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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여름이라 고구마 줄기 김치를 담갔다. 이 김치는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전라도에서만 담가 먹는 김치'라고 어느 방송에서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난다. 어릴 적부터 먹어온 나에겐 익숙한 이 김치를, 다른 지역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다는 걸 꽤 늦은 나이에 알았다.

김치를 담그고 있자니 둘째가 다가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묻는다. "엄마, 이건 무슨 김치예요?" 하고. 고구마 줄기 김치라고 알려주니 "맛있겠다" 하곤 방으로 들어간다. 내가 다양한 김치를 조금씩 담가보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전에는 시어머니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철철이 다양한 김치를 담가주셨기 때문이다.  

친정에서 시댁으로, 그리고 며느리의 손맛


결혼 초엔 친정에서도 김치를 가져다 먹었다. 하지만 남편은 새로운 김치 맛에 적응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사실 나도 처음 맛보던 시댁의 음식들이 입에 맞지 않아 적잖이 고생했다.

특히 큰 아이 임신 후엔 나름 짧긴 했지만 입덧의 시간도 있었다. 그땐 친정에서 먹는 미나리 김치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어쩌다 한 번씩 발길 하는 친정이었지만 먹고 싶은 미나리김치를 김치통 한가득 담아왔다. 그 김치를 먹고 입덧이 가라앉았다.

그러다 차츰 발길이 더 뜸해진 친정이라 김치 맛보기는 더 힘들어졌고 계절이 바뀔때마다 김치 담그며 이것저것 가르쳐 주시던 시어머니의 김치 맛에 길들여져 갔다. 이젠 친청의 김치 맛이 어땠는지 가물거린다.

시어머니도 이제 연세가 많으셔서 손이 많이 가는 김치를 매번 재료를 바꿔가며 담그시기란 힘에 부치실테다. 언젠가 통화하며 '이제 조금씩이라도 제가 김치를 담가 먹으니 저희 건 신경 쓰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그 후 가끔 김치 담그는 날이면 며느리 손맛이 들어간 김치를 맛보시라고 조금씩 가져다드렸다. 그런데 어느 날 시댁의 김치냉장고를 열어보니 내가 가져다드린 김치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괜스레 입에 맞지 않는 김치를 드셔 보시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 더는 권하지 않게 됐다.

"엄마가 있잖아"

우리 집 삼 남매 아이들과 남편은 김치를 좋아한다. 내가 무던히 김치 담그기 연습에 매진했던 이유도 가족들이 모두 다양한 김치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큰아이는 내가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기꺼이 맛보기로 나선다. 싱거운지, 짜진 않은지, 단맛이 강하진 않은지 등을 미슐랭 못지않은 표현으로 맛을 평가해 준다. 덕분에 큰아이의 입맛에 맞으면 가족 모두의 입맛에도 합격이다.

어느 날은 그런 큰아이에게 농담조로 "김치 담그는 걸 가르쳐 줄까?" 하고 물으니 "제가요, 어떻게요?"라고 답한다. 감히 함부로 도전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엄마도 처음엔 못했다고, 하다 보니 솜씨가 조금씩 늘어갔다며 다시 한번 권해 보았다. 그러자 큰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있잖아요."

그래, 내가 있었지. 우리 아이들의 미각을 책임지고 채워줄 '엄마표 손맛'이 아직은 건재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손맛의 미각을 '보존'하기란 영원하지 않다. 내가 서서히 친정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끊은 것처럼, 시어머니의 '김치 노역'이 힘겨워진 것처럼. 엄마의 나이 듦은 손맛의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손맛의 변천사, 그리고 연대의 맛

'김치를 담그다', '장을 담그다'. 담그다의 '담금'의 의미는 무언가를 그릇에 채워 넣어둠을 의미한다. 여성의 손을 빌려 이루어지는 행위인 것이다.

시어머니는 '마흔이 되면 다 한다'라는 말씀을 곧잘 하셨다. 마치 '때가 되면 다 한다'라는 말처럼. '모르고 지내다 어느 때가 되면 새로운 경지에 이르듯 스스로, 저절로 터득할 수 있나?' 의문이 갔지만, 마흔이 될 때까지 기다려 보았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마흔쯤 되니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고 미각의 흩어진 단편들을 이어붙여 손맛을 완성해 나갔다. 처음 시더한 김치 맛은 맹맹했다. 그래서 버렸다. 두 번째 김치 맛은 너무 짰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아껴먹다... 버렸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의 시도로 김치 담그기 연습을 이어갔다. 이제는 도움의 손길 없이도 김치를 담가 우리 집 식탁에 올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시어머니의 말한 그 마술 같은 나이 '마흔'은 어른들의 '나이 듦'으로 이어진다. 결혼하여 출산과 양육을 반복하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정정하던 원가정의 어른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 '어르신'이 되어가는 것이다.

늘 자식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시던 부모는 이제 자식의 손길이 필요해진다.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밥상에 오르던 김치, 그 김치를 손쉽게 먹는 무수한 시간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의 손길이 잊혔을까. 

수많은 가사 노동 중에 가장 힘든 일은 단연 김치 담그기라고 생각한다. 고된 노동력의 결정체인 이 일은 '노역'인 것이다. 먹기는 쉬워도 담그기 쉬운 김치는 단 한 가지도 없다. 늘상 있어 그 존재의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메뉴일 뿐이다. '참을 수 없는 메뉴의 가벼움'이랄까.

김치는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손맛이다.  그래서 연대의 맛이다. 친정에서 이어진 김치 맛은 시댁으로 이어지고 그리고 나에게로 연결되었다.  각기 다른 맛을 지닌 김치는 속재료들의 다양함을 통해 새롭지만 여전히 익숙한 맛을 지닌다. 친정의 손맛과 시댁의 손맛을 합한 나만의 레시피로. 우리 집 김치는 이렇게 손맛의 변천사를 거처 연대의 맛으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rkh23475275)에도 게재 됩니다.


태그:#엄마표 김치, #가사노동, #손맛의 변천사, #손맛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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