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강우일 주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강우일 주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역사는 갈지자로 왔다 갔다 할지언정 뒷걸음은 안 치죠. 1mm라도 전진합니다. 매 순간 인간이 휘젓고 분탕질하면서 주도하는 것 같지만 긴 눈으로 보면 하느님께서 역사를 이끕니다. 난장판을 치유하시고 회복시켜주시죠. 때로는 화가 나지만, 역사를 신뢰하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저 자신부터 타이릅니다."

강우일 주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가 확신에 찬 어조로 거듭 강조한 말이다. 그는 "경제적 양극화와 비정규직들의 박탈감 등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역사는 앞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경자년 새해에 희망을 가지고 용기를 내자"면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신년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7일 제주도 가톨릭회관 앞에서 직접 운전한 소형차에서 내리는 강 주교를 만났다. 그는 먼저 악수를 청하면서 "김병기 감독님, 김종술 기자님이시죠"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인터뷰를 위해 3명이 마주 앉은 곳은 오래된 회관 건물 3층에 있는 5평 남짓한 제주교구장실이었다. 회관 바로 옆에 우뚝 선 천주교 중앙성당의 규모와는 달리 소박했다.

[영화 <삽질>] "편법과 사기, 거짓으로 가득 한 4대강사업... 화가 난다"

이날 강 주교와 한 인터뷰는 감독인 나와 영화 주인공인 김종술 기자가 감사 인사차 요청한 만남이었다. 강 주교는 전날(6일) 제주 신성여자고등학교에서 영화 <삽질>을 관람했다. 그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가 주관한 공동체 상영으로, 4일부터 서귀포성당 등에서 총 4번에 걸쳐 진행했다.

"영화 <삽질>을 보면서 화가 났어요."

강 주교는 자리에 앉자마자 영화 이야기부터 꺼냈다. '성직자인 주교님도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냐'고 반문했더니, "4대강사업을 시작할 때인 10년 전이 떠올랐다"면서 "저에게 몰려와서 '강을 죽이는 게 아니라 나라를 살리기 위한 사업'이라고 강력하게 호소했던 사람들이 영화에 나와서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고 덧붙였다.

"결국 나쁜 짓을 저지르면 저렇게 된다는 생각을 했죠. (영화에서 4대강 부역자들이 카메라를 피해) 도망가고 화내는 이유는 자기도 부끄럽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죠.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강단에 서서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죠."

강 주교는 천주교 최고 의결기구인 주교회의 의장으로 재임할 때인 2010년 3월 "우리 산하에 회복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규모 공사를 국민적 합의도 없이 법과 절차를 우회하면서까지 급하게 밀어붙여야 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청와대와 한나라당 인사들이 그에게 달려왔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강 주교는 지난해 6월에도 생태환경위원회 명의의 성명을 내고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의 일부 보 해체 제안에 대해 '전면 해체'해야 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는 "엄청난 혈세를 강바닥에 쏟아붓고 소수 대기업에만 큰 혜택을 안겨 준 부당한 국가 운영을 바로잡는 정의의 실천, 국가 재정의 정상화, 미래 세대에 대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 성명은 다음과 같은 인용 문장으로 마무리됐다.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에제 47,9)

이런 강 주교에게 '영화에 나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처럼 주교님도 10년 넘게 4대강사업에 맞선 4대강 독립군이네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니, "4대강사업 초기부터 문제를 제기해 왔기에 그 사람들(4대강사업 주동자)에게는 가장 고약한 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강 주교는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여서 멀쩡한 강바닥을 뒤집고, 많은 사람을 죽여가면서 4대강사업을 벌였는데, 결국 정치권과 몇 십 조 원의 돈을 공사비로 받는 대기업 간의 보이지 않는 커넥션이 있을 것으로 의심했다"면서 "영화에서도 나오는 데,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낸 것이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영화를 본 뒤에 우리끼리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 '어떤 사람은 자녀의 대학교 표창장 때문에 6개월을 수사했는데, 4대강사업의 경우 어마어마한 불법의 구체적인 증거들이 있는데도 한 건도 조사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는 것은 미스터리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참, 이런 것이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강 주교는 "국민들이 꼭 보았으면 하는 영화"라며 "거짓과 편법을 통해 산하를 망친 사업의 진실을 알아야 다시는 그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2의 삽질] "쓰레기 섬 된 제주도에 제2공항 건설하면 안 돼"
 
 강우일 주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강우일 주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강우일 주교는 1974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1977년부터 서울대교구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을 보좌했고, 2002년부터 현재까지 제주교구장을 맡고 있다. 제주에서만 18년을 살았기에 누구보다 지역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다는 그는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제2의 삽질'로 규정하고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무엇보다 최근 제주도의 생태계가 급격히 파괴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제주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과 쓰레기들은 깨끗하게 분해돼서 바다로 배출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많아졌어요. 이로 인해 제주 연안 바다가 백화현상으로 죽고 있죠. 재작년에는 하수종말처리가 안 된 물을 바다에 흘려보내다가 적발돼서 중앙정부로부터 경고도 받았어요.

또 최근 제주 사람들이 먹는 지하 용천수도 말랐고, 남아 있는 물의 염도가 올라가고 있어요. 지하수층으로 바닷물이 유입되고 있는 겁니다. 결국 제주 미래세대의 생명수까지 우리가 절단을 내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제2공항을 만들어 연간 4천 만 명이 더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짠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죠. 가슴 아픈 일입니다."


현재 제주 제2공항 사업은 전략환경영향평가 절차 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공항 건설 예정지인 제주시 성산읍 일대가 '항공기 조류 충돌' 위험이 커 공항 입지로 부적절하다는 검토 의견을 밝혔다. 환경부는 이를 받아들여 국토부가 제출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보완 요청'을 한 상태다.

강 주교는 "모든 정부의 아킬레스건은 경제이고, 이런 삽질 경제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짜고, 지역에서 삽질하는 업자들과의 연계를 통해 선거 때 표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무분별한 개발이 아니라 자연을 살리는 데에 예산을 배정해 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이미 구축된 커넥션을 허무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개탄했다.

[주교의 쓴 소리] 불의와 한번 타협하면 전 생애동안 아무 말도 못할 것

강 주교는 그간 4대강, 제주 제2공항 문제뿐만 아니라 노후 핵발전소 폐기, 기후변화 대응 등 환경 현안에 천착해서 쓴소리를 내왔다. 그는 "지난 1세기 동안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유의미한 성과를 내왔지만, 인간을 포함한 지구 전체의 생태계가 공존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인지능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일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민주화를 다른 나라에 비해 우수하게 성취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경제적 부를 축적하려고 지구라는 행성을 심하게 훼손시키고 있어요. 이런 깨달음에 도달한 과학자도 늘고 있죠. 인간의 인권만이 아니라 동물의 권리, 식물의 권리 등 모든 피조물의 권리를 통합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인식의 단계에 올라와 있습니다."

강 주교는 "인류 문명사 전체를 볼 때 인간 중심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지구 전체의 생태계, 모든 생명과 공존할 수 있는 패턴을 만들고 배워야 한다"면서 "국민들에게 인식의 전환을 호소하고 연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 주교는 환경 현안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발언해왔다. 세월호, 쌍용차,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했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제주의 예멘 난민을 돕기도 했다.

지난해 성탄절을 기해 발표한 사목서한에서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고 권력을 위임 받은 의원들이 세계 최고수준의 연봉 1억5176만 원을 누리면서 생명을 죽이는 무기 구입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너무도 손쉽게 통과시키고 있다"고 군비축소를 촉구하기도 했다.

강 주교는 "쓴소리를 하고 싶은 사람도, 정치적인 센스를 가진 사람도 아니지만, 제주 4.3 때 국가가 저지른 범죄를 알게 되면서 사고의 틀이 많이 바뀌었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불의를 보고도 눈 감고 귀를 막는다면 하느님의 명을 무시하는 것이고, 불의와 한번 타협하면 전 생애동안 아무 말도 못할 것이라는 게 교종들의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사람을 죽이지 마라는 십계명을 이렇게 풀이하셨습니다. '너희는 옛사람에게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계명을 들었다. 그런데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형제를 바보, 멍청이라고 하는 것도 지옥에 빠지는 일이다.' 사람의 생명은 육체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답게 품위를 지켜주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십계명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우선해야 할 가치입니다. 남을 왕따시켜서 사람 구실을 못하게 해놓고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죠. 과거 그레고리오 교황은 '너희가 목자로서 양을 지켜야 하는 데 짖을 때는 짖어야 한다. 짖지 못하는 개는 쓸모가 없다'고 말씀하셨죠. 사회 불의에 대해 침묵하지 말라는 말씀이십니다."


강 주교는 '교회가 세상 일에 너무 간섭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단다. 그는 "SNS를 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저를 '종북 주교'라고 비판하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했다는 소리를 간접적으로 듣기도 했다"면서 "그냥 뭐,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간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새해 기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자"  
 
▲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 인터뷰
ⓒ 김병기

관련영상보기

 
강 주교에게 '경자년 한해를 시작하면서 올린 첫 기도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강 주교는 "작년 연말 크리스마스 때가 다가오면서 북미 관계가 불안하게 전개됐는데, 제발 국가 권력자들이 근시안적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하고, 하느님께서 남북 관계의 진전을 위한 역사를 주도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 이후에 남북, 북미관계는 굉장히 놀랄 정도로 진일보해서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그런데 예측불허가 주특기인 트럼프 대통령이 발목을 잡았죠. 하지만 동북아는 세계평화의 중심입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 관여하고, 중국과 일본도 지척에서 이해득실을 따집니다. 여기에서 평화가 이뤄지면 세계 평화에 크게 공헌할 수 있습니다."

강 주교는 "개인 관계도 그렇지만, 국가 대 국가와의 관계도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면 관계 정상화나 화해의 출발점을 잡을 수 있다"라면서 "미국은 당장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하는데, 왜 북한이 수십 년 동안 핵 개발에 매달려 왔는지를 대인의 차원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경제의 몇 십 배인 남한과 몇 백배의 힘을 가진 미군이 지척에서 어마어마한 군사 훈련을 하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그래서 수십 년 동안 핵에 매달려 왔고 대륙간탄도미사일도 개발한 겁니다. 그걸 하루아침에 버리라는 건 목을 조르는 일이죠. 비핵화가 절대 명제라고 해도 북한 스스로 살아갈 가망성을 보여주면서 핵무기를 포기시켜야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전부 아니면 제로라는 식으로 협상하는 건 대인답지 못한 태도죠."

강 주교는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이 탐탁지 않게 생각하더라도 북한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메뉴를 제공하면서 용기를 가지고 남북관계에 임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주교에게 마지막으로 새해 벽두부터 절망하는 이웃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요청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듭 말하지만 역사는 앞으로 전진합니다. 엄청난 사회적 변혁의 물결이 몰아쳐 왔을 때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집단 지성을 발휘해 왔습니다. 그 때 기무사에서 5.16 군사쿠데타와 같은 희한한 생각을 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를 강행하지 못한 건 국민의 수준이 더 이상 그런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겁니다.

경제 양극화가 진전되고 비정규직들의 박탈감이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지만, 역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용기를 내어주셨으면 합니다. AI 같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면서 일자리를 뺏어가고 있지만,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입니다. 역사를 주도하시는 분이 우리에게 솟아날 구멍을 뚫어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급하게 생각해서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주 빅뱅이 일어난 지 138억 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아득한 시간을 거쳐서 우주가 빚어졌고 그 중 딱 하나밖에 없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류가 문명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건 1만 년도 안 됩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기저귀도 떼지 못한 젊은 나이입니다. 큰 시야로 역사를 보면서 희망을 가지고 삽시다."

댓글2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시민기자들과 함께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누구나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