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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지난해였습니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아이가 어느 날 물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질문이 드디어 제 앞에도 당도한 것입니다.
 
옛날 부모님들처럼 '다리 밑에서 주워왔지'라고 의뭉스러운(?) 거짓말을 하거나 헛기침을 하며 외면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21세기 부모답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과학적으로 알려주자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설명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습니다. 때마침 성교육 전문가를 인터뷰할 기회가 생겨 저의 이러한 고민을 털어놨고, 성교육 그림책들의 도움을 받으면 괜찮을 거라는 조언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찾은 책이 최근 논란이 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입니다.
 
덴마크의 교사이자 성 연구가인 페르 홀름 크누센이 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성교육 그림책의 '고전'과도 같습니다. 1971년 덴마크에서 출간된 뒤 유·아동 성교육 자료로 쓰이기 시작했으며 이듬해에는 덴마크 문화부 아동도서상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절판되지 않고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에도 번역돼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알려주는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앞표지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앞표지
ⓒ 담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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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지나치게 외설적이거나 '19금 소설'처럼 선정적이지 않습니다. 일부러 몸매를 야하게 그리지 않고 해부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몸을 묘사했습니다.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은 섹스를 '즐겁다', '신나고 멋진 일이다'라고 표현한 것을 문제 삼아 초등학생에게 성관계를 장려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그런 맥락이 아닙니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무척 사랑해서" 아기를 낳고 싶어 하고, 그런 행복한 관계 속에서 아이가 태어났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의 핵심은 '섹스'가 아닌 '임신과 출산'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삽화로 간결하게 그려냈습니다. 온라인서점 웹사이트에 독자들이 남긴 평을 보면 "그림이나 표현이 사실적이지만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임신과 출산을 가르쳐준다"는 후기들이 많습니다.
 
처음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던 날, 저와 남편 둘 다 어쩔 줄 몰라 얼굴을 붉히던 게 생각납니다. 생물 교과서에서 볼 법한 생식기 용어일 뿐인데도 가족 앞에서 입 밖으로 내려니 민망했습니다. 저희 역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 아이와 성 지식을 나누는 것 자체가 생소했습니다.
 
반면에 아이는 평소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림을 보며 궁금했던 점들을 알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배 속 아기는 어떻게 밥을 먹어?", "태어날 때 탯줄은 어떻게 잘라?" 하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몸의 결합보다는 주로 태아의 성장과 출생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책을 두세 번 읽은 뒤로는 어떻게 태어났냐고 캐묻지 않았습니다. 역으로 제가 질문하면 "엄마 씨앗과 아빠 씨앗이 만나 엄마 배 속에서 자라면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꺼내줘" 하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야하다며 난감해한 부모와 달리, 아이는 담담하게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을 습득한 것입니다.
 
 지난 20197년 7월 열린 나다움 어린이책 전시회
 지난 20197년 7월 열린 나다움 어린이책 전시회
ⓒ 씽투창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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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여성가족부의 '나다움 어린이책' 추천도서입니다. 나다움 어린이책은 아이들이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나다움'을 찾아가도록 돕기 위해 여가부가 롯데지주,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2018년 12월 시작한 교육문화사업입니다.

▲ 자기긍정 ▲ 다양성 ▲ 공존이라는 3가지 핵심 기준에 따라 매년 추천도서를 선정하고 지원을 신청한 초등학교에 책과 자료를 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성교육 관련 책도 포함됐습니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도 그중 하나입니다.
 
교육적으로 만들어진 책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표현 방식이나 수위가 불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처음엔 놀랐으니까요. 아이들 교육을 위한 사업인 만큼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천도서목록을 조정해가야 할 것입니다. 적절한 독서지도도 당연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구시대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자기 몸을 이해하고 긍정하며 스스로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유네스코의 성교육 국제 실무 안내서는 5세 아동부터 연령대에 맞춰 성관계, 임신, 피임 등의 성교육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일찍부터 부모가 제대로 알려주면 아이들이 왜곡된 성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관련 기사 : "아이에게 '섹스' 말하기 어렵다면... '선빵'을 날리세요").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을 응원하는 이유
 
 2020 나다움어린이책 자료집
 2020 나다움어린이책 자료집
ⓒ 씽투창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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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이 후퇴하지 않길 바랍니다.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부모로서 자녀교육 문제로 헤맬 때마다 도움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나다움 어린이책 추천도서 목록은 평등과 다양성의 가치, 젠더의식과 성인지 감수성을 세심하게 담아낸 책들로 구성됐습니다. 지난해 7월 발표된 '2019 나다움 어린이책' 목록의 경우 작가, 출판계·아동문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도서위원회에서 수개 월 논의를 거쳐 선정기준을 정하고, 막판까지 의견을 수렴해 134종을 확정했다고 합니다. 관련 정보가 필요한 부모·교사가 손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통해 자료집을 공유하고 온라인서점과도 연계해 별도 큐레이션 페이지를 마련했습니다.
 
언론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당시 우연히 한 기사를 보고 나다움 어린이책의 존재를 알게 된 저는 웹사이트에서 도서목록을 내려받은 뒤 아이 교육 문제로 갈등이 생길 때마다 관련 주제의 그림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아이가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고집할 때는 나다움 어린이책으로 선정된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를 보며 남녀 상관없이 누구나 편한 옷을 입을 수 있음을 알려주는 식이었습니다. 또한 '축구는 남자가 하는 운동이냐'고 물어보면 <야, 그거 내공이야>를, 모든 아이들이 '아빠 엄마' 둘과 함께 사는 게 아님을 알려주고 싶으면 <문어 목욕탕>을 같이 읽었습니다. 올해 추가로 선정된 65종의 나다움 어린이책 도서목록에도 신선하면서도 교육적인 책들이 많아 틈틈이 참고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여가부와 협력해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을 해온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이번 논란을 이유로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는 보도가 26일 나왔습니다. 여가부는 문화적 수용성 관련 논란을 감안해 국회에서 지적된 도서 7종을 지원 대상 초등학교에서 회수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가부가 더 이상의 뒷걸음질 없이 "'나다움' 교육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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