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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하루가 다르게 뜨거워지고 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엄청난 기세로 우리의 삶을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몇 달 주춤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해를 넘기기 전에 코로나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매일 브리핑이 이어지고 있다. 방송 화면 뒤로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의 바쁜 모습들이 비쳤다. 문득, 저 방호복을 입고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날이 선선했을 때도 방호복을 벗으면 흐르는 땀에 푹 절어있는 모습이었다.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날씨에 이중 삼중의 고역을 겪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직업은 단지 그 직무를 충실히 하는 것만으로 직무 이상의 숭고한 가치를 드러낸다. 방역의 최일선인 현장에서 오늘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다. 그들의 직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등교를 하니, 학교 현장에서의 수고로움도 전파를 탔다. 교사들도 아침 일찍,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에 학교에 나가 어설픈 방호복을 입고 교실 소독을 했다. 또 등교하는 아이들의 손 소독, 체온 점검, 거리 두기를 지도한다고 한다. 교사들은 교육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도 자신의 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일선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려는 마음이, 그 진심이 와 닿았다. 

자신이 맡은 직무를 열심히 해서 마음까지 보여줄 수 있는 직업이 교사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 20대 국회 때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에 대한 법안 통과가 일부 국회의원들의 이기적인 행태로 무산될 뻔했다. 국민의 삶의 질, 안전을 위한다면 사고를 당한 아이들의 부모가 나서지 않아도 국회의원들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직무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책 표지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책 표지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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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에서 '교수형' 부분을 필사하며 읽었다. 이 책에는 직업에 충실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영국 식민지인 버마(Burma)에서 제국경찰로서, 제국주의의 최전선에 서있는 가해자로 살았던 작가의 삶의 모습이 들어 있다.

죄수를 감방에서 데리고 나오고, 묶고, 교수대로 이동시키는 과정에 대한 군더더기 없는 묘사가 신랄했다. 죄수를 뒤에서 지켜보는 심정이나, 그 또한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인간임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그는 교수대에 오른 죄수의 외침과 단 1초의 시간들까지도 섬세하게 관찰했다. 빈틈없는 묘사였다.
 
우리는 올가미와 자루를 쓰고 교수대 발판에 올라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의 외침을 듣고 있었다. 소리 한 번이 연장된 목숨 1초였다.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발 어서 죽여버려. 그냥 끝내라구. 저놈의 징글맞은 소리 그만 듣게!

교도소장의 신호에 교수형이 집행된다. 현장을 확인하고 죽음도 확인한다. 형을 집행한 교도관들은 교수형 집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죄수들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가정적이고 명랑해 보이기까지' 하는 배식을 마치고 방금 사형을 집행한 간수들은 모두 흥겨워 재잘거린다. 그러면서 더없이 만족스럽게 끝났다, 고 다 같이 웃으며 말한다. "죽은 자는 100야드쯤 떨어져 있다."
 
"'제대로' 됐다."
"오늘 아침에 할 건 다 했다." 
우리는 업무를 마친 것에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다. 노래라도 부르거나, 느닷없이 마구 달리거나, 낄낄거리기라도 하고픈 충동을 느꼈다. 우리는 갑자기 모두가 흥겹게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중 '교수형' 부분을 필사한 노트.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중 "교수형" 부분을 필사한 노트.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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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철한 직업인으로서의 모습이다. 식민통치 최일선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답다. 자신들의 명쾌한 직업적 가치관을 자랑하는 듯하다. 이들의 모습을 그리다 보니, 한국의 식민통치 시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수없이 쓰러진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 현장이, 차디찬 죽음이, 그리고 범죄자들의 웃음이.

특수한 상황에서 자신이 보고 겪은 엄청난 일을 쓴 저자의 에세이를 읽으며 직업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조지 오웰은 대영제국의 경찰간부로서 식민지 버마에서 근무한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경찰직을 사직한다. 이후 자발적으로 파리와 런던의 하층민들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체험을 작품으로 발표해서 탈인간화된 사회와 권력의 실태를 고발했다.

사법은 직무에 충실한가

최근 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불구속 결정을 내렸다. 담당 판사는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를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면서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말했다. 불구속 재판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을 두고 다르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평범한 시민들에게 찾아볼 수 없었던, 죽어있던 원칙인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 "돈 있고 힘 있고 백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느닷없이 되살아났다"라고 꼬집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전후로 부정거래와 시세조종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 과정을 숨기고 승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삼성 바이오로직스의 회계 기준을 바꿔 4조5000억 원의 장부상 이익을 취했다는 혐의도 있다.

검찰은 정확한 수사 결과를 내기 위해, 법원은 재판의 원칙을 위해 모두 자신들의 직무에 충실했다고 믿고 싶다. 모두가 시민들이 인정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노력했다고 믿어주고 싶다. 

법은 사회의 룰을 정하는 것이다. 때문에 어떻게 정의구현을 이룰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대부분의 도덕 교과서에서 정의란, 사회적 대우나 보상 처벌 등에 있어서 '마땅하게 받아야 할 몫'을 공정하게 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서술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의 범죄 혐의는 중해 보이고 사법부의 판단은 공정과 멀어 보인다. 

판사가 말하는 법의 원칙이 아무리 정교하고 간명할지라도,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할지라도, 그것이 법전을 모르는 시민의 눈으로 보기에 정당하지 못하고 눈높이에 맞지 않다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식민지의 경찰 노릇을 충실하게 수행했던 조지 오웰은 "나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죄의식에 관한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대인 집단 학살의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자신은 상부에서 시킨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직무에 충실했다는 얘기다.

아이히만은 조지 오웰처럼 죄의식을 갖지 않았고, 자신의 학살이 '국가적 직무'이며 '애국의 행위'였다고 재판정에서 말했다. 재판에서 그는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직무를 열심히 수행하는 어떤 사람은 시민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남긴다. 또 어떤 사람은 시민들의 마음에 불평등과 불합리의 사회구조를 생각하게 하고 분노하게 한다. 투철한 직업적 행동이 모두 다 같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직업적 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일수록,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2010)


태그:#사법부, #조지오웰 교수형, #양심, #직업관, #사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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