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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라 하지만, 내게는 주식의 혹은 식주의가 맞는 순 같다, 집은 첫째거나 많이 양보해야 둘째이다.

'공동체주택' 중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운동을 20여 년째 해오고 있는 건축가 류현수 님의 강연을 들었다. 요약하면 공동체주택은 '공동체'가 먼저, 다음이 이를 담을 수 있는 주택이다. 공동체라 해도 '개인' 혹은 '부부와 아이로 이루어진 기본 가족 단위'가 먼저 단단히 서야 하고, 다음 공동체를 훈련하고 교육하는 과정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것.
 
우리는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 역시 우리를 짓는다. 우리의 집과 공동체가 어떤 곳이어야할지를 함께 생각하고 대화하는 자리는 필수적이다. 2020년 1월 29일, 마을문화카페 산책에서
▲ <마을을 품은 집, 공동체를 짓다> 저자 류현수의 강연이 열렸다 우리는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 역시 우리를 짓는다. 우리의 집과 공동체가 어떤 곳이어야할지를 함께 생각하고 대화하는 자리는 필수적이다. 2020년 1월 29일, 마을문화카페 산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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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분노가 필요하다

강연 후에 질문을 했다. 처음엔 그 말이 동문서답처럼 들렸고, 다음엔 우문에 현답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 모래알로 흩어져 있을 때 가장 우수하다는 우리들(한국인들)이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일은 되게 서툴다고 하셨다. 그런데 공동체 주택이란 그렇게 함께 살자는 말씀이시고… 우리 안의 갈등과 싸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야할까? 왜 그런 문제들이 반복될까?
"나는 우리들이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부조리함이 있나? 그걸 인식하고 꺼내서 해결하려고 분투하는 과정이 필요한 거다."

주택과 관련해서 (강연에서) 그가 말한 '부조리'의 목록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1. 사람들은 서로 다르면서 똑같은 집에 산다. 예로 대기업이 만들어놓은 똑같은 아파트에서, 대개 다들 똑같은 걸 추구하며 산다.
2. 법제도도 이런 아파트 집을 짓는 데는 충실한 기반이 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싶은 작은 내 집을 짓는 데는 엄청난 규제와 제약이 있다.   
3. 예로 베란다 확장공사같은 것이 있다. 베란다를 만들어 놓는 데는 내 돈이 이미 들어가 있다. 그걸 준공 후엔 모두 다 뜯어내는 짓을 똑같이 한다.
4. 지금은 단독주택을 지으면서도, 아파트에서 살던 습관 그대로 집을 짓기도 한다. 등등.


집보다 먼저 햇빛과 공기와 녹지

우리는 집을 짓지만, 그 다음에 집은 우리를 짓는다. 즉, 공간은 우리를 지배한다. 그런데 그 집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가에 대해 우리의 관심과 이해는 거의 없다. '분노한' 건축가 류현수가 말하는 집(공동체 주택을 포함해)은 기본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집은 환기와 채광이 중요하다.
2. (특히) 맞바람이 통해야 한다.
3. 녹지공간을 최대한 확보한다. (옥상이든, 집안이든 벽이든, 주변이든)
4. 저에너지 즉 이중단열 등이 필요하다.
6. 채광, 환기 그리고 물빠짐이 좋은 집이 명당이다.
7. 테트리스 - 공동주택은 서로 다른 집들이 함께 있는 곳이다.
8. '따로 또 같이'의 철학을 공유한다.
9. 커뮤니티실을 만들고 실제로 활성화한다. 그곳은 공동육아, 공동식사, 공동의 문화생활과 동아리 활동이 벌어지는 곳이다.   


공동체주택에선 집보다 먼저 공동체

공동체주택을 지을 때, 주택보다 먼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은 공동체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기본 조건 혹은 룰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사람이 모든 일에 다 참석해야 할 필요는 없다.
2. 개인(혹은 단위)이 먼저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3. 과반수로 결정하기보다 모두가 함께 동의하는 원칙을 갖는다.
4.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5. 서로를 별칭 별명으로 부른다. (민주적 소통에 좋은 장치다)
6. (이곳 공동체주택에선) 명절이 끝난 후 엄마들의 2박3일 여행이 있다. (아이들은 아빠들이 돌본다. 아빠들도 최근 여행을 시작했다.)
7. 공유를 일상화한다.

 
아파트는 평면이며 개인으로 흩어져있다. 공동체주택에선 오히려 각자의 개성이 또렷하고, 서로 교류한다. 공동체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체로 사는 것이지만, 훈련이 필요하다. 책읽는엄마책읽는아이작은도서관에서 지난 1월 29일
▲ 공동체 주택에선 공동체가 먼저, 공동체보다 자신을 아는 것이 먼저 아파트는 평면이며 개인으로 흩어져있다. 공동체주택에선 오히려 각자의 개성이 또렷하고, 서로 교류한다. 공동체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체로 사는 것이지만, 훈련이 필요하다. 책읽는엄마책읽는아이작은도서관에서 지난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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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에선 여러 공동체 주택들이 소개됐다. 류현수 건축가가 대표로 있는 자담(자연을 담은)은 이미 오래전부터 성미산학교, 남원작은마을, 푸른숲학교, 통일의집, 동다헌, 신영복 선생님 수목장, 전국국어교사모임사옥, 에코로바 사옥, 서울시성북한옥, 수요돌봄, 나주요와, 수리꿈학교 등 전국의 수많은 곳의 '공동체'가 사는 집들을 지어왔다. 그 집들에서 느낀 것은 그 집들이 한결같이 사는(거주하는) 이들의 개성과 꿈을 담고 있다는 거였다.

"저는 키가 크지 않고, 상부장을 이용한 적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상부장을 만들지 않고, 부엌에는 모든 식기와 도구들이 보이도록 만들었다.

"아이가 목욕하고 노는 걸 좋아해요. 아이와 같이 목욕하는 게 우리도 행복해요. 아이가 행복한 걸 가장 보고 싶죠."

그 집에는 넓게 욕실을 만들었다. 타일을 붙여, 일반 개인 욕조의 세 배쯤 크게. (이후 아이는 커서는 함께 목욕하는 것을 원치 않게 되었지만)

"베란다가 폭 1미터밖에 안 되면 쓸모가 적죠. 나는 베란다를 크게 만들고 그곳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습니다."

그 욕구 역시 수용됐다.

복층과 다락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어떤 이는 천장에 매단 침대칸 같은 곳에서 자고도 싶어한다. 그런 것도 반영해서 집을 만든다.

일점호화주의를 지향하다

류현수 건축가는 '일점호화주의(一點豪華主義)'를 소개해 주었다.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를 쓴 작가 데랴야마 슈지가 했던 말. 가장 큰 공리를 얻으려다 각자의 개성과 가치를 잃고 사는 세태에 던지는 묘수다.

 
책소개엔 20세기 일본의 문화예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되어있다. 일상의 소시민적 삶을 떨치자는 말씀.
▲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데라야마 슈지/이마고 출판사 책소개엔 20세기 일본의 문화예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되어있다. 일상의 소시민적 삶을 떨치자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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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보세요. 아이들 학교를 빠지지는 않아야 하고, 엄마아빠 휴가도 맞춰야하고, 돈도 아끼고, 이것저것 모든 걸 충족하려니 하루 갔다가 하루는 오는 여름휴가가 돼 버리죠. 옷은 많지만, 정작 어떤 행사에든 가려고 하면 입을 옷은 없거든요. 그건 여행과 옷뿐아니라 교육과 집을 선택하는 데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아이 넷을 류 건축가는 남한산 아랫자락에서 키웠다. 눈이 오는 날이면 아이 둘을 손에 잡고 한 시간씩 걸어올라가야 했던 생활. 그에겐 '자연'이 '한 점의 호화로운 삶'의 모습이다. 최근엔 막내아이에게 마지막 자연을 누려주려 양평으로 이사를 한다.

공동체주택의 공동체를 살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공동체주택엔 먼저 햇빛과 공기와 자연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그로부터 공동체주택의 '밝은 면' 혹은 '당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히 그 이면에는 '그늘'과 '현실'이 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 그의 책을 펼쳐 읽고, 나의 집과 그 안의 사람들을 번갈아 보아야 할 일이다. 나를 만드는 그 공간을 어떻게 바꾸어갈까 실천을 다짐하면서.      

마을을 품은 집, 공동체를 짓다 - 건축운동가 류현수의 소행주 이야기

류현수 (지은이), 예문(2019)


태그:#류현수, #공동체주택, #마을문화카페산책, #마을을품은집, #소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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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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