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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아들을 여행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엄마'
'부모에 의해 온몸에 멍, 손에는 화상을 입은 창녕 9살 여아' 

지난 6월 발생한 엽기적이고 잔인한 방식의 아동 학대 사건들은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수많은 사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2017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학대 행위자의 70% 이상이 피해 아동의  부모(친부모, 계부모, 양부모 포함)들이다.

나는 한때 한국의 중등학교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법알못(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사를 거쳐 현장에서 오래 근무하면서도 교육 관련 법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초라한 변명이라면 교원양성 과정에서도 교육 관련 법을 현장과 연계하여 실무적으로 배워보지 못했고,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는 방법과 출처를 잘 알지 못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교사들에게 교육과 관련된 법령들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는 사실이 정확하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교육 법전>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은 교감이나 교장 선생님의 책상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던 심봉사의 눈을 뜨게 만든 이가 심청이였다면, 어이없게도 나의 까막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 이는 호주의 교육기관이다. 그것도 정규 교사가 아닌, '보조 실무사'가 되기 위한 단기 자격증 과정.

작년 10월에 시작된 교육과정은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간다. 호주의 모든 교육과정은 철저한 실무 중심의 교육이다. 수업에서 가장 먼저 배운 내용은 호주의 교육 현장과 관련된 총망라한 법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노동법, 안전법, 응급처치법, 차별금지법, 장애인 차별 금지법 등 한국에서 교육자로서 한 번도 정식으로 교육받아 본 적이 없는 각종 법을 배우고 직접 몸으로 익히며 터득하는 과정들이다. 
  
호주에 교사가 되려면 아동보호법에 명시된 <아동학대 신고 의무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소지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일년마다 갱신할 의무가 있다.
 호주에 교사가 되려면 아동보호법에 명시된 <아동학대 신고 의무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소지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일년마다 갱신할 의무가 있다.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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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교육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 '배운 대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하는 과정'이다. 이론을 배우고 나면 현장 교생실습(2주)을 통해 배운 이론을 적용해 보고 다시 교육기관으로 돌아온다. 강사와 동료 수강생들과 함께 경험을 나누고 피드백을 서로 주고받은 후, 추후 이론 과정을 배우고 또다시 현장 교생실습(2주)을 하는 방식이다. 

한국 사범대에서 4년간 1회 한 달 교생실습을 나간 분량과 같다. 호주에서 정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해마다 한 두 번씩 현장 교생실습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호주인들에게는 놀랄 일도 아니다.

며칠 전 마지막으로 실시된 교육 내용은 호주의 아동보호법에 명시된 '아동 학대 신고 의무법(Mandatory Reporting Policy)'에 관한 내용이었다. 관련 법을 공부한 후 호주 교육부 사이트에서 간단한 시험을 치르고 이수 자격증을 받았다. 호주의 모든 교사들은 이 과정을 거치고 자격증을 받아야 하며 해마다 갱신할 의무가 있다.

'세상에는 교사들에게 이런 내용을 교육시키고 자격을 갖춰 학교 현장으로 보내는 나라도 있구나!' 부러움 반, 질투 반이 밀려왔다. 강사 에릭은 강조했다. 

"법에 따르면 보조 실무사는 아동학대 신고의 의무가 없어. 그렇지만, 학교 현장에서 일하게 되면 도덕적/윤리적인 책임을 벗어날 수 없고, 누구든 아동을 보호하고 옳은 일을 할 사회적 책임이 있어. 의심되는 정황이 발생하면 반드시 지금 배운 절차대로 담임 교사나 교장에게 보고를 해야 해."

얼마 전 아동 학대를 신고한 한국의 한 초등 교사가 신상이 노출되고 학대 의심 학부모로부터 곤욕을 치렀다는 기사를 접했다. 기사 내용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면서 충격을 받은 점은 호주에서 내가 배운 '아동 학대 신고 의무법'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들과 대치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호주의 법에는 교사가 아동의 신체적/성적 폭력을 감지한 경우 학대 행위자가 부모로 의심되는 경우에는 부모와 상담없이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학교에서는 학대 행위자인 부모에게 의견을 듣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할 뿐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동의 보호뿐만이 아니라 신고자의 안전 또한 위태롭다.

호주 학교에서 아동학대의 최종 신고자는 관리자로 정해서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아동 보호에 나서게 하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아직도 개별 교사가 오롯이 모든 과정을 감당하고 협박까지 받게 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이다.

이 외에도 호주의 교사들은 해당 아동에게 심문/취조/추궁하는 질문을 해선 안 된다는 점, 교사는 증거를 확보하거나 가해자를 찾아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 피해 아동은 본인의 피해 여부를 증명할 책임이 없다는 점, '불쌍하다'나 '끔찍하다' 등과 같은 교사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점 등을 사례를 통해 꼼꼼하게 교육받는다.

한국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교사들이 소신 있게 판단하고 교육자적 신념에 따라 행동하기 어렵다. 자칫 아동을 돕고자 하는 일련의 과정이 교사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쉽다. 예로 성적 학대를 받은 아동에게 이 분야를 제대로 교육/훈련받지 않은 교사가 선한 의지로 자세하게 캐묻는 질문은 해당 아동에게 2차 가해를 일으키기도 쉽다. 
  
한국의 아동보장원 사이트 캡쳐 사진.
 한국의 아동보장원 사이트 캡쳐 사진.
ⓒ 한국 아동 보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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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처럼 교육자를 미리 교육시켜 현장으로 내보내도 아동학대를 전면 근절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과 같은 시스템에 면죄부를 주지는 않는다.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 자주 만나는 교사가 예방적으로 살피고 선제적으로 알아차리고 보살피는 일은 어느 나라나 중요하다. 

최소한  옳은 일을 한 교사가 용서를 빌고 신상 노출에 시달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더불어 한국에 더이상 과거의 나처럼 '법알못'인 교사들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왜냐면 교사가 법을 잘 알지 못하면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가기 쉬운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아동학대, #아동학대 신고 의무법, #호주이민, #호주교육, #호주의 아동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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