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어린 시절 나에게 놀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놀이터 모래사장이었다. 모래를 밟고 술래잡기를 하면서 뛰어노는 것도 좋아했지만, 모래를 쌓은 뒤 아슬아슬하게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깃발을 꽂고 각자의 차례에 모래를 조금씩 파내는 놀이가 가장 스릴 있었다. 모래를 막대기로 그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상상력을 자극했다.

모래를 묻히면서 살던 시절도 있었는데, 모래와 멀어지는 것은 잠깐이었다. 자라면서 모래에 대한 생각은 점점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요즘은 모래하면 미세먼지나 황사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대기가 나쁜 날이 아니면 모래에 대해 생각 자체를 안 하게 된다.

하지만 모래는 분명 쓸모가 있다. 더 나아가 어떤 책에 따르면 인류는 '모래알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모래가만든세계
 모래가만든세계
ⓒ 빈스베이저

관련사진보기

 
'모래가 만든 세계'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하는 저널리스트 빈스 베이저가 모래를 주제로 산업, 도시, 경제, 환경을 엮어낸 책이다. 흔히 모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모래성을 짓다', '모래에 머리를 숨기다'는 표현은 헛된 생각을 하다, 현실을 회피하려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황량한 모래벌판은 허망함과 망각을 표현하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조직력이 나쁜 팀을 모래알같다고 비하하는 일도 있다.

그렇지만 저자에 따르면 인류는 작지만 무한하고,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질이다. 당장 우리가 서있는 바닥도 물속에서 퍼올린 모래가 들어간 인공 재료로 만들었을 것이고, 창문을 열고 시야에 보이는 건물에도 다 모래가 들어갔다. 보잘것없고 흔하디흔한 모래가 인체의 세포처럼 삶에 근본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모래는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 중요한 자원이었다. 인류는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모래를 건축 재료로 썼고, 중세 이탈리아 장인들은 모래로 투명한 유리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리는 현미경이나 망원경이 되어 과학 혁명에 기여했다.

오늘날 모래는 현대 문명의 필수 요소 반열에 올라섰다. 가파른 인구 증가에 맞추려면 주택과 건축물을 대량 생산해야 했고, 이에 가장 적합한 재료가 모래였다. 모래와 자갈을 시멘트로 접착시킨 콘크리트, 모래로 만든 유리가 없었다면 석재와 벽돌, 점토로 건축물을 지어야 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의 첫 장의 이름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고체 물질'이다.

이 책은 암묵적으로 시대와 모래의 관계를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한다. 하나는 모래가 보편화되기 이전의 시기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모래를 이용한 물건은 공예품의 성격이 강했다.

산업사회 시기에 모래는 콘크리트와 유리의 대량생산에 힘입어 도시를 건설하는 일에 쓰였다. 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재료를 사용하는 건축업자들의 저항이 있었다고 한다. 일례로, 벽돌공들은 콘크리트로 만든 도시는 미적 기준을 거스르고, 콘크리트는 건축학적으로 보아 매력적인 구석이 없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정교해지면서 성능을 인정받은 콘크리트는 다른 재료를 압도하고 건축의 뼈대가 되었고, 도로를 건설하는 일에 쓰여 도시와 그 주변을 가득 채워나갔다.
요즘 사람들은 콘크리트라고 하면 볼품없는 교도소 담장이나 음산하고 비인간적인 콘크리트 정글을 떠올리지만 콘크리트도 한때는 경이롭고, 진보를 상징하고, 인간의 드높은 야망을 실현시켜줄 필수 재료라고 여겨졌다. -60P
 
오늘날에는 모래가 고부가가치 산업에 쓰인다. 매장된 석유나 천연가스를 채취할 때 쓰는 방법 중 하나인 수압파쇄법에는 많은 모래가 필요하다. 시추관 한 곳에서만 화물 열차 200대 이상의 모래가 쓰인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거대한 산업인 수압파쇄를 통해서 미국은 자원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인터넷 시대에 필수적인 컴퓨터 모니터, 반도체 칩, 광케이블 역시 모래로 만들어진다. 첨단기기에는 철저한 분리작업을 거친 끝에 귀한 몸이 된 고순도 모래가 사용된다. 책에 따르면 각질층을 제거하는 피부 관리법에도 모래가 사용된다고 하니, 인류 문명은 모래알로 세운 문명인 셈이다.

물론 모래에도 한계가 있다. 저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모래를 채취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인류 문명은 엄청난 수준으로 모래에 의존하고 있고, 자원엔 한계가 있으므로 현명한 태도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모래는 과잉 소비라는 훨씬 더 큰 문제를 형성하는 한 가지 요소일 뿐이다. 기억하고 있겠지만 석영 모래는 지표면에서 가장 풍부한 물질이다. 그런 석영 모래가 고갈되고 있는 지경이라면, 우리의 소비방식 전반을 진지하게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318P
 
흔히 과학 도서를 읽다 보면 글이 갑자기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다. 저자가 쉬운 용어를 해설하면서 글을 써내려가다가 과학적 지식을 그대로 제시하면 일어나는 현상인데, 독자로서는 목에 무언가 걸린 것처럼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기 마련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어려워지는 부분까지 읽고 책을 덮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다. 독자가 책을 읽다가 요철에 부딪히지 않도록 쉽게 쓰였기에 책의 모든 과학적 요소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아도 각 장의 얼개를 이해할 수 있다. 마음을 놓고 푹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모래가 만든 세계 - 인류의 문명을 뒤바꾼 모래 이야기

빈스 베이저 (지은이), 배상규 (옮긴이), 까치(2019)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전화해주실 일 있으신경우에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