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국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늘고 있다. 그중 상당수가 사랑제일교회, 그리고 광화문 8.15 집회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과거의 양상과 달리 두드러지는 특징은 감염자 중 노년층이 비율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노년층이 문제의 예배나 집회에 참석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코로나19 감염이 두려워 집에만 있는 노년층이 더 많다. 이들에겐 병원을 가는 것도 두렵고, 친구를 만나는 일도 어렵다. 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노년층은 어떻게 코로나19 시대를 통과하고 있을까?
 
고혜정(68) 씨가 새싹을 돌보고 있다.
 고혜정(68) 씨가 새싹을 돌보고 있다.
ⓒ 압구정노인복지센터

관련사진보기

서울 강남구에 사는 고혜정(68)씨는 요즘 새싹을 키운다. 그녀는 새싹에 물을 주고 햇빛도 쐬게 해주면서 잠깐이나마 여유를 가진다. 누군가는 새싹을 마트나 시장에서 사 먹으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겠지만, 혜정씨에게는 그것조차 쉽지 않다. 혹시나 근처 마트와 시장을 들렀다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무섭고 두렵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도 온통 코로나19 감염 상황 이야기로 가득하다. 코로나19 전염력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전년도 보다 심해진 장마는 덤이다. TV 뉴스에서는 올해 장마에 대해 보도하며 '54일의 기록적인 장마', '역대 최장 폭우'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혜정씨는 더욱 밖에 나갈 일이 없어졌다. 

작년 이맘 때는 노인복지관 프로그램을 참여하고 나면, 복지관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올해 혜정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갇혀버렸다. 2020년 혜정씨의 일상은 녹록지 않다. 그래도 씨앗을 보내준 사람들이 있어, 겁만 주는 TV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복지관 정서 프로그램이 가져다준 '행복'
 
혜정(68) 씨가 키우는 새싹
 혜정(68) 씨가 키우는 새싹
ⓒ 압구정노인복지센터

관련사진보기

혜정씨가 키우는 '새싹'은 노인복지관의 정서 프로그램 키트 구성품 중 하나다. '새싹 키우기' 덕분에 코로나19 기간에도 혜정씨는 새싹을 키우며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과 새싹으로 소통하며 일상을 보냈다. 혜정씨는 "복지관에서 서로 인사는 해도 개인적인 연락은 잘 하지 않는데, 새싹을 키우다 보니 전화하는 일이 많아졌다. 서로 새싹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잘 키우고 있는지 등의 정보를 주고받는다"라고 말했다.
 
"일찍 일어나 새싹에 물을 주고, 햇빛도 쐬게 해주고 하다 보니 부지런해졌어요."


코로나19 때문에 혜정 씨는 집에서 TV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새싹을 키우면서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고, 손주와 자녀들에게 직접 키운 새싹을 자랑할 수 있어 좋았단다.

코로나19 이전의 혜정씨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밖에서 운동도 하는 일상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집에서 꼼짝할 수 없게 됐다. 다행히 전화가 있어 보고 싶은 자녀들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잠깐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정말 만나야 한다면 소규모로 잠깐 만나고 헤어졌다.

개중에는 꼭 참석해야 하는 행사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곳에 갈 순 없었다. 참석해야 했던 장례식은 단출하게 가족상으로 치러졌고, 생일조차 주위 사람들에게 전화로 축하받았다. 혜정씨는 "자녀들이 저를 걱정해, 서로 만나는 것을 자제하고 각자 조심하며 지내자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달라진 노년층의 일상 생활

코로나19가 발병하면서 노년층의 생활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더군다나 혜정씨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건강에 문제가 생겼지만, 병원을 방문하기가 두려운 마음에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다가 병이 심해지기도 했다.

결국 혜정씨는 큰 병원을 방문해 진료를 받았다. 코로나19만 아니었어도 제때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혜정씨는 병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안전하게 코로나19 증상 검사를 하고 들어가니 두려움이 사라졌다. 또 자주 손을 씻고 마스크만 벗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혜정씨와 같은 노인복지관을 다니던 최영자(80)씨 역시 코로나 일상을 즐기려고 하고 있다. 조금 더 활발해진 바깥 생활만큼이나 집안에도 새로운 일이 생겼다.

영자씨는 집에서 콩나물을 직접 키워 먹고 있다. 노인복지관에서 보내준 콩으로 매일 물을 주고 조심스레 검은 천을 거두어 자라는 것을 지켜본다. 보통 요리 재료를 냉장고에서 꺼내 콩나물국도 끓이고 무침도 했는데, 이제 직접 키운 싱싱한 것으로 요리한다.
 
허영자(80) 씨가 직접 재배한 콩나물로 요리를 했다.
 허영자(80) 씨가 직접 재배한 콩나물로 요리를 했다.
ⓒ 압구정노인복지센터

관련사진보기

그 밖에 다른 요리도 배웠다. 레시피와 재료는 노인복지관에서 보내주었다. 그녀는 "복지관의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재배한 콩나물로 국도 끓여 먹고, 다양한 방법으로 해봤어요. 이런 프로그램을 계속 많이 했으면 좋겠네요"라며 후기를 전달했다.

평소라면 도산공원에서 운동하고 복지관을 다녔을 영자씨. 지금은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소중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집에 있다고 마냥 게으르게 있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영자씨는 복지관에서 보내준 정서 프로그램 키트를 열심히 활용하며 생활했다.

집에 있는 두 사람의 일상엔 여유가 느껴지지만, 생각만 해도 답답한 일이다. 바람도 쐬고 친구도 만나서 차도 한 잔씩 해야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는 노년의 삶에 코로나19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르신을 챙기는 것은 자식만의 일이 아니다. 노인복지센터도 노년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여러 사업을 제안하고 있다. 혜정씨와 영자씨가 참여한 '집으로 온 봄'은 압구정노인복지센터 비대면 사업 '슬기로운 노년생활'의 일환이다.

해당 사업을 기획한 압구정노인복지센터 강현주 과장은 "코로나19로 힘든 이 시기를 '어르신들이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노년 생활'이라는 뜻이 있다"라고 노년 프로그램의 취지를 밝혔다.
 
(왼쪽)압구정노인복지센터에서 주최한 비대면 프로그램 ‘집으로 온 봄’ 구성품(오른쪽)센터의 김성진 관장과 강현주 과장이 구성용품 택배 앞에서 어르신들의 활동을 응원하고 있다.
 (왼쪽)압구정노인복지센터에서 주최한 비대면 프로그램 ‘집으로 온 봄’ 구성품(오른쪽)센터의 김성진 관장과 강현주 과장이 구성용품 택배 앞에서 어르신들의 활동을 응원하고 있다.
ⓒ 압구정노인복지센터

관련사진보기

비대면 커뮤니티 케어 '집으로 온 봄'은 5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1차, 6월 15일부터 7월 10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시행됐다. 1차는 새싹 키우기·퍼즐·스티커 컬러링북 키트를, 2차에는 콩나물 키우기·스크래치 컬러링북 그림 그리기·홈트레이닝 키트를 지원해 주는 것으로 구성했다.

회마다 해당 지역 노인들에게 문자를 일괄 발송하고 선착순으로 신청받았다. 각각 15명씩 뽑아, 프로그램 담당자가 참가자 집으로 관련 키트를 우편으로 보냈다. 참가자는 용품을 사용한 후, 주간 일지를 작성하고 참여 인증사진을 담당자에게 보내야 한다.

한편 요리 재료를 보내주는 '집으로 온 맛남'이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집으로 온 맛남 또한 1차로 5월 4일부터 5월 15일까지, 2차로 6월 22일부터 7월 10일까지 진행했고 선착순으로 문자 신청을 받았다.

영자씨와 같은 공원에서 운동하던 친구는 영자씨와 함께 '집으로 온 맛남' 프로그램에 2차로 참여했다. 그는 "평소 늘 하던 음식만 해서 먹게 되잖아요? 그런데 복지관에서 보내준 다양한 재료들로 많은 요리들을 해보니까, 이렇게도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여러 반찬을 요리해 먹을 거예요"라고 소감을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

혜정씨와 전화 인터뷰를 마치며 대화한 내용이 생각난다. 혜정씨에게 자녀분들과 연락은 자주 하느냐고 물어봤다. 혜정씨는 "사실 제가 먼저 자녀들에게 자주 연락해요"라고 하며 "직접 만나는 것은 차비도 들고 시간도 많이 드는데, 전화는 한 통화면 목소리를 바로 들을 수 있고 소식도 바로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먼저 자녀들에게 매일같이 연락하고는 해요"라고 덧붙였다.

전화 한 통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혜정씨 표정이 상상된다. 그 시간은 아마 씨앗을 키우는 시간보다 더 소중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떨어져 사는 부모님에게 거는 전화 한 통. 코로나19 때 전화 한 통의 의미는 더 크게 느껴진다.

집안에 갇혔다는 느낌도,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도, 친구를 못 만난다는 허전함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TV에서 계속 보이는 예배와 집회 장면에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모습이 겹친다.

나에게 혜정씨는 "기자님, 제가 개인적으로 연락해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언제든 전화주세요'라고 대답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직접 찾아뵙겠다는 인사도 했다. 그 말에 혜정씨는 "잊지 않고 연락해주신 것도 행복하네요"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태그:#노인복지, #노인커뮤니티케어, #압구정노인복지센터, #노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