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가 올해 창간 20주년을 맞아 '나의 스무살' 기사 공모를 진행합니다. 청춘이라지만 마냥 빛날 수는 없었던, 희망과 좌절이 뒤섞인 여러분의 스무살 이야기를 기다립니다.[편집자말]
'제가 한번 해봤습니다!', '도전, 어디까지 해 봤니?', '어서 와, 이런 건 처음이지?' 등 배지영 작가의 강연회가 끝나고 에세이 쓰기를 함께 듣는 수강생 몇 분과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글쓰기를 시작한 수강생에게 작가가 도전기를 써보라며 즉석에서 제목까지 술술 불러준다. 혼밥(혼자 먹는 밥)도 곧잘 하는 수강생이 어떤 도전기를 들려줄지 벌써 기대된다.
       
 1인 가구 증가 추세에 따라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이 늘어났지만, 나에게 '혼밥'은 여전히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1인 가구 증가 추세에 따라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이 늘어났지만, 나에게 "혼밥"은 여전히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사실 나는 혼밥을 싫어한다. 싫어한다기보다는 혼밥을 못 한다. 나에게 혼밥은 그저 '외로움'이었기에 결국 첫 혼밥은 마지막 혼밥이 되어 버렸다. 혼자서 어디든 잘 돌아다니고, 영화나 연극을 보는 것은 할 만한데 유독 식당에 들어가 밥 먹는 것은 유독 힘들었다.
   
대학 다니면서 2년 정도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는 의약분업이 되기 전이었고 내가 만난 약사는 일일이 개인 차트를 만들어 증상과 처방을 기록해 관리했다. 약장 메인에는 손때 묻은 차트들이 두 칸에 빼곡히 꽂혀있었다.
   
약사가 바뀌고 약국을 확장한 후에도 나는 계속 차트 정리를 담당했다. 의약분업 이후로는 처방전을 전산시스템에 입력했다. 그렇다고 차트가 사라진 건 아니다. 차트는 사상체질로 한약조제도 했기 때문에 단골손님들의 체질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병원에 들르지 못하고 오는 손님들도 있었기에 여전히 동네약국의 역사를 자랑하며 자리를 지켰다. 어찌 보면 내 일거리만 추가된 셈이다.   

학기 중에는 오후 6시 반까지 출근하기가 힘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10분 남짓 걸어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저녁 먹을 여유가 없었다. 퇴근하는 오후 11시까지 버티기 위해 길거리에서 핫도그나 샌드위치 같은 걸로 대충 끼니를 때우곤 했다.

어느 날 조금 여유가 생겨 분식집에 들어갔다. 혼자임을 자각하지 못한 채 들어갔는데 막상 4인 식탁을 차지하고 음식 하나만 주문해 앉아있기가 민망했다. 점점 얼굴이 달아올랐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지만 속으론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도 관심 있게 쳐다보지 않았을 텐데, 나를 불쌍히 여기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고 내 얘기를 주고받는 것 같기까지 했다.
   
'나는 어쩌다 이 시간에 혼자 앉아서 저녁을 먹는 건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지만, 먹으면 또 얼마나 잘 먹어보겠다고 식당에 혼자 들어왔나?'
'계산만 하고 그냥 나가버릴까?'

  
별별 생각에 먹는 둥 마는 둥 몇 수저 뜨다가 바쁜 척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나와버렸다. 무슨 자존심인지 그냥은 못 나오고 계속 바쁜 척을 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한 행동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를 의식한 행동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스스로 위로가 되고 쪼그라든 어깨를 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후로 나는 혼밥에 도전해보려 "김치볶음밥 하나 주세요"라는 대사를 연습했지만, 막상 문을 열지 못했다.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거나, 사람이 많았거나,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나, 그 모든 것이 이유가 되었다.
  
혼밥을 시작으로 혼자 영화를 봤다거나, 혼자 여행했던 이야기를 나누는 수강생들 사이에서 마흔의 나는 혼밥으로 기가 죽었던 스무 살의 나를 찾아가 꼭 껴안아 주었다.
  
배지영 작가의 글쓰기 강연은 다시 나를 '쓰는 사람'으로 인도했다. 유쾌한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했다. 무료였을 뿐 아니라 공복 강연이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열정적인 가르침에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 길을 함께 갈 따뜻한 분들과 서점이 문을 닫는 야심한 시간까지 쓰는 사람으로 살아보자고 서로를 격려할 수 있어서.

걸어오는 길에 '대학원을 나왔냐'는 소리를 들었다. 2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1년간은 휴학까지 해가며 겨우 졸업장을 받았는데 대학원이라니? 어디서 그런 소문이 났을까 싶지만 기분은 좋았다. 뭔가 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아직 요란한 빈 수레임을 스스로 잘 알기에 들키기 전에 부지런히 채워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자판이 손가락에 스치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일상은 새로운 코스의 여행. 오늘을 여행하며 살고 싶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