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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오후의 피곤함이 시작될 무렵 열댓 명의 여학생들이 찾아왔다. 

어떤 아이는 울고, 어떤 아이는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폭풍이 가라앉기를 잠시 기다렸다 그중 차분해 보이는 아이에게 물었다.

"왜? 무슨 일이니?"

아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선생님, 저희 반 남자애들이... 너무 심해요. 참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왔다는 것, 남자애들이 심하다는 것으로 보아 성 문제구나 싶었다.

"○○야, 좀 자세히 말해 볼래. 뭐가 심한데? 선생님이 알아야 도와주지."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가 불쑥 종이를 내밀며 "선생님, 남자애들이 저희 앞에서 큰소리로 말끝마다 성기를 들먹이며 이야기를 해요. 그동안 하지 말라고 수 없이 해도 들은 체도 안 해요. 오늘은 △△ 앞에서 성행위를 흉내 내서 △△가 울었어요."

우는 아이가 △△였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모습이 더 안타까웠다. 그때 △△ 옆에서 흥분해 있는 아이가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저희가 그동안 겪은 일을 적은 거예요. 여기 오지 않은 아이들의 피해도 적었어요."

A4용지 3장에는 그동안 아이들이 당한 성희롱이 자세히 적혀있었다. 마지막에는 남자애들을 혼내기보다는 다시는 그런 말이나 행동 안 하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자신들의 바람도 적혀있었다.

"△△야, 마음 많이 상했겠구나. 다른 아이들도... 선생님이 일단 철저히 조사할게...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자."

△△와 상처가 큰 아이를 상담부장 선생님에게 데리고 가 안정을 부탁드렸다. 정식으로 학교폭력으로 신고된 것은 아니지만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학생 7명의 반응, 그리고...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학년 부장 그리고 △반 담임선생님과 상의했다. 수업을 모두 마친 후 담임선생님은 반 여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피해 사실을 조사하게 했다.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남학생들 7명은 학생부에서 조사하기로 했다. 

남학생 7명은 담임선생님에게 끌려왔다. 그런데 표정을 보니 각양각색이었다. 일단 다른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없는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리고 여학생들이 말한 내용을 간략히 말한 후 자신이 한 행동을 적도록 했다. 그러자 한 남학생이 "저희만 그런 거 아닌데요. 걔들도 항상 그런 말 했어요"라고 했다. 

그때부터 남학생 거의 전부가, 여학생들도 같이 웃고 해놓고 지금에 와서 자기들만 잘못했다고 한다고 한마디씩 했다.

"그래서 너희들의 행동이 잘못이 아니라는 거니?"
"아뇨, 잘못이지만..."
"그럼, 너희들이 한 행동만 그 종이에 써라. 여학생들도 조사할 테니..."


아이들은 여전히 잔뜩 부은 모습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적어나갔다. 적은 것을 보니 여학생 아이들이 이야기한 대로였다. 아이들이 적은 것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장난이고 재미있어서라고 이야기하다 얼마 안 가 여학생들이 쓴 것을 읽어주자 정말 자신들은 재미로 그랬는데 여자애들이 그렇게 상처를 받는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여학생들에 대한 조사 겸 위로는 담임선생님이 여성분이어서 일임했다. 아무래도 남자인 내가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여학생들은 처음 남학생들이 그런 농담이나 행위를 할 때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가볍게 장단을 맞추어 주었는데, 그래서 남자아이들을 더 그렇게 만든 것 같다고, 처음부터 화를 낼 것 그랬다고 후회했다. 

그리고 남자애들이 나쁜 마음으로 그러지 않은 건 알지만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말이나 행동을 안 한다고 반 전체 학생들 앞에서 약속한다면 용서하겠다고 했다.    

이틀에 걸쳐 남학생들 그리고 여학생들 부모에게 연락해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를 전체 학생에게 하려고 하는데 어떤지 의향을 물었다. 

남학생, 여학생 부모 모두 큰 충격이라고 했다. 우는 학부모도 있었다. 내 아이가 그랬다는 걸, 또 그런 일을 당했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런 학부모들에게 요즘 아이들의 성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그에 대한 학교 교육이 부족함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사과를 드렸다. 

여학생 부모에게는 성교육을 강화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했다. 학부모들은 다행히 사춘기의 특징으로 받아들이고, 학교의 조치를 믿겠다고 해주셨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성인지를 어떻게 높여야 하나 걱정이었다.

학교에서는 성교육을 강화해서 의무적으로 교육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잘 보지도 않고 딴짓하기 일쑤다. 고민이었다. 일단 학년 부장, 담임선생님과 상의해서 남학생 아이들은 반 전체 학생 앞에서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학교 자체 상담 교육을 받기로 했다. 그중에서 심한 아이는 학부모님에게 연락해 외부 전문 상담을 권하기로 했다. 

아이와 학부모는 상담을 받았다. 여학생들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니 남학생들이 가끔 전과 같은 성적 농담을 하면 주변에서 그러지 말라고 서로 말린다고 했다. 역시 가르치면 되는 아이들이었다. 미안했다.

성교육을 가르치는 건 어려운 일
 
 18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 책걸상이 시험일처럼 분단별로 배치돼 있다. 개학 뒤에도 수업 중 학생간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학교 측의 조치다.
 서울의 한 학교 교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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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을 담당하며 가장 곤란하고 조심스러운 문제 중 하나가 성 문제다. 가해 학생들은 장난이라며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별거 아닌 거 갖고 그런다고 2차 가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참 어렵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성교육 프로그램 수준이다. 너무 낮으면 아이들은 쳐다도 보지 않고, 또 너무 자세하면 그 자체가 성 문제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대부분 성교육은 외부 강사에게 맡기고 있다. 뭔가 내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킨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어쩌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이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지켜야 할 선이 뭔지도 모르고 장난과 성 문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분명 가르치면 좋아지는데 점점 가르치는 것이 어렵고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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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학교에 다녔던,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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