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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머리를 숙이고 있다.
▲ 대국민 사과하는 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머리를 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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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굳은 표정으로 등장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렇게 말한 뒤 고개를 숙였다.

6일 오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늘의 삼성은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때로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오히려 실망을 안겨 드리고 심려를 끼치기도 했다,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창업 3세인 자신에 이어 4세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깜짝선언한 그는 또 창사 이래 유지해온 '무조노경영'을 철폐할 것도 약속했다.

이 같은 사과는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의 권고에 따른 조치다. 준법위는 앞서 지난 3월 11일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의혹, 노조 문제, 시민사회 소통 등에 대한 반성을 담은 대국민 사과를 권고했었다.

사과의 1차 기한은 지난달 10일이었지만 삼성 쪽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기한 연장을 요청해 이달 11일로 연장했으며, 이 부회장은 준법위의 임시회의가 예정된 7일을 앞두고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단 10분 만에 마무리됐다. 기자들이 질문을 할 시간도, 이 부회장이 답변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노사문화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대국민 사과하는 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노사문화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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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이날 이 부회장은 가장 먼저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그 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 많은 질책을 받았다, 특히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건에 대해 비난을 받았다"며 "최근에는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삼성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준 34억 원 상당의 말 등을 뇌물로 인정하면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대가성이 있었다고 판단했고, 현재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은 이 같은 문제의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는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아가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며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이 부회장은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이날 이 부회장은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규모로 보나 IT업의 특성으로 보나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며 "이것이 제가 갖고 있는 절박한 위기의식"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 와야 한다"며 "그들이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저에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다, 오래 전부터 마음 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왔다"며 "제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라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대국민 사과하는 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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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조 경영' 철폐... "시민사회-언론의 질책과 조언 경청"

이어 이 부회장은 삼성의 노조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삼성의 노사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최근에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건으로 많은 임직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더불어 그는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한 뒤 약 5초 동안 고개를 숙였다.

이어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 노사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또 "시민사회와 언론은 기업 스스로 볼 수 없는 허물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하고 낮은 자세로 먼저 다가서겠다"고 했다. 이어 3초 가량 고개 숙여 인사한 이 부회장은 어떠한 질문도 받지 않은 채 기자회견장을 황급히 떠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퇴장하고 있다.
▲ "대국민 사과" 미치고 퇴장하는 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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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 "고공농성 해결 없는 사과는 사기... 이재용 구속해야"

이처럼 이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지난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의 책임과 관련해 사과한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삼성의 노조탄압 문제를 호소하고 있는 이들은 이번 사과에 대해 극도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날 기자회견 직전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고공농성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사과의 내용이 무엇이든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에 대한 문제 해결 없는 사과는 모두 사기"라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이어 "해고노동자가 332일째 강남역 철탑 위에서 농성을 하며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바로 그 앞에서 사과라니 천인공로할 일"이라며 "사법당국은 이재용을 당장 구속시키길 바란다"고 했다.

태그:#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준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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