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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게이츠가 오는 31일자로 폐업을 선언한 가운데 한국게이츠 노조원들이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게이츠가 오는 31일자로 폐업을 선언한 가운데 한국게이츠 노조원들이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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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여느 날과 같이 출근한 남편에게서 오전 11시가 되기도 전에 전화가 왔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하며 전화를 받았다.

"회사에서 7월 말에 폐업한다카네."

금방 알아듣지 못하고 "뭐? 폐업? 폐업한다고?"하며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남편은 "응, 폐업한다고 아침에 발표했다"고 다시 확인해 주었다. 실감나지 않는 말이었다. 폐업.

남편이 다니는 회사는 대구 달성군 논공공단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현대·기아차 1차 협력업체인 한국게이츠(주)이다. 생산직과 사무직을 합쳐 1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세계 30여 개국에 100개 이상의 공장을 두고 있는 글로벌게이츠의 한국 생산공장이다. 1989년 사업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30여 년간 거의 매년 이익을 내는 우량기업이다. 2017~2019년 3년간 매년 매출은 약 1000억 원대이고 순이익은 50억 원대였다.

그런 공장을 폐쇄하고 한국 사업을 철수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경영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다.

'모범적인 퇴직 프로그램'의 실체

이 와중에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글로벌게이츠 전체가 한국에서 철수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내 생산공장은 폐쇄하고, 중국에서 생산한 부품을 가지고 와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업체에 판매하면서 돈벌이를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회사는 사전에 아무런 예고도 협의도 없이 6월 26일 당일 '제조 시설 폐쇄에 대한 한국게이츠의 입장'이라는 공고문을 붙이고, 직원들에게 폐업을 통보하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믿기 어려운 일이 순식간에 벌어져 착착 진행됐다.

회사가 붙인 공고문의 마지막에는 "당사는 향후 이번 결정으로 영향을 받게 될 직원들을 존중하는 자세로 공정하게 지원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업계 모범 사례에 부합하는 퇴직 및 조기 퇴직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직원들을 존중하고 업계 모범 사례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던 회사가 제시한 건 '희망퇴직 공고'뿐이다. 7월 말에 문을 닫는다면서 직원들에게 스스로 퇴직을 희망하라는 것이다. 7월 20일까지 저항 없이 스스로 퇴직을 희망해서 제 발로 나가면 위로금을 지급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8월 1일부로 해고될 것이라는 위협이 회사가 제공하는 퇴직 프로그램이다.

이러면서 직원 존중이나 업계 모범 사례를 운운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는 그래도 되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는 언제나 기업이 우선이니깐, 기업 하기 좋은 게 최고의 가치니까. 법과 제도도 기업의 이윤추구를 최우선 보장하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먼저 돌보지 않으니까. 글로벌 기업은 여기가 그런 곳이라는 현실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것 아닐까.
 
 6월 30일 오후 대구 달성군 외국계 자동차부품 제조사 한국게이츠 대구공장에서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노조원들이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앞서 한국게이츠는 법적 절차와 규정에 따라 국내 제조시설을 폐쇄하고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노조는 생존권을 짓밟는 일방적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6월 30일 오후 대구 달성군 외국계 자동차부품 제조사 한국게이츠 대구공장에서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노조원들이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앞서 한국게이츠는 법적 절차와 규정에 따라 국내 제조시설을 폐쇄하고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노조는 생존권을 짓밟는 일방적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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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럽고 막막한 마음에 참기 힘든 화를 일으킨 건 7월 9일자 <조선일보>의 기사였다. "한국 떠나는 외국인 투자 기업들... '고용규제·강성노조 개선돼야'"라는 제목의 기사는 한국게이츠의 철수 사례를 언급하며 "재계에서는 한국에서 철수하는 외국인투자(외투) 기업이 줄 이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반(反)기업적 규제와 강성 노조에 불만을 표하며 등 돌리는 외투 기업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사는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연구진이 직원 50명 이상의 외투기업 125사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3분의 1 이상이 한국에서의 투자와 사업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답했다"라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말미에 "외투기업들은 한국의 경영 환경 개선을 위해 시급한 과제로 '시장경제에 입각한 규제 완화'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입법' 등을 꼽았다"고 보도했다.

31년 흑자 경영을 한 회사가 사업 구조조정의 일환이라는 명분으로 하루아침에 폐업하고 떠나도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법과 제도다. 기업을 위해 어떤 규제를 더 완화해야 한다는 것일까? 노사관계가 개선돼야 한다면, 노동조합이 기업 경영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고, 어떠한 참여도, 결정도 할 수 없는 문제가 개선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

150여 명의 노동자, 협력업체까지 하면 6000여 명의 노동자와 수만 명의 가족들이 직장에서 쫓겨나 실직자가 되고 생계의 위협에 빠져들게 됐는데, 한국의 언론과 재계는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회사는 직원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직원들과 노동조합은 폐업 방침을 철회하고 공장을 정상 가동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백번 양보해 회사가 주장하는 폐업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회사는 직원들을 납득시키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상충되는 입장과 요구가 있으면 이를 두고 합의에 이를 때까지 조율하고 더 나은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이렇게 중대한 문제는 어느 일방의 입장만 관철돼서는 안 된다. 이 논의의 과정을 상충하는 노사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정부와 대구시, 지역 정치권에서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우위에 있는 기업의 이해만이 일방적으로 관철된다면 노동자들도 격렬하게 저항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숱하게 경험했다.
 
 한국게이츠가 오는 31일 폐업을 선언한 가운데 공장 노조원들이 대구시청 앞에서 폐업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느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게이츠가 오는 31일 폐업을 선언한 가운데 공장 노조원들이 대구시청 앞에서 폐업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느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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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츠에 첫 출근을 하던 20여 년 전, 남편은 갓 첫 아이를 얻은 젊은 아빠였다. 매일 아침 8시 공장으로 나가 자동차 부품을 만지며 일해 왔다. 그 성실한 노동으로 아이들이 자랐다.

남편은 20여 년의 시간을 온전히 보낸 일터, 가족의 생계를 맡겼던 직장에 원망하는 마음을 남겨두고 싶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 작은 바람조차 이루기 어려운 것 같다. 회사는 직원들과의 성의 있는 협의나 설득 대신 위로금을 내세우며 위협하고, 조롱하고, 분열시키고 있다.

남편과 동료 노동자들이 땀 흘려 노동한 긴 시간이 최소한으로라도 존중받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법과 제도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정부와 대구, 정치권이 제대로 노력해서 이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웃 시민들의 따뜻한 응원과 연대가 이들과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은정씨는 대구노동세상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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