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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정원사로 살다가 간 노르웨이 시인 하우게를 접한 건 우연이었다. 크리스마스 성탄 예배를 드리고 아내, 딸과 함께 예전부터 가려 했던 완주 소양 오성한옥마을로 향했다. 종종 다니던 길이었지만 한옥마을에 가는 건 처음. 차를 타고 스쳐갔던 마을은 관광객의 발걸음들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살아 움직이게 했다.

오성한옥마을의 한옥들은 100년, 200년이 넘은 전북 고창이나 전남 무안, 경남 진주의 고택을 옮겨와 이축한 한옥들로 양지바른 산자락에 깃든 모습이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천천히 느릿느릿 걷다보면 금방 한 바퀴를 도는 작은 마을, 그곳에 북카페인 플리커 책방이 있다. 들어서면 일반 서점과는 다른 분위기, 그냥 안락한 소파에 앉아 몇 시간이고 창을 향해 들어오는 햇살을 등에 담고 책을 읽으며 커피 한 잔 하면 그저 행복할 것 같은 공간. 그곳에서 울라브 하우게를 만났다.

낯선 나라의 한 시인의 시집을 만나는데 뭐 그리 거창하게 이야기하나 싶겠지만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라는 제목처럼 시집이 눈처럼 하얗다. 표지에 시집 이름이 먼저 쓰여 있는 게 아니라 시인의 이름이 커다랗게 박혀 있는 게 색달라서 일까? 성글게 여기저기 아담하게 놓여있는 책방의 책들을 나무늘보처럼 움직이며 책마실을 하다 그저 하얀 표지가 눈에 끌려 집어 든 책, 그게 울라브 하우게이다.

 
 울라브 하우게의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 임선기 번역
 울라브 하우게의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 임선기 번역
ⓒ 봄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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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본 이름 울라브 하우게. 시를 읽기 전에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시를 읽고 이해하기 위해선 하우게에 대한 배경지식이 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것도 한 이유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하우게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 시를 번역한 임선기의 하우게에 대한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그는 노르웨이 울빅이란 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평생 숲과 함께 살다가 시를 쓰고 생을 마감했다. 그의 직업은 정원사였다. 과수 정원사로 일했다고 한다.

어릴 때 두 명의 형과 한 명의 누이를 차례로 잃었다. 5년 새에 세 명의 형제와 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또 정신병원에 여러 번 입원하기도 했다. 병원에서 그는 수많은 책을 읽었고 독학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익혀 시를 번역하기도 했다. 이 정도가 하우게에 대한 정보라면 정보다.

사실 소설도 그렇지만 시는 특히 시인이 살아온 삶의 경험이 많이 농축되어 나온 산물이다. 하우게의 시를 읽다보면 무척 짧고 단순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 쉬운 것 같은데 알쏭달쏭하기도 한다. 그때 그의 삶과 이력이 시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이제 내 마음이 말을 그친다
파도도 그치고
독수리들이 다시 날아간다
발톱이 피로 물든 채
-「이제 내 마음이 말을 그친다」 전문


사람은 매일 내면과의 대화를 한다. 그 속엔 삶의 온갖 것들이 들어있다. 그런데 스스로 주고받는 말들이 평온하지 못하다. 늘 번민과 갈등과 망설임 속에 살아간다. 그러면서 거센 파도에 부딪히고 깎이기도 한다. 그러다 내면의 평화를 찾는 순간 모든 것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간다. 사냥을 끝낸 독수리가 제 갈 길로 날아가듯이 말이다.

한 겨울, 눈
새에게 빵을 나눠준다
조용하니 잠이 깨지 않는다
-「한 겨울, 눈」 전문


시를 읽는다는 건 시인의 생각을 읽는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어쩌면 읽는 독자 자신의 마음을 덧대는 일이기도 하다. 이 시가 그렇다. 사실 이 시를 청소년들에게 보여주면 뭐라 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마 반응은 '에계~ 이게 뭐예요?' 하는 반응 쯤 아닐까.

주로 긴 시를 접하고, 비유니 상징이니 하는 것들 중심으로 배우다 보니 이 시는 시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처럼 나이 좀 먹은 사람에겐 작은 종이에 그린 수채화 소품이 연상된다.

한 겨울, 폭설이 내린 어느 날 새들이 먹이를 찾아 마당으로 들어서고 집주인은 자신이 먹던 빵조각을 나눠주는데 그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수묵화라면 하얀 백지에 먹물을 묻혀 점 몇 개 찍어 완성된 그림이랄까.

그렇다면 하우게가 지향하는 시의 세계는 어떨까? 아니 거창하게 세계라기 보단 그냥 모습이란 표현이 하우게와 더 어울릴 듯싶다. 이 두 편의 시에 답이 있지 않을까 싶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복잡한 사람이었다.
희곡작가이자 배우이자 시인이었으니.
그런데 그의 시는 너무 쉬워서
현관에 놓인 나막신처럼
바로 신으면 되었지.
-「베르톨트 브레히트」 전문


(전략)
(…) 좋은 시는
차향이 나야 해.
아니면 숲의 땅이나
갓 자른 나무 냄새가
-「나는 시 세 편 갖고 있네」 중에서


요즘 시는 읽기가 쉽지 않다. 예전의 시에 비해서 독자들이 편하게 읽지 못한다고 하면 과장일까만 어려운 건 사실이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많은 사람들이, 특이 청소년들이 시를 읽지 않은 요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단 하우게의 시는 복잡하지 않다. 간단하다. 쉽다. 그러면서 그 속에 생각거리를 음미하게 한다.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활동했던 브레히트 시를 '현관에 놓인 나막신처럼 / 바로 신으면 되었지'라고 말하듯 하우게의 시 또한 그렇다.

브레히트 시 '마리A의 기억'을 보면 하우게의 시처럼 구름, 나무 등의 시어가 자주 등장한다. 암튼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평생을 정원사로 일하며 나무와 함께 살다간 그의 시는 꾸밈이 없다. 숲의 냄새, 나무 냄새, 차향처럼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시를 읽다 이렇게 해도 아름다운 시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시집은 원어와 번역어로 이루어져 있다. 한쪽은 노르웨이어, 다른 한쪽은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뒤쪽엔 여백과 흑백사진으로 꾸며져 있다. 흑백사진을 보며 시인이 살다간 풍경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마지막으로 시의 표제이기도 한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를 읽으며 눈 내리는 저녁, 막대 하나 들고 정원을 오고가며 눈을 털어주고 안아주고자 하는 측은지심의 마음을 가진 한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눈이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에
서투른 창이라도 겨눌 것인가
아니면 어린 나무를 감싸 안고
내가 눈을 맞을 것인가

저녁 정원을 막대를 들고 다닌다
도우려고
그저
막대로 두드려주거나
가지 끝을 당겨준다
사과나무가 휘어졌다가 돌아와 설 때는
온몸에 눈을 맞는다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전문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울라브 하우게 (지은이), 임선기 (옮긴이), 봄날의책(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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