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침 8시쯤 부터 담임은 구글 클래스룸에 하루의 일과와 과제를 올리기 시작한다.
▲ 구글 클래스룸을 통한 과제 제시와 제출과 소통 아침 8시쯤 부터 담임은 구글 클래스룸에 하루의 일과와 과제를 올리기 시작한다.
ⓒ 이혜정

관련사진보기

 
코로나 19 팬데믹이 가져온 온라인 원격 수업은 교육자의 자질을 여지없이 노출 시킨다. 교사나 학교의 준비도, 교사의 디지털 리터러시 (Digital Literacy),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도, 수업 전개와 전달 방식 등 교육 전문가로서의 자질이 매일 화상 수업, 동영상 그리고 온라인에 올려주는 과제물로 드러난다. 

온라인으로 다른 나라 교육자의 자질도 실시간 비교가 가능하다. 멜버른의 한국 이민자 커뮤니티에는 한국 교육기관들의 원격 수업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온다. 나도 매일 한국 교육자 페이스북 친구들의 원격 수업 흐름과 학교 실정 등을 접한다. 아이들은 호주식 교육을 받고 부모들은 대부분 한국식 교육을 받았으니 '한 가정 두 국가의 교육시스템'이 공존하는 셈이다.

초등학생 아이 두 명을 키우는 지인은 평소에 호주 교육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학교에 가보면 매일 뛰어 노는 것만 같고, 유학 온 한국 아이들과 비교하면 호주 아이들은 한참 뒤쳐져 보이고, 교사들도 한국 교사들처럼 열심히 가르치는 것 같지도 않았다고 했다. 지인은 이번에 온라인 수업을 지켜보며 안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과 다른 속도로 가르친다는 것, 교사가 혼자 하는 수업이 아닌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수업을 한다는 것, 오히려 사회에서 필요한 기본 소양을 철저하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3년여 전 대한민국 입시공화국의 최전선,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였던 내가 '철밥통'을 포기하고 호주에 살게 된 이유도 결국은 아이 교육이었다. 한국과는 교육 환경과 시스템이 판이했다. 이곳엔 '공개 수업의 날'과 같은 보여주기식 일회성 수업 공개는 없다. 교사의 수업은 언제나 개방이기에 호기심 많은 나는 수시로 교실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원활한 영어 사용자가 아니고 불안감이 높다는 빌미로 말이다.

'어떻게 가르치는지 한 번 보자.' 못된 심보도 반은 있었다. 교육 때문에 선택한 나라니 위안을 삼을 합당한 이유를 찾아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 학교 교사들의 온라인 수업을 지켜보다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화상 수업, 동영상, 온라인에서의 과제 제시와 피드백, 학부모-학생과의 소통 등 어느 한 군데 꼬투리를 잡을 수가 없다. 이들의 전문성에 존경심이 저절로 일어서 교장이나 교감에게 평가를 보내고 담임에게 고맙다는 감사 메일을 보낸다. 화면으로 옮겨온 수업을 보고 있자면 화면 밖 평소 수업이 어땠는지 추측할 수 있다.

호주 교사의 전문성에 저절로 존경심이 

첫째 호주의 수업은 학생이 무대의 주인공이다.

교사는 이미 아이들을 안내해 주는 조력자(facilitator) 역할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수업은 철저하게 과제 중심, 문제 해결, 그룹을 통한 협동 학습, 프로젝트형 모델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경쟁과 비교보다는 공동의 선을 추구하게 된다.

한국의 교사 중심 수업은 교사에게 막대한 고충을 초래한다. 교사의 역할이 강조되다 보니 학교 담장 밖에서 보면 교사 요인이 도드라져 보인다. 자칫 교육 문제의 모든 비난을 교사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한국 교사들은 늘 불안하기 쉽다. 외부에 수업을 공개하는 일도 부담이다. 학생들이 지루해 보여도 교사 탓, 졸아도 교사 탓, 성적이 부진해도 교사 탓, 결석을 해도 교사 탓으로 여겨진다.
  
온라인 수업으로 고생하는 학부모를 위해 교장이 참고용 시간표를 보내줬다.
▲ 호주의 온라인 수업을 위한 블럭형 시간표 온라인 수업으로 고생하는 학부모를 위해 교장이 참고용 시간표를 보내줬다.
ⓒ 이혜정

관련사진보기

 
둘째 호주의 학교는 시간표 구성이 블럭형이다.

한국처럼 교시제(50분 수업/10분 휴식)의 개념이 아니다. 아이 초등학교의 하루 일과는 오전에 두 블럭, 오후에 한 블럭 총 3블럭으로 구성된다. 오전 두 블럭 당 30분의 휴식이 주어지고 점심 시간 한 시간이 배정된다. 한 블럭은 1시간 30분이다.

블럭형 시간표 수업은 호주와 같은 방식의 교육에 최적화된 모형이다. 학생이 직접 검색, 그룹으로 토의, 협동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발표하는 수업은 한국의 50분짜리 수업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호주의 학교들이 온라인 수업으로 빠르게 무리없이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블럭형 시간표 덕분이다. 출석 확인도 수월하고, 교사들의 수업 준비가 반으로 줄고, 화상 수업의 비중도 크게 줄어든다.

셋째 학교는 교육 공동체로서 소통과 협업과 공유를 기반으로 한다.

호주의 초등학교에는 교과서가 없다. 중등에서도 교사들의 재량에 따라 선택하는 몇 과목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모든 교육내용은 국가의 교육과정에 제시된 기준에 맞춰 학년 간, 과목 간, 교원 전체 간 협의를 통해 구성되고 분업과 공유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소통과 협업의 구조로 교사 개개인의 자질에 따른 격차를 좁히는 역할을 한다.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책임 있는 주체로서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교육 자체가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온라인 수업에서 협력을 통한 교육 공동체의 모델은 진가를 발휘한다. 과제별로 한 교사가 동영상과 자료를 만들어서 동학년 공동으로 올리는 경우가 많으니 교사들의 부담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은 몇몇 지정된 혁신학교에 교육 예산을 투입해 실험을 한다. 2010년 경기도에 혁신학교가 많이 들어섰고, 혁신학교의 교사들은 전국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연수를 다녔다. 나도 그들의 경험담을 듣기 위해 연수를 쫓아다녔었다. 한국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내용은 호주의 학교와 대동소이하다. 큰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혁신학교는 교사들이 일이 넘쳐 수시로 초과 근무를 해야 하고, 혁신이 보편화된 호주의 학교는 교사의 희생과 봉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 

호주에선 집 근처 가까운 학교에 보내도 한국 혁신학교의 기본은 한다. 이곳에선 기본값으로 받는 형태의 교육을 나의 모국에서는 낯선 실험을 하겠다고 지정을 하고 예산을 책정한다.

혁신학교 실험이 시작된 지가 10년째다. 실험이 성공적이라면 초등만이라도 전체 학교로 확대를 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이제 혁신이란 단어를 빼자. 10여년 동안 해온 일을 아직도 혁신이라 붙이기는 낯간지럽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호주교육, #멜버른, #코로나 19, #코로나 19팬데믹, #온라인 수업
댓글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