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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키시마호가 침몰된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시 내해.
 우키시마호가 침몰된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시 내해.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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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토하는 심정

"오늘 우리들은 애끓는 마음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곳 마이즈루시 우키시마마루호(浮島丸) 순난(殉難) 추도비에 섰습니다.

일본국은 대한의 아버님들을 세 번이나 죽였습니다. 첫 번째는 강제징용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대한의 청년들을 강제로 붙잡아다가 모진 학대와 고문을 가하며 전쟁의 도구로 이용한 것. 두 번째는 일본국의 패망으로 꿈에도 그리던 내 조국,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대한의 아버님 7500여 명(일본 측 주장은 3725명)들을 여기서 보이는 바로 저 바다에 빠트려 죽인 것. 

세 번째는 아직도 일본국이 그들의 만행에 대해 진정어린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저희 자식들의 불효를 어디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일본을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잊을 수도 없습니다."


지난 4일 오후 5시 30분,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시 앞바다 우키시마마루호 순난 추도비에 선 우키시마호 사건 한인희생자 유족대표 김진국씨는 75년 전인 1945년 8월 24일 이곳에서 희생된 아버지 영령 앞에서 피를 토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지난 4일 일본 교토 마이즈루 시 순난(殉難)의 비 앞에서 우키시마 호 희생자 추도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 4일 일본 교토 마이즈루 시 순난(殉難)의 비 앞에서 우키시마 호 희생자 추도제가 열리고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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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키시마호 사건 한인 희생자 추도제에 참석한 유족대표와 관계자들.
 우키시마호 사건 한인 희생자 추도제에 참석한 유족대표와 관계자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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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사장 김용덕)과 민족화해협력국민협회의(대표상임의장 김홍걸) 공동주최로 지난 4일과 5일, 일본 현지 교토부 마이즈루시 순난의 추도비 앞과 도쿄 유텐지 납골당에서 우키시마호 사건 한인희생자 추도제가 엄숙히 치러졌다.

이 추도제에는 유족대표 12명(김영채, 김정호, 김진국, 박두병, 서준호, 신광일, 이중기, 임성규, 조영제, 전승열, 최덕섭, 한영용)과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김홍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운영관리국장 이재철, 무형문화재 이우선씨, '장구와 소리' 대표 오단해씨 등 40여 국내 인사와 일본 현지 지원단 8명 그리고 현지 일본인 자원봉사자 다수가 참석했다. 
 
 순난의 비 옆에 전시된 침몰 전의 우키시마호 사진.
 순난의 비 옆에 전시된 침몰 전의 우키시마호 사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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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浮島丸) 폭침 사건은?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경, 마이즈루만(舞鶴灣)에서 우키시마호가 갑자기 폭발하여 조선인 수천 명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됐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패전 후 아오모리 현(靑森縣) 오미나토(大湊) 해군경비부는 오미나토 지구의 방공호, 지하창고, 비행장, 철도 건설 등에 강제동원했던 수천 명의 조선인에게 8월 18일 조선으로 귀환할 것을 지시하고, 이들을 해군 특설운송선인 우키시마호에 승선시켰다. 승선자는 4000여 명이라는 주장과 그보다 훨씬 많은 7000여 명이었다는 주장 등이 있으나 정확한 승선자 명단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8월 22일 오미나토를 출발한 우키시마호는 부산을 목적지로 두고 해안을 따라 남하하다가 교토부(京都府)에 속한 마이즈루 만에서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로 침몰했다. 사건 직후 신속한 구조와 생존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일본국은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조선인 524명, 일본인 25명만이 사망했다고 발표한 채 사건을 흐지부지 처리했다.

인양된 사체는 인근 해안과 마이즈루해병단 부지에 임시매장됐다. 1950년, 1954년 선체 인양작업 때 수습된 유해와 함께 화장돼 일본 정부가 보관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폭발 원인에 대해서도 정확한 조사와 규명을 하지 않아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한 폭발사고였다는 주장(일본 정부)과, 조선인을 학살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폭침시켰다는 일부 생존자 및 유가족의 주장이 계속 대립하고 있다. -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자료 참조

우키시마 호 사고 현장에서 열린 추모제 
 
 우키시마호 사건 현장 바닷가에 세워진 순난(殉難)의 비.
 우키시마호 사건 현장 바닷가에 세워진 순난(殉難)의 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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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4시 30분 우키시마호 순난 추도비 앞에서 열린 추도제는 장선영 한국경제TV 아나운서의 사회로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 그리고 추모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하얀 비단 옷을 입은 무형문화재 이우선씨는 '장구와 소리' 대표 오단해씨의 징소리에 맞춰 유장하고도 구성진 살풀이 춤을 선보였다. 그의 춤사위는 75년 전 영문도 모른 채 수장된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의 억울하고 외로운 넋을 기렸다.

김용덕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이재철 국장 대독)은 추도사에서 "아직도 고인들의 유해와 영령들을 고국으로 모시지 못한 데에 대한 사죄와 함께 진상 규명,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의 정립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김홍걸 민족화해협력국민협회의 대표상임의장은 "지금 우리 앞에 평화롭게 보이는 저 바다는 75년 전인 1945년 8월 24일 희망을 안고 귀국 길에 올랐던 강제동원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폭사로 순장된 한이 맺힌 바다다"라며 "민화협은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그분들의 유해와 영령들을 고국으로 모시는 일에 앞장서겠다, 이미 북한 측과도 이 문제에 합의한 바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추도사를 이어갔다. 
 
 원혼들을 위로하는 살풀이 춤 공연.
 원혼들을 위로하는 살풀이 춤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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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난의 비를 세운 일본인 가츠히코 씨
 순난의 비를 세운 일본인 가츠히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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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과거사 청산 문제는 간교한 일본의 남과 북을 따로따로 이중으로 대응하는 '갈라치기'를 하지 못하게 대처하겠다. 이제 이 일은 시작으로 일본 측으로부터 진정어린 사과와 그에 다른 배상을 받는데 노력하는,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에 힘써 노력하겠다."

유족대표 김진국씨의 애끓는 추도사가 끝나자, 현장에 참석한 유족들과 내빈들의 헌화, 분향, 헌주가 있었다. 추도제 끄트머리에 '순난(殉難)의 비(碑)'를 세운 일본인 가츠히코씨의 비 건립 뒷이야기를 풀어놨다. 그가 "마이즈루시에서 우키시마호 순난자를 위한 추모모임이 결성돼 해마다 8월 24일에는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를 지낸다"라고 설명했다. 

도쿄 유텐지 추도제... 그리고 김홍걸의 '구상'
 
 도쿄시 메구로구 유텐지(祐天寺). 이곳 남골당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희생된 한국인 군인 및 군속, 우키시마호 사건 희생자의 유골이 안치돼 있다.
 도쿄시 메구로구 유텐지(祐天寺). 이곳 남골당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희생된 한국인 군인 및 군속, 우키시마호 사건 희생자의 유골이 안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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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인 11월 5일 오후 3시. 강제동원 유족대표 및 한국에서 온 관계자들은 도쿄시 메구로구에 있는 유텐지(祐天寺)를 찾았다. 이곳 납골당에 안치된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희생 한국인 군인 및 군속, 우키시마호 사건 희생자 영령을 위한 헌화와 분향이 있었다.

당초 이곳에는 한국인 희생자 유골 및 영령 2000여 위(位)가 수습 안치돼 있었다. 이후 한일 정부간 합의로 유골 송환이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도 700위가 남아있다. 그중 275위는 우키시마호 사건 희생자들이고, 나머지 425위는 북녘 출신 한국인 희생자들이다. 북녘 출신 희생자들은 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이뤄지지 않아 여태 고국에 봉환되지 못하고 있다. 

이날 한국 측 참배객을 영접한 유텐지 추모모임 관계자들은 "이곳에 있는 모든 유골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 지역 주민인 사토 레이지씨는 "매일 아침 이곳에 와서 참배 분향한다"고 말해 유가족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기자와의 대담에서 "가능한 일본에 있는 강제징용노동자의 유골을 모두 국내에 봉환해 북한 측과 협의하고, 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을 만들어 그곳에 영구히 모시고 싶다"라는 복안을 내놨다.
 
 추도사를 하는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
 추도사를 하는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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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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