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알바비 45만원, 30회 이상 일해야 줍니다" (http://omn.kr/1no5d)에서 이어집니다

그때 내 근무시간은 오후 1시부터 시작이었다. 다음 날부터 일을 시작한 나는 항상 오후 1시에 요가학원 사무실에 들러 출근시간을 적었고, 담당자는 책상 위에 지도를 펼치고 오늘 내게 어느 아파트로 가서 전단지를 부착해야 할지 말해준 후 그날 쓸 전단지와 테이프를 가방에 넣어주었다.

사람들은 흔히 전단지 알바 하면 길거리 등에서 나눠주는 배포를 생각하지만 전단지 알바는 크게 배포와 부착, 그리고 직투(우편함에 꽂는 것)로 나뉜다. 내가 하게 된 일은 담당자가 정해준 곳으로 가서 전단지를 붙이는 '부착'이었는데, 일의 강도가 진짜 말 그대로 '상상초월'이었다.

담당자가 정해준 아파트로 가서 그 아파트의 모든 동마다 다 돌아야 했다. 제일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으로 올라가서 한 층씩 내려오는 방식으로 그 동의 모든 세대 현관문 앞에 전단지를 붙여야 했다. 전단지의 무게 때문에 가방도 무거운데 그 상태로 계단을 계속 내려가다보면, 그것도 아파트의 모든 동마다 내려가다보면 다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정말 더 못 걷겠다 싶을 정도로 다리며 발이 아파서 아파트 주민들의 눈을 피해 비상구에 앉아 쉴 때면 "아, 진짜 인생 한 번 OOO이네"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동수가 적은 아파트라면 차라리 다행이었는데 동수가 많은 아파트라도 걸리는 날이면 그건 죽으라는 소리와 마찬가지로 들렸다. 얼마나 다리가 아플지 눈에 보이는데 그렇다고 못하겠다고 할 수는 없으니 겉으로는 "네, 다녀올게요" 하고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담당자를 향한 나쁜 소리가 저절로 울리는 날이 계속되었다. 뭐, 어쩌면 지금 연극을 하는 내 연기력의 절반 이상은 그때부터 다져진 걸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거리가 가까운 아파트면 그나마 나은 게, 그때 당시 내가 전단지를 부착하러 다녔던 전주 인후동은 꽤 권역이 넓은 곳이었다. 그래서 아파트가 꽤 많았고,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서 담당자는 알바가 어디어디를 다녀왔는지 지도에 표시해뒀다 가지 않은 곳을 랜덤으로 골라 보냈는데 그러다 보면 걸어서 20분 이상을 가야 하는 먼 거리에 배정될 때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꽤 오래 걸어서 전단지를 부착할 곳으로 가 그곳에서 또 몇시간씩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계단을 타야했는데 그때가 여름이라 온몸이 땀에 흠뻑 젖기 일쑤에 목이 어찌나 말랐는지 입 안이며 목 속까지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을 갈증으로 고생하고 그 다음부터는 얼음물을 얼려갔지만 그마저도 더위와 갈증을 온전힏 달래기는 역부족이라 한낮에 일하는 내내 이러다 더위로 쓰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아파트 비상구 계단에 앉아 어느 정도 녹은 얼음물을 마시고 있으면 저절로 욕이 나왔다. 그냥 욕이 나오고, 내가 고생하는 건 다 나에게 사기를 친 룸메이트 때문이라고 욕이 나오고, 그런 인간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사기를 당한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욕이 나오고, 누군가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쉴 때 누군가는 더위와 갈증에 쓰러질 지경인데도 일을 멈추지 못하는 것에 욕이 나왔다.

"아, 다 OOO.

그때의 내 심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랬다. 그렇게 욕을 하면서 일을 끝내고 나면 다시 요가학원 사무실로 돌아가 남은 전단지를 가져다주고 퇴근시간을 적었다. 그렇게 내가 출근한 시간과 퇴근한 시간의 차이는 애초에 약속했던 3시간이 아니라 3시간 30분이나 4시간일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이 부분에 대한 돈은 따로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이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는 없으니 어쩌랴. 그저 "안녕히계세요"라며 인사하고 돌아설 수밖에.

덧붙이는 글 | 기자가 직접 겪은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이러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네"입니다.


태그:#노동, #알바노동, #수기, #전단지알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몰라 답답한 1인입니다.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고 싶습니다만 그게 될까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