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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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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김영재(92) 어르신은 1999년 3월부터 2020년 1월 현재까지 20년간 지리산 아래 구례군 하사마을 사거리의 꽃밭을 가꾸고 계십니다.

새로 태어난 손녀딸 생일을 기념하여 귀목나무를 심었다 하니 그 손녀딸도 이제 어엿한 숙녀가 되었고, 중년이었던 어르신도 이제는 백발의 노년이 되었습니다.
  
'귀목나무를 왜 심으셨느냐'는 질문에 "귀한 사람들이 앉아 쉬어 갈 수 있는 그늘을 만들고 싶었다"는 현자의 대답을 하십니다.

"남의 일에 관심 많은 시골 사람들이 그냥 보고만 있었겠습니까. 뭐 하려고 그 비싼 나무를 나라 땅에다 심느냐, 그걸 심으면 돈이 되는가, 떡이 나온 단가, 참말로 할 일도 없는 양반일세…"

이렇게 남이야 혀를 차고 입방아를 찧어도 대한민국 국가유공자 어르신은 큰비가 오거나 경보 방송이 나오는 궂은날을 빼고는 귀목나무 아래로 나와 돌 의자를 만들고 주변 땅을 개간하며 꽃씨를 뿌렸습니다. 오늘도 집에 있는 장군통이나 옛날 벤또인 도시락, 항아리, 나무뿌리 등속을 이용해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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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월이 무려 20년, 누가 돈 주고 시켰다면 진즉 사표 내고 본인 좋아하시는 길로 나셨을 산천이 두 번이나 바뀐 오랜 시간입니다. 얼마 전 뵐 때는 눈빛도 초롱초롱하시고 사람도 쉬 알아보셨는데 새해 들어 만난 그는 손도 떠시고 말씀도 어눌해지셨습니다. "내 즐거우니까 이렇게 하고 있지, 죽으면 국가유공자 묘역으로 가니 아무 걱정이 없어.'' 오늘까지 할머니가 삼시 세끼 따뜻한 밥해줘 호강하고 살았다" 말씀하시는 어르신이 이 자리에 서 계실 날도 많지 않구나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꽃밭과 귀목나무를 돌보게 하기 위해 자녀들에게도 당부하여 내락을 받은 상태이고 본인 용돈을 아껴 얼마간의 기금도 마련하여 유언처럼 건네주셨다 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본인이 만든 꽃밭에 내력을 남기기 위해 40만 원을 들여 돌 표지석 하나를 만들고, '1999. 3월, 광산 김씨 김영재, 귀목나무 심다'라고 새겨 놓으셨습니다. 20년을 한결같이 꽃밭을 일구신 어르신, 하동으로 가는 19번 국도 옆 하사마을 입구를 지날 때마다 곡괭이나 삽을 들고 귀목나무 아래 계시던 그분을 먼발치로 볼 때마다 봄날 같은 따뜻한 온기가 돌곤 했는데 하늘의 명령 같았던 그 일도 거의 끝나가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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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던 귀목나무는 이제 청년이 되었습니다. 제법 밑동이 우람해졌고 푸른 잎으로 무성한 그늘을 내주고 있습니다. 그 그늘 아래 정갈하게 놓여있는 돌의자에 앉아 보시라 했더니 겸연쩍은 모습으로 앉으시며 잘 부탁한다 하십니다. 이런 광경, 이런 모습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조금만 더 그 자리에 계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긴 세월이 흐르고 그 귀목나무가 더 커졌을 어느 뜨거운 여름날, 이 그늘에 앉아 '꽃보다 귀한 분이 계셨지, 그분이 바로 꽃이었지' 회상하며 그분을 기억하는 한 목격자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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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래, 섬진강가 용정마을로 귀농(2014)하여 몇 통의 꿀통, 몇 고랑의 밭을 일구며 산골사람들 애기를 전하고 있는 농부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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