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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숙 위원장 이형숙 집행위원장이 7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호소하며, 삭발투쟁 했다.
 이형숙 집행위원장이 7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호소하며, 삭발투쟁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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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 정정했던 엄마는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이틀만인 7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비 오는데 몸조심해라', '밥 잘 먹고 다녀라'라는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새벽 1시, 병원에 실려 간 엄마는 긴 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 의사는 '조금만 빨리 왔으면 간단한 시술로 괜찮을 수 있었다'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렇게까지 될 정도면 그동안 엄마가 등과 가슴이 조여 힘들었을 거라고도 했다.

이형숙 '장애인과 가난한사람들의 3대 적폐폐지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엄마의 장례를 치르며 스스로 되물었다. 엄마는 왜 내게 아프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병원가면 큰 돈을 쓸까 걱정했던 걸까. 모든 게 자신의 탓만 같았다. 3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된 이 위원장을 돌보기 위해 열 살 많은 오빠를 새엄마에게 보낸 엄마. 그 엄마를 마지막까지 책임지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의사가 '너무 자책하지 말라'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가난한 사람은 참다가 죽을 뿐"
 
이형숙 위원장 이형숙 집행위원장이 7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호소하며, 삭발투쟁했다.
 이형숙 집행위원장이 7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호소하며, 삭발투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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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장례를 치른지 열흘 정도가 지났다. 엄마를 보낸 딸은 삭발을 결심했다. 이형숙 위원장이 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머리를 밀었다.

"엄마는 아프다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했어요. 사실은 못했던 거겠죠. 몸이 성치 않은 딸 보살피느라 한평생 고생한 엄마에요. 자기가 아프다고 말하면, 병원에 가고 병원은 돈이 드는 곳이라 생각했겠죠. 그러니 딸에게 몸이 아프다고 할 수 없었던 거고요. 결국 가난 때문이에요. 가난한 사람은 아프면 참다가 죽는 거예요."

삭발식을 하기 전, <오마이뉴스>와 만난 이 위원장이 스스로 벗어날 수 없었던 '장애'와 '가난'을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내내 가난한 사람도 병원 앞에서 위축되지 않기를 바라며 싸웠다. 광화문역 한쪽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내걸고 농성을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장애가 있고, 어제도 가난했고 내일도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대책이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라고 생각했다.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하는 가구의 소득과 재산만 보지 않는다. 같이 살지 않아도 가족이 있다면, 그 가족의 소득과 재산에 따라 수급 신청자의 수급권 보장 여부를 검토해 선정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20년 넘게 보지 않은 부모도 10년 넘게 연락이 없던 남편도 부양의무가 있다고 판단되면 기초생활보장을 받을 수 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는 가난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제도개선 1순위 과제로 꼽혀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날짜도 정확히 기억해요. 2017년 3월 22일이었어요.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서 연단에 올라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대통령 후보였지만,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였잖아요. 그 말을 듣고는 이제야 됐구나 싶어 좋아했어요."

2012년 8월 21일에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폐지' 농성을 시작한 이후 처음 생긴 희망이었다. 당선 후 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를 명시했다.(2017년 7월 19일) 같은 해 8월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농성장을 찾았다. 이 위원장은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했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당시 박능후 장관은 '대통령의 명령·지시로 내가 온 거니까 믿어도 된다'라고 했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까지. 세 명의 대통령을 보며 농성장에서 밤을 지새우고서야 들을 수 있는 답이었다.

"문 대통령이 포기하면, 어떤 대통령이 이 약속을 지키겠어요"
 
1842일의 농성 이 위원장은 2012년 8월 21일에 시작한 농성을 1842일이 지난 2017년 9월 4일 중단했다. 문 대통령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약속했다.
▲ 1842일의 농성 이 위원장은 2012년 8월 21일에 시작한 농성을 1842일이 지난 2017년 9월 4일 중단했다. 문 대통령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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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부의 약속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방안 마련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여 함께 논의'하고, '2020년 발표될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전 폐지 계획을 담는 것'이었다. 농성을 시작한지 1842일만에 들은 답이었다. 2017년 9월 4일, 이 위원장은 농성을 중단했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광화문농성장'의 천막을 걷어냈다. 아직도 광화문 역 농성했던 자리에는 1842일이 적힌 명판이 붙여있다. 다시, 3년여가 흘렀다.

7월 14일 정부가 '한국형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2022년까지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내용만 담겨있었다.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는 말은 없었다. 이 위원장은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모두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는 약속이 변질됐다고 봤다. 지난 7월 23일 이 위원장을 비롯한 공동행동이 광화문에 다시 천막을 친 이유다. 공동행동은 2012년부터 사용한 현수막을 다시 꺼냈다.

"밥을 굶는 것과 아픈데 병원을 못 가는 것. 우위를 따질 수 없지만, 밥은 한두 끼 굶는다고 당장 죽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병원은요, 아픈데 돈이 없어 버티고 버티면 결국 죽어요.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에요. 이 내용이 반드시 2차 종합계획에 담겨야 해요."

앞서 정부는 2017년 모든 국민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18~'20년)을 수립했다.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의 주요내용은 ▲부양의무자기준의 단계적 폐지 추진 ▲보장수준의 국민 최저선 보장 ▲자활일자리 확대 등을 통한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의 빈곤 탈출 지원 강화였다. 제1차 종합계획에 담긴 부양의무자기준 단계적 폐지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2016년말 163만명(인구 대비 3.2%)에서 2020년 252만명(인구 대비 4.8%)로 증가할 것으로 봤다. 비수급 빈곤층은 93만명(2016년)에서 2020년 최대 33만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결과는 조금 달랐다. 2018년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는 174만명에 그쳤다. 단계적 폐지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의 폐지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아 실질적인 비수급 빈곤층 등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20년은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 수립으로 향후 3년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발전 방안을 마련하는 시점이에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제2차 계획안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문구를 담지 않으면 이제는 희망이 없어요. 당장 완전 폐지를 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2023년까지 완전폐지를 목표로 정책을 만들어나가자는 거죠. 문 대통령이 포기하면, 어떤 대통령이 이 약속을 지키겠어요."

이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때 농성장에 찾아온 건 정보과 형사들뿐이었다, 우리와 소통하자는 게 아니라 농성장에 몇 명이 있는지 확인하고 가는 게 전부였다"라면서 "그나마 문재인 정부 들어서 변화가 생긴 것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공약을 만들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농성장에 찾아와 약속한 것도 모두 문 정부에서야 생긴 일이라는 뜻이었다. 이 정부가 아니면, 기대할 수 없는 약속이기에 삭발로 농성으로 다시 정부에 호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어떤 공무원은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면, 다들 의료쇼핑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모르겠어요. 한 병원도 겨우 찾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병원을 돌며 의료쇼핑을 할까요? 그리고 모든 제도는 악용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래서 정부가 관리해야 하는 거고요."

이 위원장이 민머리를 만졌다. 잘린 머리카락을 흰색 함에 담았다. 공동행동측 사람들이 세종대왕 위를 올라갔다. 광화문 광장에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가 쓰인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그가 다시 빨간 머리띠를 동여맸다. 그리고는 광화문 광장의 해치마당에 마련된 농성장으로 돌아갔다.

이 위원장이 "장애인인 내 인생이 어릴 때는 어머니의 짐이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들이 짐이됐다"면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건 거리에서 버티는 것뿐이다, 문 대통령이 약속을 지켜줄 거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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