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읍에서 나고 자랐다.

도시 사람들은 아마 읍이 뭔지 잘 모를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인구수를 기준으로 편의에 따라 행정 구역을 나누어 놓은 것 중의 하나가 읍인데, 면이 커지면서 제법 도시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을 때 승격하여 읍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읍은 도시는 아니지만, 시골치곤 사람들이 제법 모여 살면서 '스타벅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디야'가 있고 운 좋으면 '롯데리아'도 볼 수 있는 곳이다. 흔히 시골 사람들이 "읍내 구경 간다" 할 때의 그 읍이다.
 
예나 지금이나 '읍내 구경'의 묘미는 '시장 구경'에 있다. 내가 나고 자란 그 읍에는 아직도 매달 끝자리 4, 9의 날짜마다 오일장이 선다. 요즘에야 아무리 시골이라도 대형 마트 한 군데쯤은 있기 마련이고, 홈쇼핑이든 인터넷쇼핑이든 주문만 하면 구석구석 배달이 되지 않는 데가 없으니 '장'이라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이 느껴질 거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은 오일장이 서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명절이나 제사를 앞둔 즈음에는 좀 더 싸고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 일찌감치 집에서 나선 사람들로 시장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북적했다.

사실 별다른 살 거리가 있어서 그랬다기보다는, 한갓진 시골에서 사람 구경을 하기에 시장만큼 좋은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시절엔 시장에 가면 소식을 잊고 지내던 반가운 얼굴들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오는 즐거움이 있었다.
 
나도 어릴 때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 옆에서 이것저것 짐도 받아들고 성실하게 조수 노릇을 잘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무렵엔 기름에 막 튀겨 건져내는 도넛도 하나쯤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엄마와 함께 하는 시장 나들이를 좋아했던 것은, 엄마가 물건을 사기 위해 주인과 흥정을 하며 말을 주고받는 것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시장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죄다 나를 아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엄마가 과일을 사려고 하면, 과일 전 아주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얘가 이 집 막내딸인가 보네. 이번에 3학년인가?" 물었다. 그러면 또 엄마는 웃으면서 "무슨, 벌써 5학년인데요. 그 집 애보다 네 살 적어요" 하고 대꾸하는 식이다. 그러면 아주머니는 내가 예뻐서 주는 거라면서 하다못해 귤이라도 한 개 틀림없이 덤으로 더 얹어주곤 했다.
 
내가 대학을 다니기 위해 처음 도시에 왔을 때, 나는 도시 친구들 대부분이 5일마다 서는 장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대체 너는 얼마나 시골에서 온 거냐?"는 농담을 들으며 얼굴이 빨개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나고 자란 읍이 그렇게나 시골인 줄은 차마 몰랐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내 얼굴이나 몸가짐 어딘가에 묻어 있을 촌티가 부끄러웠다.
 
그로부터 이십 년이 지난 지금,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촌스럽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내가 좀 촌스러워서 그래"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이를 먹고 보니, 나고 자란 동네가 기껏 인구 2만 명 남짓의 촌이라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의 너비가 좁아서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게 했던 날들, 남에게 옹졸하고 인색하게 굴었던 시간들이 더 부끄럽고 민망하다.
   
긴급재난기금으로 장을 보다
 
아직도 전처럼 북적이진 않지만,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는 시장 풍경
▲ 중랑구 면목동에 위치한 동원 시장 아직도 전처럼 북적이진 않지만,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는 시장 풍경
ⓒ 조하나

관련사진보기

 
나는 작년에 새로 이사를 하고 난 뒤에야 집 바로 앞에 시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짐 정리를 마치고 며칠을 벼르다가 시장 구경에 나섰다. 서울 중랑구에 있는 '동원 시장'이다. 시장 안에 들어서니 제법 널찍하게 포장이 잘된 길을 사이에 두고, 크고 작은 단정한 모양새의 가게들이 주욱 이어져 있었다.

메밀 반죽을 두르고 배춧잎을 얹어 전을 지지거나, 돼지 머리를 앞에 걸어 놓고 커다란 솥에 순대를 삶거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찌거나, 매큼한 냄새를 풍기는 떡볶이를 보글보글 끓이거나,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파는 가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길을 걷다 보니 보는 것마다 먹고 싶어서 절로 군침이 돌았다.

시장의 중간쯤 다다르니 제법 큰 규모의 슈퍼마켓이 하나 나왔다. 가만 보아하니 생선이든 과일이든 좀더 소분되어 간편하게 손질된 것을 사려는 젊은 사람들이 주로 슈퍼마켓에 모여 있었다. 슈퍼마켓 손님과 시장 손님이 구분 없이 여기저기 넘나들면서 쇼핑을 즐기는 모습이 신기했다.
 
나는 그 뒤로 종종 집 앞 시장을 찾게 되었다. 살 것이 없어도 구경 삼아, 혹은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산책 삼아 시장 입구에서부터 저쪽 끝까지를 천천히 걷곤 했다. 그러다가 최근 코로나19가 터지고, 한동안 발길을 끊게 되었다. 출퇴근 길에 시장을 지나쳐가는데 볼 때마다 입구 안이 썰렁한 것 같아 어쩐지 마음이 좀 무거웠다.
 
며칠 전, 긴급재난기금이 카드사 포인트로 적립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오랜만에 다시 시장을 찾았다. 재난기금을 전통 시장 안에서도 쓸 수 있다는 말이 떠올라서였다. 시장 안은 전과 같은 활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창 코로나가 극성일 때 비하면 많이 나아진 모습이었다.

마스크를 낀 채 시장 안을 구경하며 이것저것 물건을 흥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시장 안 과일 가게에 들러 싱싱해 보이는 딸기 한 상자와 바나나 한 다발을 샀다. 그리고 정육점에서 삼겹살도 한 근 샀다.

마트로 걸음을 옮겨 주방 세제와 화장지, 생리대를 비롯한 몇 가지 생필품까지 사고 나니 양손이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와서 사 온 것들을 정리하고 보니, 당장 전쟁이 터져도 몇 주는 거뜬히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흐뭇했다.
 
동원 시장에는 크고 작은 가게들이 주욱 이어져 있어요. 길도 포장이 잘 되었고 어느 구역까지는 지붕이 설치 되어 오늘처럼 비가 올 때도 불편없이 쇼핑할수 있습니다.
▲ 예전과는 달리 현대화 된 시장 정경 동원 시장에는 크고 작은 가게들이 주욱 이어져 있어요. 길도 포장이 잘 되었고 어느 구역까지는 지붕이 설치 되어 오늘처럼 비가 올 때도 불편없이 쇼핑할수 있습니다.
ⓒ 조하나

관련사진보기


코로나19로 인해 여기저기 경기가 어렵다고 난리다. 나 또한 한동안 출근을 못하게 되면서 월급의 3분의 1이 고스란히 날아가 버린 터라, 이번에 재난기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에 몹시 기뻤다.

그래도 나 같은 월급쟁이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을 것이다. 손님은 없는데, 계속해서 가게 월세는 내야 하고, 또 물건도 들여다 놔야 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애타는 심정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기업들이 신규 채용은커녕 실업자들을 쏟아내고 있는 형편이라, 청년 취준생들은 아예 구직을 포기한 상태라고 하지 않나. 안타까운 노릇이다.
 
모두가 어려운 이때, 그래도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나아지리라는 희망까지는 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국난에 강한 민족이니까. 하루빨리 경기가 풀려, 사람들의 언 마음도 찬찬히 녹아 다시 뜨뜻해지면 좋겠다. 무엇보다 "떨이요!"를 외치는 상인들의 씩씩한 목소리가 넘쳐나는 시장이 너무 그립다.

태그:#긴급재난기금, #전통시장사용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