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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 C. 근교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워싱턴 D. C. 근교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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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가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초기 때인 2003년 가을, 그때 나는 '의를 좇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한밤중, 해외의 한 독자로부터 백범 암살범 안두희를 10여 년 추적한 협객 권중희 선생에 대한 취재를 부탁받았다.

마침 그분과 동향인 안동 임청각 주인 이항증 선생을 통해 서대문독립공원에서 만났다. 그리하여 "내 평생소원은 백범 암살 배후를 밝히는 일"이라는 기사를 연재한 바 있다. 그분의 마지막 소원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가서 원 없이 문서를 뒤져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 기사가 나가자 누리꾼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성금을 보내주었다. 그 성금과 함께 미국 동포가 도와주겠다고 하여 이듬해인 2004년 1월 31일 권 선생님과 나는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미국 도착 이튿날인 2004년 2월 2일, 자원봉사자 주태상 유학생의 안내로 워싱턴 D. C. 근교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 첫 발을 디뎠다.
 
기자와 고 권중희 선생(오른쪽)이 NARA 5층 사진자료실에서 자료를 검색하고 있다.
 기자와 고 권중희 선생(오른쪽)이 NARA 5층 사진자료실에서 자료를 검색하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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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은 최신 6층 건물로, 그 규모도 엄청 컸지만 그곳에 소장한 수백만 파일의 각종 기록물의 방대함을 보고는 탄복하였다. 그날 5층 사진자료실에서 비밀 해제된 한국 관련 사진(주로 6·25전쟁 사진)들을 들춰보자 반세기가 지난 그때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떠올랐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한국전쟁)이 일어날 당시, 나는 여섯 살 난 소년이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길고도 무더웠다. 하늘에서는 전투기의 굉음과 폭격소리로, 산과 들에서는 멀리서 가까이서 들려오는 대포소리와 기관총소리로 귀청이 멍멍했다. 논이나 밭, 들길에는 뽕나무 채반에 누에처럼 널브러진 시체들, 전투기들의 융단폭격으로 온전한 건물 하나 없이 온통 폭삭 주저앉은 도시와 마을… 이런 지울 수 없는 장면들이 또렷하게, 또는 희미하게 여태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미군이 사상 처음으로 서울에 진주하다(1945. 9. 9.)
 미군이 사상 처음으로 서울에 진주하다(1945. 9. 9.)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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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가 내려간 조선총독부 국기게양대에 태극기 대신에 성조기가 게양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해방이 된 것인지?(1945. 9. 9.).
 일장기가 내려간 조선총독부 국기게양대에 태극기 대신에 성조기가 게양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해방이 된 것인지?(1945. 9. 9.).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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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연재하다

특히 1945년 9월 9일 중앙청 국기게양대에서 일장기가 내려가고 미군들의 경례 속에 미성조기가 게양된 장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 나는 이들 사진들을 모두 우리나라에다 옮겨놓고 전쟁을 모르는 후세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다행히 자료실에서 사진 스캔은 허용되기에 동행 주태상 씨의 스캐너를 빌려서 (노트북은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의 것을 빌려갔음) 2004년 2월 14일부터 그해 5월 4일까지 오마이뉴스에 <사진으로 본 한국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여 폭발적인 성원을 받았다.

연재 후 눈빛출판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이미지>라는 제목으로 사진집을 펴낸 바, 역시 대단한 성원을 받았다. 그리하여 제1차 [2004. 1. 31. ~ 3. 17.(46일간, 511매)] 방미에 이어, 제2차 [2005. 11. 29. ~ 12. 10.(12일간, 785매), 제3차 [2007. 2. 27. ~ 3. 10.(12일간, 658매), 제4차 [2017. 10. 22. ~ 10. 29.(8일간, 380매)] 등 모두 4차 78일간 미국에 머물면서 모두 2천3백여 점의 사진을 입수해 왔다.

나는 이 사진들을 그동안 <오마이뉴스>를 통해 다섯 차례에 걸쳐 공개, 연재해 왔다. 제1차 <사진으로 본 한국전쟁> (2004. 2. 14.~2004. 5. 4.) 총 30회, 제2차 <한국전쟁, 그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복원> (2017. 6. 13.~2017. 9. 27.) 총 30회, 제3차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 (2017. 10. 16.~ 2018. 7. 1.) 총 50회, 제4차 <NARA의 북한 측 노획물> (2018. 12. 13. ~ 2019. 1. 21) 총 10회, 제5차 <박도 기자의 NARA 앨범> (2019. 7. 26 ~ 2019. 12. 26.) 총 45회 등, 모두 165회를 연재한 셈이다.
 
기총소사로 쓰러진 피란민 시신들(1950. 8. 25.).
 기총소사로 쓰러진 피란민 시신들(1950. 8. 25.).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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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자가 앞서 간다"

우리나라의 자료를 다른 나라에 가서 찾는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한국의 귀중한 자료는 국내보다는 미국, 일본,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 더 많이 있다. 고대사는 중국에, 근대사는 일본에, 근 현대사 자료는 미국 · 러시아 · 영국 · 프랑스 · 중국 · 일본 등에 산재돼 있다.

우리나라의 자료를 다른 나라가 더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단적으로 지난날 우리의 국력이 그만큼 약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가 기록을 중요시하지 않은 탓도 있고, 소장한 자료조차도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기 위해 훼손하거나 파기한 탓도 있다.

"기록하는 자가 앞서 간다"는 말은 진리다. 선진국일수록 기록에 매우 철저하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기록을 능가할 수 없다. 고려 때 청자를 빚었던 도공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그 비법이 끊어지고 말았다. 진실한 기록, 한 장의 사진은 역사의 물줄기를 틀기도 한다. 
 
  사람도 짐승이 된다. 한 인민군 병사가 유엔군 총구 잎에서 짐승처럼 기어오면서 투항하고 있다(1951. 9. 20..
  사람도 짐승이 된다. 한 인민군 병사가 유엔군 총구 잎에서 짐승처럼 기어오면서 투항하고 있다(1951. 9. 20..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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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백성들은 조상이 남긴 기록을 보고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해야 할 가장 큰 책무는 역사의 진실을 남기는 일이다. 외람되지만 나는 이런 소명으로 이 사진들을 애써 찾아왔다.

내가 수집한 사진자료들은 대부분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 소재의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과 버지니아 주 남단 노퍽(Norfolk)의 맥아더기념관에서 수집한 것과 재미 사학자 고 이도영 박사의 수집품 등이다.
 
버지니아 주 노퍽(Norfolk)의 맥아더기념관
 버지니아 주 노퍽(Norfolk)의 맥아더기념관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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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도영 박사(오른쪽)와 기자(맥아더기념관 아카이브 앞, 2004. 2. 25.).
 고 이도영 박사(오른쪽)와 기자(맥아더기념관 아카이브 앞, 2004. 2. 25.).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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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사료로 쓰이기를

내가 감히 이 일을 할 수 있는 그 원동력은 제1차 방미를 위해 성금을 보내주시고 성원해 주신 <오마이뉴스> 독자들 덕분이다.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줄곧 오마이뉴스에 연재해 왔다.

미국 현지 사정에도 어둡고, 영어에도 서툰 내게 길잡이가 돼 주신 재미동포 박유종(사학자 백암 박은식 선생 손자) 선생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곁에서 도와주신 고 이도영 박사, NARA를 자주 드나드는 재미 방선주 박사, 이흥환, 이선옥 연구사님, 그리고 이재수 씨를 비롯한 숱한 재미동포 자원봉사자에게도.
  
박유종 선생(왼쪽)이 영문사진설명을 기자에게 번역해 주고 있다(NARA 5층 사진자료실).
 박유종 선생(왼쪽)이 영문사진설명을 기자에게 번역해 주고 있다(NARA 5층 사진자료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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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집해 온 이 자료들이 남북의 사학자, 언론인, 예술가들이 6·25전쟁 당시를 이해하는1차 자료로 사용되고, 아울러 6·25전쟁 비망록이 되기 바란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과 오마이뉴스 편집자에게 다시 한 번 더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리면서 이번 회로 '박도 기자의 NARA 앨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태그:#6·25전쟁,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 #맥아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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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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