그 내용을 전달한 자를 불온 세력으로 규정하여, 국가 차원의 강제 노역에 동원하거나 사형에 처하는 등 무거운 처벌로 다스렸습니다. 익명성에 기대서 반체제적인 내용을 담은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는 명목으로 철저히 규제하려 한 것입니다.

반란의 시대와 익명 대자보

익명 대자보는 특히 조선 후기에 종종 등장합니다. 그 원인들 중 하나는 지배층의 권력 투쟁과 연관되는데요. 세도·붕당 정치로 표상되는 양반계층 내부의 갈등은 권력을 장악한 일부를 제외하고 다수의 몰락 양반을 양산합니다. 이때 실각하여 중앙정치무대에서 밀려난 이들 중 일부는 난으로 사회 불만 세력을 규합하며 집권을 도모합니다.

그 대표적 사례로 영조시대 초기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들 수 있습니다. 경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정치적 지위를 위협받게 된 소론과 남인의 강경파는 영조가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내세워, 영조와 그를 지지한 노론의 제거를 계획합니다.

영조를 폐위한 후, 경종이 후사가 없으므로 소현세자의 증손인 밀풍군 이탄을 왕으로 추대한다며, 세력을 규합한 것이 이인좌의 난입니다. 충청·영남·호남의 호응에 힘입어 서울로 향하던 반군은 열흘도 안 되어 진압됐는데요. 이들은 난을 전후로 하여, 전국 곳곳에서 익명 대자보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민심을 동요시킨 바 있습니다.

판중추부사(종1품 관리) 민진원이 글을 올렸다..."전국에서 잇달아 괘서하는 변란이 있었고, 무신년(영조 4년) 봄에는 역적들이 군사를 일으키며 의거라 자칭했습니다...전국의 괘서가 (이인좌의 난) 전후에 배포된 것은 맥락이 서로 연결된 것으로서, 흉악한 음모를 빚어낸 것이 하루아침이나 하루저녁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영조실록 5년 12월 7일)

영조도 괘서와 같은 익명 대자보의 심각성 및 영향력을 체감하고 대책을 강구합니다. 다음과 같이, 익명 대자보의 범인을 잡는 자에게 상금과 벼슬을 내리겠다는 명을 내리지요.

임금이 명하였다..."어떤 요망한 사람이 이 도리를 업신여기는 괴이하고 악독한 말을 지어내 민중을 현혹시키려 꾀하였다...가까운 성문에 또 흉서(반역을 꾀하는 글)를 붙였으니...이런 악독하고 흉악한 사람은 잡지 않을 수 없으므로...잡아서 고발하는 자는 이전 정부의 전례에 따라, 천금을 상으로 내리고 2품의 벼슬을 줄 것이다....이런 요망하고 악독한 자가 이와 같이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데도 내버려두고 묻지 않는다면, 장차 나라가 나라답지 못한 데에 이를 것이다." (영조실록 4년 2월 19일)

이러한 포상과 규제에도 불구하고 익명 대자보는 근절되지 않고, 또 다른 사건을 만듭니다. 예컨대, 앞서 소개했던 이인좌의 난은 그 뿌리와 여파가 길어서 30여년 후에 '나주 괘서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이인좌의 난으로 위축된 소론은 다수가 관직 혹은 신분이 복원되지 않았으며, 그들의 불만이 누적되어 윤지를 중심으로 한 난으로 폭발됩니다.

그들은 나주 객사(공무원·사신 숙소)에 국가를 비방하는 괘서를 붙여 민심과 세력을 모으는데 힘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거사 전에 괘서가 발각되며, 또 한 차례 피바람이 붑니다. 아래에서 나주 괘서 사건과 관련된 실록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통제 밖의 언론, 익명 대자보
 
 1934년에 촬영한 나주 객사의 일부.
 1934년에 촬영한 나주 객사의 일부.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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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사(현 전라도지사) 조운규가 나주 객사에 흉서가 걸린 사건을 급히 달려가 보고하니, 임금이 좌·우 포도대장(지금의 경찰청장) 및 전라감사에게 기한을 정하여 감시·검문하고 체포하도록 명하였다. 당시 신축년·임인년(소론이 노론을 제거하려 일으킨 신임환국) 때의 남은 무리와 무신년(이인좌의 난) 때의 잔당으로 번성한 무리가 있어 나라를 원망함이 날마다 심각하고 근거 없는 말이 날마다 일어나므로 식견이 있는 자가 걱정하였다. (영조실록 31년 2월 4일)

(공범이 자백하길) "윤지가...'20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고 있으면서 석방되지 못하고 있으니,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흉서를 걸어 민심을 동요시키려고 하는데, 민심이 동요된 뒤에야 바야흐로 (뜻한 바를) 할 수 있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영조실록 31년 2월 21일)

임금이..."역적 윤지는...먼저 괘서 사건을 행한 것은 민중을 속일 기회를 삼기 위해서였고, 전쟁이 일어난다는 불안한 말을 전파하여 스스로 소란을 피웠고, 마을이 흩어지는 날을 기다려 장차 협박하여 따르게 하고자 하였다." (영조실록 31년 4월 13일)


국정에서 소외되거나 가문이 몰락한 윤지 일당은 반란을 도모하며 거사 전에 가짜 뉴스를 먼저 퍼뜨립니다. 전쟁이 일어날 테니 자신들을 따르라는 등 대중을 자극하는 괘서를 내건 것이지요. 통제 밖의 언론인 익명 대자보의 힘을 그들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익명 대자보는 정치 현실을 널리 알리는 순기능이 있는가 하면, 국가 전복 혹은 지배 세력 교체를 목적으로 민심을 선동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매체로도 기능했습니다. 따라서 국가에서는 적극 규제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튜브·단체문자메세지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되는 '카더라 통신'에 대한 문제 인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일부 교회를 통한 코로나19 집단감염 확산, 의사 집단진료 거부 등 최근 국정을 장악한 이슈들이 가짜 뉴스를 토대로 그 지지세를 규합하고 있음이 속속 보도되고 있는데요.

사태의 해결을 막거나 연기시키고, 심지어 국정 지지도를 하락시켜 대통령 탄핵이나 정권 전복의 도모를 암시 내지 명시한 문서·문자 메세지 등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강력한 법적 대처에 다수의 국민이 지지를 실어줄 만큼, 민심은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바랍니다.

코로나19 국면의 장기화와 의료 공백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위해, 종교계와 의료계의 책임 있는 분들은 가짜 뉴스에 숨지 말고, 진정성 어린 자세로 각각 코로나 검사·치료와 협상에 적극 임해주길 바랍니다. 인류에 대한 사랑이 종교와 의술의 존재 의미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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