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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MBC에는 4년 차부터 22년 차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가 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고 방송사 내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합니다.[기자말]
 
다온분회 송년회 단체사진을 조합원이 그림으로 남겼다.
 다온분회 송년회 단체사진을 조합원이 그림으로 남겼다.
ⓒ 다온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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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3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MBC 비정규직 다온분회(이하 '다온분회')가 출범했다.

노조 출범은 준비위원회를 시작한 지 두 달여 만에 빠르게 진행되었고 우리는 회사 내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공통분모 때문인지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사람처럼 서로에게 금방 녹아들었다. 다온분회 조합원은 총 12명으로 우리는 자막CG, 영상편집, 행정사무, 주조정실 MD로 근무를 하고 있고 모두 여성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 회사에 비정규직 노동자는 여성이 더 많고 여성 임원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래서인지 우리 다온분회 조합원이 모두 여성인 사실이 그다지 놀랍게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엔 회사에서 일면식만 있던 사람들과 노조를 준비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하면서 느꼈던 건 우리 회사에 노조에 대한 열망이 강한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였다. 모여서 이야기 할 때면 저마다 열악한 처우에 대한 비판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고 이제는 우리도 목소리를 내고 당당하게 내 권리를 찾자는 이야기로 모아졌다.

본격적으로 노조가 만들어진 이후 조합원끼리 같이 일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각자 가진 전문기술로 분회 로고를 만들고, 영상 편집을 하고, 자막을 입혔다. 아무래도 경력이 적게는 2년에서 22년차다 보니 그간의 경력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노조의 부푼 꿈을 안고 출범한 지 보름 만에 회사는 노동조합의 사무국장을 맡은 조합원에게 더 이상 회사 매거진을 발행하지 않고 계약이 해지된다고 통보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다. 언론노조에서도 대구로 달려와 사무국장의 고용 유지에 대해 전환 배치와 같은 전향적인 판단을 해주길 요청했지만 회사는 답이 없었고 결국 노조가 생긴 지 두 달 만에 사무국장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그렇게 수년을 회사를 위해 일해 왔지만 나가라고 할 때는 한달여면 충분했다.

우리는 지난 해 6월 언론노조를 통해 '다온분회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단체교섭'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회사가 다온분회와 '교섭'은 할 수 없다고 해 '협의' 정도의 자리로 만날 수 있었다. 물론 교섭과 협의는 큰 차이가 있다. 그렇게 어렵게 자리가 만들어졌는데도 회사는 협상 대상자를 명확하게 하라며 다온분회 조합원들은 '프리랜서'이고 '프리랜서'는 각 국의 소관이므로 앞으로 각 국과 처우개선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든지 지부를 통해 하라며 끝끝내 우리 분회와의 '교섭'을 거절했다. 결국 자리만 불러 놓고 떠넘기는 식으로 첫 '협의'를 마치고 나니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후로 회사가 우리의 교섭에 더 이상 응하지 않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가던 중 조합원 2명이 더 떠나갔다. 너무 착잡했다. 회사가 원하던 게 이런 게 아니었을까. 알아서 지쳐 떨어져 나가길. 하지만 붙잡을 수도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우리의 '청춘'을 볼모 삼아서 하세월만 보내게 할 순 없었으니까.

그렇게 아무것도 진전된 것 없이 한 해가 끝나갈 무렵, 우리는 회사 게시판에 붙은 노사협의회 결과를 보고 방향을 바꿔 대구MBC 정규직 노조를 통해 문제를 풀어보기로 했다. 11월부터 시작된 대구MBC 정규직 노조와의 논의는 해를 바꿔 2월이 되었지만 그때마다 회사는 신사옥이전, 비상경영발표, 인사이동 등을 이유로 만나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에 지쳐갈 때쯤 회사는 별안간 우리 조합원에게 고정급 없이 '방송프로그램 별로 값을 매겨 보수를 지급 하는 방식(일명 바우처)'을 통보해왔다. 한 회사에서 22년을 일한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요구된 '바우처 전환'은 우리가 원하던 처우개선의 방식도 아니었고 우리의 고용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뿐이었다.
 
▲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조합원들 "우소모품이 아닌 노동자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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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20년 3월 23일, 다온분회는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형광 초록색으로 고른 투쟁 조끼를 입고 회사에 출근하는 것을 시작으로 '바우처 전환 계획 폐기'와 '교섭 요구'를 위한 피켓 시위에 들어갔다. 피켓 시위를 한 첫 날 마치자마자 회사에서 바로 호출이 왔다. 사내에서 하는 것은 시설 관리 측면에서 불법이니 멈출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헌법에 명시된 단결권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단체행동권으로서 업무시간 외 정당하게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회사는 교섭단체가 아니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하며 업무방해라며 몰아세웠다. 현재 우리 조합원들은 코로나와 선거로 누구보다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3월 한 달간 코로나 관련 대구시 브리핑으로 인해 주말도 반납하며 매일 특보에 투입된 나는 전체 31일 중에 단 이틀을 뺀 총 29일을 회사에 출근했다.

"우리는 서비스도, 소모품도 아닌 노동자"

이 와중에 4월부터 생방송 예정인 선거방송 토론회를 위해 자막 디자인까지 새로 꾸려 준비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경영이 어렵다며 자막 장비를 교체해주지 않아 우리는 본사에서 내려 주는 대부분의 작업 파일들을 다시 우리 장비에 맞게 재작업 하고 있다. 장비 교체하는 비용을 아끼고자 우리의 노동력을 갈아서 일해도 회사는 우리의 노고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회사에 묻고 싶다. 가장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우리를 외면하는 이유가 뭔지. 우리는 일하는 만큼 정당하게 임금을 받고 싶고, 노동자로서 법의 보호를 받고 싶고, 노동자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며 일하고 싶다. 우리는 서비스도, 소모품도 아닌 노동자다.  

우리는 노조활동을 하기에 시간도 재정도 열악하다. 노조사무실도 없다. 그래서 노조 이야기를 하려고 모여도 모일 장소가 없어서 회사 안에 여성휴게실을 이용해 짬짬이 만나고, 나머지 중요한 회의들은 교대근무를 마치고 업무 시간을 피해 회사 밖 카페에서 한다.

365일 방송하는 방송국 근무 특성상 우리 조합원 모두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주말이나, 그마저도 근무자는 제외하고 나서야 다 같이 모일 수 있다. 처음 조합원들의 노조 가입서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임금별 상이하게 조합비를 청구하는데도 우리 조합원 대부분은 약속이나 하듯이 최저구간이었다. 웃을 일은 아니었지만 웃음이 났다. 몇몇 조합원은 가입서를 쓰면서 우리도 월급을 많이 받아서 조합비도 많이 내고 싶다고 얘기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다행스럽게도 분회가 언론노조에 성명서를 게시한 이후 여러 곳에서 도움을 주었다.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에서는 '바우처 전환 폐기'에 대한 연대 성명서를 게시해주었고, 민주노총 대구본부에서는 분회와 간담회를 하자고 제안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의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었고, 조합원에게 노조 교육도 시켜주었다. 아직 혼자 피켓 시위를 하는 게 낯선 조합원들을 위해 곁에서 함께 서주는 등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우리가 피켓 시위를 하는 동안 마침 회사에서는 선관위 주관 후보자토론회가 진행되고 있어 많은 국회의원 후보자와 관계자들이 회사에 드나들었다.

여러 후보자가 우리 분회에 관심을 가져주었지만 가장 놀랐던 건 민중당 후보가 생방송 연설회 도중 다온분회를 언급하며 회사 경영진에 교섭에 나설 것을 이야기 해준 것이다. 노조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대'의 정신이라고 했다. 우리가 피켓 시위를 하면서 느꼈던 건 '연대' 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였다. 그 덕에 우리는 희망을 가졌고, 우리도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라도 더 힘차게 투쟁하자며 투쟁의지를 불태웠다.

다온분회 설립 총회 때 내가 조합원들을 설득했던 말은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는 거였다. "방송프로그램 만드는데 그 사람의 지위나 역할과 상관없이 모두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잖아요. 지금까지 아무 목소리 내지 못한 노동자들 중 여러분이 처음 목소리를 낸 거" 라고 노조를 만드는데 가장 큰 힘을 주셨던 분이 나에게 해주었던 말로 대신 위로했다.

조합원들이 어떤 결심으로 '노조'라는 같은 선택을 했는지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에 당차게 우리 다온분회가 전국 단위의 언론계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총망라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아직도 그 꿈은 여전하다. 더 많은 방송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과 뭉쳐서 지금은 발에 채는 돌멩이에 불과하다면 훗날에는 어떤 힘센 이도 함부로 옮기지 못하는 큰 바위가 되도록 더 단단해지겠다.
 
민주노총 대구본부에서 힘차게 “투쟁!”
 민주노총 대구본부에서 힘차게 “투쟁!”
ⓒ 다온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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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윤미영 기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MBC 비정규직 다온분회 분회장입니다.


태그:#대구MBC , #다온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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