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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백산 정상의 바위틈을 비집고 나온 바위채송화
▲ 바위채송화 함백산 정상의 바위틈을 비집고 나온 바위채송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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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나도록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요즘은 장마라기보다 하루하루가 폭우다. 늘 걸었던 도림천이 범람하여 산책길이 막힌 지 오래다.

그런데도 지난 주말 함백산 야생화 잔치에 다녀왔다. 한 달 전에 신청한 그룹 여행이고 취소되지 않아 안전 산행을 주도하는 주최 측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

금요일부터 비가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예보에 따르면 토요일 당일은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한 일기예보에 희망을 품고 우산과 비옷, 그리고 젖거나 넘어질 때를 대비해 여벌의 옷을 챙겼다.

여행을 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니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버스에 일행이 모두 올라탄 일곱시 경에는 해가 비추어 버스의 커튼을 내리며 선글라스를 가져오길 잘했다 생각했다.

하지만 날씨 행운은 딱 여기까지였다. 함백산 야생화 잔치의 첫 기착지인 정암사에 도착하니 비가 내렸다. 원래 계획했던 자장율사 순례길을 포기하고 등산로로 함백산 정상에 오른 후 만항재를 지나 야생화 축제가 열리는 산상의 화원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변경했다.

함백산은 태백산맥에 솟아있는 해발 1573m의 산이다.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산세가 험준하나 우리나라의 주요 탄전인 삼척 탄전지대를 이루었던 곳이라 석탄의 개발과 수송을 위해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도로 위에서 등산을 시작하니 정상까지 1.2km에 불과했다. 길은 경사가 제법 되었고 오랫동안 내리고 있는 비로 미끄럽고 발밑의 돌이 흔들거려 조심스러웠으나 우산을 쓰고도 힘들지 않게 정상까지 갈 수 있었다. 안내자가 남쪽 건너편에 태백산이 있다 하나 보이는 것은 구름과 물안개뿐이었다. 
 
멀리 함백산 정상에 세워진 표지석과 돌탑이 보이고 가까이는 녹색 풀 사이로 둥근이질풀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 함백산 정상 멀리 함백산 정상에 세워진 표지석과 돌탑이 보이고 가까이는 녹색 풀 사이로 둥근이질풀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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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을 잃은 대신 가까이 있는 녹색 식물과 야생화는 눈에 접사 렌즈를 낀 듯 더욱 선명하고 깨끗하게 보였다. 그리고 함백산 정상은 한가했다.

함백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과 첨성대를 닮은 돌탑 옆 바위틈에 노란색 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채송화를 닮은 풀이라고 해서 바위채송화란다. 주위를 살펴보니 꽃향유, 둥근이질풀, 가지 송이풀 등 등산객이 붐볐으면 그냥 지나쳤을 야생화가 곳곳에서 보였다.
 
빗속의 둘레길이 한가하다.
▲ 함백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호적 한 둘레길 빗속의 둘레길이 한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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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미끄러운 경사진 길을 올라오느라 긴장했던 발걸음도 풀 겸 포장된 둘레길을 택했다. 날씨가 좋았다면 재미없는 길이겠지만 호적 하게 우산을 쓰고 길가의 야생화를 즐기기에는 제격이었다.

길가의 오렌지빛 둥근 꽃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의 안내판에 소개된 말나리인 것 같은데 활짝 피기 전이라 더욱더 예뻤다.
 
하얀 것은 뚝갈, 노란 것은 마타리다
▲ 뚝갈과 마타리 하얀 것은 뚝갈, 노란 것은 마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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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은 노란색, 어떤 것은 하얀색 뭉치처럼 생겼다. 이 꽃 위에 다양한 종류의 벌들이 열심히 단물을 빨고 있었다. 하얀 것은 뚝갈, 노란 것은 마타리란다. 줄기 끝에 모여 핀 꽃들이 둥근 밥상 같아 보여 마치 벌들이 잔칫상을 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분홍빛은 노루오줌, 보랏빛은 긴산꼬리풀이다.
▲ 기원단 안에 핀 야생화 분홍빛은 노루오줌, 보랏빛은 긴산꼬리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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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을 내려와 만항재 고개로 향했다. 고개를 넘으면 한국 최대 규모의 야생화 군락지인 산상의 정원이 있단다. 고갯길에는 옛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렸다는 기원단이 있었다. 야생화는 기원단 안의 좁은 흙 사이에도 피어 있었다. 뿌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피어나는 생명력에 감탄할 뿐이다.

곳곳의 야생화를 찍고 검색하며 비탈길을 내려오는 동안 빗줄기는 거세졌다. 산상의 화원 입구인, 해발 고도가 1330m나 되는 만항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비가 와서 설치한 비닐 천막 아래 사람들이 북적였다. 통돼지가 보이고 상위에는 막걸리, 배추 전, 고기 전, 고사 떡, 수박 등이 가득했다. 사람을 위한 잔칫상이다. 야생화 축제 첫날이라 고사를 지내고 잔치를 열었나 본데, 비가 와 사람이 적은 탓에 돌아오는 먹거리가 풍성했다. 그야말로 횡재를 한 셈이다.
 
키 낮은 야생화 들판 너머로 낙엽송 숲이 운치를 더해 준다
▲ 산상의 화원 키 낮은 야생화 들판 너머로 낙엽송 숲이 운치를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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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채웠으니 산상의 화원을 둘러볼 차례다. 비는 오지만 비가 안 와도 땀으로 젖을 여름이다. 우산을 쓰고 질퍽한 땅을 디디며 야생화 사이를 걸었다. 키 낮은 야생화 들판 너머로 낙엽송 숲이 운치를 더해 주었다. 비에 젖은 녹색 잎이 싱그러웠다.
 
상단 좌측부터 일월비비추, 며느리밥풀꽃, 오이풀꽃, 아기 동자꽃, 달맞이꽃, 잔대, 말나리, 개미취, 자주꽃방망이
▲ 함백산의 야생화들 상단 좌측부터 일월비비추, 며느리밥풀꽃, 오이풀꽃, 아기 동자꽃, 달맞이꽃, 잔대, 말나리, 개미취, 자주꽃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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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있는 자주꽃방망이, 말나리, 잔대, 일월비비추, 아기 동자꽃, 개미취, 둥근이질풀, 오이풀꽃, 며느리밥풀꽃, 달맞이꽃, 그리고 키가 조금 큰 노루오줌 등이 휴대전화 카메라에 잡혔다. 옆에서 야생화 박사가 이름을 말해줘도 돌아서면 잊곤 했는데, 새로운 검색 기능 덕에 사진만 찍어도 이름을 알 수 있다. 이 또한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가끔 틀리기는 하지만.

전국이 폭우로 얼룩진 하루였다. 몽환적인 산꼭대기 야생화 산책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으나 또 다른 보물 자연인 구례는 물속에 잠겼다. 코로나에 홍수에 자연도 인간도 힘든 시절이다.

태그:#함백산, #민힝재, #산상의 화원,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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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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