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저는 1994년 태안화력발전소에 입사해서 2010년까지 한전산업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한국발전기술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입니다. 그 사이 협력사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일어났고 사망사고 또한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용균 사망 사고 이전까지, 현장에서는 제대로 목소리 한번 내지 못했습니다. 그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조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사고 이후 현장에서 재발 방지를 위해 설비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 역시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생활로 돌아와, 사고는 남 일이라 생각하고 일만 했습니다. 우리 회사, 우리 동료 더 나아가서는 나만 아니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저뿐 아니라 많은 노동자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들이 왜 그런 마음이 될까요?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어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설비개선을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노동자들에게는 위험한 일을 거부할 권한이나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시스템과 갑과 을에 관계에 있는 하청 노동자였기에 그저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해 왔던 것 같습니다.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사고 직후인 12월 11일 오전 비정규직 100인 기자회견.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사고 직후인 12월 11일 오전 비정규직 100인 기자회견.
ⓒ (사)김용균재단 준비위원회

관련사진보기

 
2018년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우리는 24살 김용균을 억울하게 떠나보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사고 전에 요구했던 설비개선만 해줬더라면 그런 끔찍하고 애통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일을 생각만 하면 안타깝기 전에 먼저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설움에 한 번 울고, 갑을관계에서 을이라는 신분으로 또 한 번 울고, 용균이를 떠나보내면서 또다시 울부짖다가 우리는 회사 밖으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2018년 12월 10일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사고 이후 지금의 현장은 진작에 이렇게 이루어지고 설비개선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사망사고가 일어나기 전 현장에서는 30년 전부터 계속돼 온 잘못된 관행이 판치고 있었습니다. 문제가 생겨 설비개선을 요구해도, 언제 될지도 모르고 마냥 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상탄을 못하게 생겼으면 그때나 고쳐줄까?' 자조하며, 현장 노동자들은 늘 불안한 작업현장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저희 노동자들은 20대 중반이 다수이며 사회 초년생들도 많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발전소에서의 근무경험은 처음인 경우가 90%가 됩니다. 현장감독이나 직장 상사가 시키면 당연히 우리가 해야되는구나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경험있는 노동자가 낙탄이 심해 시설개선을 요구해도 묵살되기 일쑤였던 것입니다. 

당장 시설을 고쳐야 된다고 말해도, '언제 될지 모르니 삽으로 치워라'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원래 우리의 주 업무는 벨트 가동 전.중.후 안전점검과 현장 운전이었습니다. 낙탄처리는 낙탄처리원이 있고 우리는 긴급시에만 치우는 것으로 되어있었지만, 낙탄이 하도 심해 현장 운전원들의 주 업무가 낙탄처리가 되다시피 했던 것입니다. 김용균 노동자도 그렇게 일하다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래도 김용균 사망사고 이후 현장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습니다. 현장의 우리 노동자들 목소리가 원청 감독관들이나 직장 상사에게도 조금씩 반영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변화가 별로 없는 것 아니냐, 단순한 설비개선만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잘 알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서부발전 태안화력사업소는 현재 노.사.정 안전 설비개선 TF팀을 운영하고 있고, 세부적인 개선 사항들은 분과 회의를 통해 조금씩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설비개선 요구 사항을 제출하고, 원청에서도 TF팀과 함께 추가로 개선이 더 필요한 곳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김용균 노동자가 사고 난 곳은 걸어서 15층 이상 오르내리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곳인데, 원청 한 임원은 이번에 사고 지점에 와 보고 이런 곳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게 말이 되냐며 엘리베이터 추가설치를 지시하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100% 현장 노동자가 만족하기에는 부족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달라진 것은 분명한 성과입니다. 처음에는 원청에서 우리가 설비개선을 낸 자료들을 다 들어줄까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지탄 받는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제스처만 하겠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작업중지 해제 이후 현장의 개선 사항들이 하나둘 진행되고, '이 구간 개선은 언제까지 하겠다'는 구체적인 서류를 가지고 와서 매 회의 때마다 보고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회의 때 같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는 것이 최우선인지를 의논하고, 새로운 개선사항들을 추가로 요구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주는 모습이 놀랍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원청 간부들이 이제야 현장을 처음 보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기도 했습니다.     
 
 2019년 2월 9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열린 고 김용균 노동자 영결식
 2019년 2월 9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열린 고 김용균 노동자 영결식
ⓒ 백승호

관련사진보기

 
설비개선을 하기 위해서는 법제도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 사항은 개선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단순한 개선 사항은 바로바로 나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젊은 친구의 삶과 맞바꾼 이 상황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제대로 된 설비개선을 통해 현재와 미래에 들어 올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두 번 다시는 제2, 제3의 용균이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선배 노동자들이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 김용균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비정규직 철폐와 안전한 발전소 현장을 만들려고 44명이 투쟁에 나섰던 지난겨울이 생각납니다. 결국 김용균의 억울함도 특조위에서 풀렸고, 현장의 설비개선도 조금씩 실행에 옮겨지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김용균 재단은 단순한 재단이 아닙니다. 김용균 재단이 이 사회의 비정규직들이 죽음의 현장이 아닌 웃음꽃이 피는 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서러움과 차별과 멸시를 뿌리 뽑을 수 있도록 함께 하는 작은 촛불이 되어 줄 거라고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10월 26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이 출범합니다.
후원회원 가입 http://bit.ly/김용균재단
김용균재단 홈페이지 http:/yongkyun.nodong.org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김용균투쟁을 이어갑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