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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촌 광장 북쪽으로 자세히 보면 망배단 너머 산등성이 위로 보인다.
▲ 기정동 인공기 통일촌 광장 북쪽으로 자세히 보면 망배단 너머 산등성이 위로 보인다.
ⓒ 김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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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이따금 총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우리 군인들이 사격훈련 하는 소리다. 대포 소리도 땅의 미세한 진동과 함께 들릴 때도 있다. 여기서 개성공단까지는 10킬로미터, 개성시내까지 15킬로미터가 채 안된다.

여기는 경기 파주시 장단면 거곡리, 올봄부터 시작된 파주시의 농업 시험연구포장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지난 6월 16일 북한이 개성공단을 폭파했다는 소리를 주민들은 대부분 들었지만 별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가끔 점심 먹으러 들리는 통일촌에서는 북측의 DMZ 내에 만들어진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가 높이가 100미터라는 철탑에 걸려있는 모습이 아스라이 보인다...

나는 파주시 농업 공무원이다. 지난 사월 임기제 '어공'이 되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업무는 '지역농업개발 시험연구포장 조성, 관리'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실제로 하는 일은 숫제 농사 '막 일'이다. 농사를 위해 따로 뽑은 기간제 근로자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천년초밭에서 기간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고 저 멀리 문산 시내가 보인다.
▲ 천년초밭 천년초밭에서 기간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고 저 멀리 문산 시내가 보인다.
ⓒ 김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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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근의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나는 날마다 경의선 북쪽 끝, 1번 국도 자유로의 남쪽 끝에 있는 통일대교를 지나 임진강을 넘어간다. 여기서부터 '민통선', 즉 민간인 통제선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이런 민북출입증이 있거나 미리 신분이 확인돼 들어가겠다고 알린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아무튼 임진강을 넘고 다시 임진강의 북쪽 강변에서 철책선이 길게 늘어서 있는 강을 따라 내려오면 거기 거곡리가 있다. 군사훈련장과 갈대밭이었던 이 땅, 임진강변 모래땅을 파주시가 국방부로부터 사들여 남북농업 협력 및 북방농업 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이 여름 장마에 소금땀, 비지땀 흘리며 일구어 가고 있다.

수십년 갈대밭이었던 땅을 일구어 콩과 작물을 심는다는 상상을 해 보시라. 실상 그 밭을 일구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 하물며 그 땅이 수백, 수천 평도 아니고 21.7ha(약 6만 6천평)이니... 그 중엔 아직 손도 못 댄 땅도 있지만 올해 파종을 한 지역은 전체의 2/3 쯤 된다. 대부분 콩과 천년초, 도라지 등의 작물들이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천년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천년초는 제주도 등지에서 자생하는 백년초와 함께 선인장과 식물로 빠알간 열매에 암을 예방하는 항산화 기능과 면역력 강화, 변비 해소, 피부미용과 혈관 질환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좋은 효능과 함께 선인장과 식물이라 심을 때나 거둘 때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가시와 씨름을 해야 한다.
 
몸에 좋은 쳔년초야, 가시를 품고도 잘 자라거라!
▲ 잘 자라고 있는 천년초 몸에 좋은 쳔년초야, 가시를 품고도 잘 자라거라!
ⓒ 김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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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곡리에 천년초 식재 예정지는 14000 제곱미터, 약 4300평 정도 되지만 아직 절반도 심지 못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자원봉사자들을 찾기도 쉽지 않고 기간제 근로자들이 있어도 워낙 넓은 땅이라 다른 지역의 잡초 제거나 배수로 작업 등 할 일이 많다. 천년초에 온전히 매달리기 어려운 까닭이 있다.

그러나 천년초들은 자기가 심기울 땅을 찾기도 전에 비닐하우스 안에서 기다리면서 꽃을 피웠다. 마치 자기들의 생명력 강함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다른 식물 같으면 벌써 말라 죽었을 시간인데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꽃을 피워내는 힘이라니...

나는 천년초가 어떤 식물인지도 제대로 몰랐다가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됐다. 엄청난 생명력의 상징이라는 것을.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많은 기간제 형님들이 그랬다. 천년초는 그냥 던져 놔도 잘 자란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정말 그럴 거 같았다.
 
대단한 생명력이다, 뿌리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꽃을 피운다. 노오란 아름다운 꽃이다.
▲ 식재를 기다리면서도 꽃을 피운 천년초 대단한 생명력이다, 뿌리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꽃을 피운다. 노오란 아름다운 꽃이다.
ⓒ 김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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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에 조금 일찍 심은 천년초는 한 달 사이 잘 자랐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제각각 다르게 자란 모습이 어울려 노는 가족 같기도 하고 동네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 같기도 하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어떤 두 천년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로 만나는 꼴 같기도 하다.

요즘 남북 관계가 평창 올림픽과 3, 4차 남북정상회담 하던 때와 달리 냉각기에 접어 든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올 평화와 번영의 좋은 분위기를 기다리듯 천년초는 잘 자라고 있다. 임진강 너머에 농가 소득에 도움을 주기위해 시험연구용으로 재배하고 있는 천년초지만 남북의 평화와 통일에 징검다리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먼 훗날, 한반도에 참된 평화와 통일이 온다면 내가 평화의 수도 파주에서 농업 공무원 하면서 남과 북이 함께 먹고 살아갈 평화의 농사를 짓고 있었노라고 숟가락 하나 얹고 싶다.
 
농업 단지 한쪽을 평화 구역으로 이름 지었다. 참된 통일과 평화가 오기를!
▲ 거곡리 평화 구역 농업 단지 한쪽을 평화 구역으로 이름 지었다. 참된 통일과 평화가 오기를!
ⓒ 김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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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평화의 수도 파주, #장단 거곡리, #천년초, #남북 평화, #임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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