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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교단 법정에 서게 된 경기도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교단 법정에 서게 된 경기도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목사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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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축제인 퀴어축제에 참석해 이들을 축복했다는 '혐의'로 목회자가 교단 법정에 서는 일이 벌어졌다. 주인공은 경기도 수원 영광제일교회를 담임하는 이동환 목사다.

이 목사는 2019년 8월 인천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성소수자를 위해 축복기도를 했다. 이러자 이 목사가 속한 기독교대한감리회(아래 기감) 교단 내 '충청연회 동성애대책위원회'와 '인천 건강한 사회를 위한 목회자 모임'이 이 목사를 관할인 경기연회에 고발했다. 

한국 개신교 교회, 특히 보수 개신교 교회의 성소수자 혐오는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이들은 수년 째 성소수자 의제가 공론화 될 때마다 극단적인 행동을 일삼아 왔다. 또 성소수자에 연대하는 목회자나 신학생, 언론인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날을 세웠다. 그러나 목회자가 성소수자를 위해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교단 법정에 서는 일은 사상 처음이다.

이 목사는 경기연회 자격심사위원회에 출석해 자신의 입장을 소명하는 한편, 보고서를 내라는 지시에 응했다. 자격심사위는 각서까지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각서에 대신하는 문서를 제출했다. 결국 경기연회는 기소를 강행했다. 

이 목사는 자신의 기소에 당혹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이번 일로 상처 받을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을 더 걱정했다. 

이 목사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인터뷰는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 서면으로 이뤄졌다. 아래는 이 목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이번 일로 성소수자 성도들이 상처 입을까 우려"

- 교단 재판 회부는 개신교계 개혁 성향 매체 <뉴스앤조이> 보도로 알려졌다. 저간의 과정을 살펴보니 꽤 긴 시간 공방이 오간 듯하다. 지금 심경은 어떤가?
"여러 마음이 교차한다. 교단에서 재판 받는 일이 두렵기도 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교회의 차별적 인식이 슬프고 안타깝기도 하다.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 축복기도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목사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축복기도의 대상이 성소수자라고 해서 기감 교단법인 '교리와 장정'상 범죄요건이라는 게 당황스럽다."
(기감 교단법인 '교리와장정' 3조 8항은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했을 때' 정직·면직·출교 등의 처벌을 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자 주)

- 감리교단뿐만 아니라 예장합동, 예장통합 등 주요 보수교단이 동성애 문제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함께 축복식을 했던 임보라 목사도 예장합동 등 8개 보수 교단으로부터 이단성을 지적 받았다.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한국교회는 위기 상황이다. 성숙이 아닌 성공과 번영을 추구하는 모습, 각종 금전적 비리와 성범죄 등의 도덕적 해이 등등 한국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는커녕 사회로부터 굉장한 지탄을 받으며 세상의 걱정거리로 전락했다.

한 집단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를 찾기 마련이다. 건강한 집단이라면 위기 상황, 혹은 밖에서 오는 비판에 대해 겸허한 마음으로 성찰하고 회개해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다. 안팎에 '희생양' 혹은 '적'을 상정하는 것이다. 비단 교회뿐 아니라 역사상 수많은 왕조, 정권, 집단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위기를 돌파해오지 않았나? 희생양을 통해 내부의 고조된 갈등과 불만을 해소하고, 적을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진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후자를 택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교회 위기설은 20, 30년 전부터 나왔는데 그때마다 교회는 '종북·이슬람·동성애'를 한데 묶어 적으로 상정하며 위기를 피해가려 했다. 요즘 소위 동성애에 대한 비난이 개신교계 안에서 거세지는 양상인데, 교회가 그만큼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판단이다."

- 자격심사위원회가 요구한 바를 보면 사상검증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인상이 강하다. 이에 대해 당사자로서 어떤 심경인가?
"경위서를 내라는 지시를 받고 성실하게 작성해 제출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자격심사위는) 경위서를 받고는 다시 각서를 작성할 것을 공문으로 요구했다. 

이 공문을 받고 고민을 참 많이 했다. 분명 각서를 쓰지 않으면 상황이 심각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목회신념에 어긋난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마음을 담아 각서에 대신하는 편지를 심사위원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게다가 자격심사위의 요구로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성경적 연구를 담은 리포트도 제출한 바 있다. 

이후 진행된 자격심사에서 위원들은 축복식에 참석한 동기나 거기서 어떠한 내용의 축복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그저 집요하게 동성애에 대해 찬성이냐 반대냐를 따져 물었다. 참 마음이 어려웠다. 

각자 입장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토론하며 배워나가면 될 일이다. 물론 심사 자리이기는 했지만 이야기를 들으려 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예스 혹은 노를 강요하는 태도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혐오나 배제는 사람 죽이는 것, 예수께서 보여주신 태도 아냐"
 
이동환 목사의 교단 법정 기소 소식이 알려지자 대책위가 꾸려지는 한편 구명운동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동환 목사의 교단 법정 기소 소식이 알려지자 대책위가 꾸려지는 한편 구명운동 움직임이 일고 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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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보수 교단은 동성애를 최악의 죄악으로 보는 것 같다. 그리스도교와 동성애는 양립할 수 있다고 보는가?
"다른 여러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선 '태도'에 대해 말하고 싶다. 과거 기독교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혐오를 거리낌 없이 부추겼다.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노예제 옹호, 유대인 핍박, 여성차별 등 역사상 드러난 수많은 과오는 이 같은 행위의 결과물이다. 

지금도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동성애자를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오늘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 그 결과가 너무도 끔찍했음을 잘 안다. 지난날 진리라고, 신의 뜻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너무도 많지 않은가? 지금은 누구도 천동설, 노예제, 성차별 등이 옳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라도, 설령 우리와 뜻이 다르더라도 교회의 태도가 혐오나 배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며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태도가 아니다. 그보다 '예수님이라면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대할까?'를 질문해야 한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당시 유대인들이 죄인 중의 죄인이라고 여긴 이들을 환대하고 즐거이 식사를 함께 했다. 환대와 경청이 교회의 기본적인 태도여야 한다.

그런 경청과 관용의 태도가 다양한 의견의 신학적 교류로 이어지면 좋겠다. 의견과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생소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흑백논리로 예스·노를 가르는 건 성숙한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다. 우리가 끝까지 고집하며 가야 할 단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 혹시 성소수자 교인에게서 격려 메시지를 받아 보았는가?
"많은 분들이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신다. 물론 그중에는 성소수자 성도들도 섞여 있다. 위축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위로를 받았다는 분들이 계신 것 같다. 

다만 이번 일로 한국교회 내에 숨죽인 채 살아가는 성소수자 성도들이 상처를 입을까 우려한다. 겨우 축복기도 한 번으로 재판에 회부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당사자들이 교회에서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분들에게 당신들도 하나님께서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는 차별이 없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 대책위가 꾸려졌고, 구명움직임이 일고 있다. 향후 대응 방침에 대해 말해 달라. 
"많은 분들이 이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시고 응원해주신다. 깊이 감사드린다. 

난 이번 일이 이동환이라는 한 개인을 구명하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지기보다 성소수자 축복을 죄로 만드는 '교리와 장정'의 처벌조항을 개정하고, 성소수자를 비롯한 이 땅의 소수자들을 위한 신학적·목회적 논의들을 시작하는 계기로 이어져 나가기 바란다. 동시에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안전한 감리교회로 거듭나는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 구체적인 대응 방침은 논의 중이다. 다만 교단에서 진행해가는 절차에 성실하게 임하면서 이 사안의 부당함을 계속해서 알려나가려 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나아갈 것이다."

태그:#이동환 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리와장정, #성소수자, #인천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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