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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그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진도 앞바다에서 수백 명이 타고 있는 배가 침몰 중이라고 했다. 승객의 대부분은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인데 현재 구조 중이라고 했다.

그 당시 우리집 막내는 이제 막 6개월을 넘어선 참이었고 둘째는 세돌, 첫째는 만 일곱 살이 되어가고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챙기고 도시락을 싸서 남편과 첫째를 직장과 학교로 보내고 나면, 둘째와 셋째가 두 눈 반짝이며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셋이 한 몸이 되어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치우고 하다 보면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곤 했다. 때로는 전쟁같다 여기고 종종 천국을 맛보기도 하면서 육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어느 저녁, 한국에서 날아든 뉴스를 보는 순간 모든 스위치가 한꺼번에 꺼지는 느낌이었다. 아이들 재울 시간이 되어 함께 누워 있다가 이제쯤 구조가 많이 진행되었겠지 싶은 마음에 아이들 깨지 않게 조심조심 폰을 켜보았다. '전원구조'라는 굵고 커다란 네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그럼 그렇지. 정말 다행이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내 옆의 아이들도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했겠지' 배 안에 있던 아이들 부모의 마음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괜스레 곁에서 잘 자고 있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전원구조' 속보가 오보였음을 알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눈을 의심했다. 일부도 아닌 전원구조라는 오보가 어떤 경로로 나올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지금 아이들은…' 배 안에 '에어포켓'이 있을 수 있다는 기사에 기대고 싶었다. 아이들이 제발 그곳에 머물고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그 후로도 기대가 무너지는 일들은 계속됐다.

들뜬 마음으로 병아리처럼 종알대며 배에 올랐을 수많은 아이들이 다시는 집에 돌아갈 수 없다 했고, 그러고도 오래도록 뭍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으며, 안타깝게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에도 생채기가 나고 있었다.

이후 슬픔에 더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 적극적인 구조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 사고 당시 대통령의 행적, 수사 방해 의혹 등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라는 구호는 사고가 난 직후인 2014년이나 2020년 현재나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다. 밝혀진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가끔 세월호 관련 기사를 보며 눈시울 붉히는 나를 보고 아이들이 놀라 묻는다.

"엄마, 왜 그래?"
"으응… 커다란 배가 있었는데… 언니 오빠들이 배를 타고 여행을 가다가… 배가 가라앉아서…"
"배가 왜 가라앉았는데?"
"그게… 글쎄. 아직 잘 몰라…"


이해가 안 되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모른다고밖에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원망스럽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6년은 60년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식을 잃는다는 것,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그 이유조차 알 수가 없다면 제대로 가슴에나 묻을 수 있을까.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밝혀달라'는 외침이 어째서 어떤 이에게는 지겨운 말이 될 수 있는 것일까. '6년이나'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6년이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밝혀진 것이 없지 않은가.

유가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은 여전히 진실을 알고자 한다. 일부 사람들이 비난하듯, 수년이 흘렀으면 진실이 무엇이든 '이제 그만' 덮어두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옳은 걸까. 아이들과 함께 했던 예전의 일상으로는 이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은 밝혀져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세월호 사건을 '징하게 회쳐먹는'다는 식의 막말로 유가족들에게 두 번 세 번 상처를 입히는 정치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징하게도 우려먹으며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당신들이 아니냐고.

6년 전 아기였던 막내가 이제 여덟 살이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맞아 아이들에게 말해주어야겠다. 세상에는 세월호 이야기가 이제 '지겹다'고 '그만하라'며 눈살 찌푸리는 사람들보다, 여전히 진행형인 그 사건에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고 제 2, 제3의 세월호가 생기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함께 행동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것을. 그리고 부디 공소시효가 끝나는 내년 봄이 오기 전에 사고가 일어났던 이유에 대해서도 답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5년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남편이 홍대 앞에서 노란색 세월호 리본을 받아왔었다. 남편은 리본을 나누어주던 유가족에 대해 이렇게 기억한다. "그렇게 슬픈 눈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이었다"고. '시간이 약'이 되지 못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세월호' 사건이 유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에게 그러하다.

태그:#세월호, #6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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