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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검찰이 지난 9월 3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차량을 전격 압수수색하는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정점' 인물들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과 전직 대법관들의 자택 및 사무실 등지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대법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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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424호. '사법농단'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성근 부장판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정을 빠져나가는 임 부장판사에게 취재진이 붙자, 한 법원 직원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다급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고, '피고인'은 기다림 없이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하루 전인 1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25호. 역시 '사법농단'과 관련해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세 피고인과 그들의 변호인은 한 데 엉켜 악수를 나눴는데, 그들 사이에서 법정 관리를 담당하는 법원 직원도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어수선한 통에 정확히 어떤 말을 나누는지 알 수 없었지만, 법원 직원이 '피고인'인 그들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을 건네는 듯했다.

두 사례는 당연히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겐 벌어지지 않는 일이다. 법원의 무죄 판결과 이러한 모습을 구분해서 봐야겠지만, 뒷맛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사법행정권, 법원 아닌 법관 위해 쓰여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13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왼쪽부터)가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13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왼쪽부터)가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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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재판의 판결문을 보고도 마냥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희대의 법조비리 사건인 '정운호 게이트'가 터졌을 때, 당시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조의연·성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에게 주요 피의자의 수사 정보를 보내달라고 요구했고, 실제로 그 일이 진행됐다. 이를 통해 신 부장판사는 검찰 수사상황과 향후 계획을 담은 여러 보고서를 작성해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했다. 영장재판에서 다뤄진 피의자의 수사 정보는 당연히 외부로 유출되면 안 되는 사안이다.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유영근 부장판사)는 이를 '직무행위'(조의연·성창호) 또는 '사법행정'(신광렬)이라고 판결했다(관련기사 : 1심 무죄, 웃으며 악수 나눈 '사법농단' 의혹 판사들). 세 법관의 행동을 '법원 불신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법행정 차원에서 진행될 수 있었던 일'로 판단한 것이다.

사법행정권은 법관(사법권)의 독립 또는 이를 위한 법원(사법부) 조직 안정을 위해 쓰여야 한다. 정운호 게이트 당시 법원 조직이 위기에 놓였기에(물론 위기를 자초한 측면도 있지만), 일정 부분 사법행정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하지만 '법관이 피의자의 수사정보를 빼내고 이를 토대로 보고서를 만드는 것'까지 사법행정의 이름으로 용인돼야 할까.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영장전담판사에서 수사 정보를 달라고 요구한 것 자체를 법관 독립 침해 사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행정의 목적은 법원(사법부)이 아니라 법관(사법권)을 향해 있어야 한다. 사법행정이 법원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법관 독립을 침해하면 되겠는가(관련기사 : '사법권 독립' 망친, '사법부 독립'이란 허상).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 빈약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
 
 2012년 10월 23일, 임성근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12년 10월 23일, 임성근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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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임 부장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당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등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해당 재판부에 요구한 사안은 실제로 결과에 반영됐다.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송인권 부장판사)는 임 부장판사의 행동이 '위헌적 행위이지만 형법상 직권남용에 해당하진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관련기사 : "위헌이지만 무죄" 후배 법관에 90도 숙인 선배 '피고인' 법관).

재판부는 직권남용 무죄 판단과 별도로 '임 부장판사의 요구가 해당 재판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취지의 설명도 내놨다. 예를 들어 임 부장판사의 요구를 받은 당시 이동근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이후 자신이 포함된 재판부의 합의를 거쳐 결과를 도출했으므로 "인과관계가 단절됐다"는 논리다. 즉 독립된 존재로서의 법관을 강하게 신뢰한 것이다.

법관은 한 명 한 명이 '독립된 존재여야' 하지, 그 자체로 '독립된 존재'가 아니다. 법관도 인간이기 때문에 법관의 독립은 법관 개인의 양심뿐만 아니라 탄탄한 시스템에 기대야 보장될 수 있다.

우리나라 법원 조직의 경우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란 비판을 받아왔다. 대법원장을 꼭짓점으로 상하관계가 촘촘히 맺어져 있는 구조다. 인사·사무분담·징계 등을 관장하는 법원 내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빈약하기 때문에, 형사수석부장판사이었던 임 부장판사와 그로부터 요구를 받은 이 부장판사는 상하관계나 다름없었다. 또한 이 부장판사 및 그와 합의를 거친 재판부의 판사들 역시 사실상 상하관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구조 안에서 재판부 합의를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인과관계가 단절됐다"고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인간이 법복을 입는 순간 독립된 존재가 되는, 그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대법원은 지난 17일 사법농단에 연루돼 재판 업무에서 배제돼 있던 법관 8명 중 7명을 복귀시켰다. 7명에는 이번에 무죄 선고를 받은 4명도 포함돼 있다(관련기사 : 무죄만 기다렸나... '사법농단 판사' 재판 복귀한다).

대한민국은 위헌 법관이 재판 업무를 담당하는, '위헌 법관 보유국'이 됐다.

태그:#사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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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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