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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 검찰의 추가 기소를 끝으로 사법농단에 가담한 법관 14명이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이 공판 준비를 거쳐 5월 29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는 '외관상 공정성' 확보와 공정한 재판을 위해 특별재판부 설치를 주장해왔지만, 국회에서 논의가 제대로 되지 못한 채 사법농단 가담자들의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민변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두눈부릅 사법농단재판 시민방청단'(애칭 부릅단)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 1심 동안 운영합니다. 시민방청단은 함께 근무했던 법관이 전·현직 법관을 재판해야 하는 상황에서 '셀프재판' '제 식구 감싸기 재판'이 되지 않도록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입니다. 

시민방청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전·현직 법관들에 대한 재판을 현직 법관들이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모든 재판을 방청하기 어렵더라도 증인신문이 있거나 중요한 사안에 대한 실체규명이 이뤄질 때 월 1~2회 출동합니다. 그리고 재판장의 모습을 시민의 눈으로 기록하고 소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9월 25일 여섯번째 부릅단 활동은 방청에 참여한 부릅단 민선영씨가 소개합니다. - 기자 말


9월 25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서관 앞에는 검은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햇볕은 뜨겁지만 바람은 선선해 '날이 참 좋다'는 감상을 느끼기도 전에 씁쓸함이 먼저 찾아왔다. 2017년 2월부터 시작된 검찰의 내부 폭로가 3번째 가을을 맞이했음에도 고작 1심 초반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신분증을 챙겨 재판장으로 향했다. 검문관은 6회 차를 맞이한 '두눈부릅 방청단'을 익숙하게 들여보냈다. '두눈부릅 방청단'과 관련된 작은 손피켓이나 깃발, 스티커도 눈에 보이지 않자 쉬이 들여보낸 듯했다. 재판장에 반입할 수 있는 물건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노란색의 옷만 입어도 입장이 불가했던 세월호 재판처럼 양승태 재판 역시 '두눈부릅 방청단'의 스티커는 물론 스티커가 붙은 필기도구조차 반입을 못 하도록 했다. 법리 말고는 그 어떤 의사 표현도 허락지 않는 작은 세계에 입장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법리로만 대화하는 작은 세계라는 인상이 깨지기 시작했다. 재판 예정 시간보다 일찍 들어온 재판장은 이미 도착해있던 '피고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증인' 홍승면 현 판사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홍 판사 또한 법정에 입장하자마자 '피고인' 박병대 전 대법관에게 고개를 숙였던 참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감시해야 하는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법리로서만 대화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다. 이해관계와 연결고리에서 벗어난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라면, 그들이 가진 특권을 감시하는 시민의 눈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다.

재판에 앞서 재판장은 조심스레 증인으로 출석한 홍승면 판사에게 다음 증인 일정을 물었다. "그날은 제가 진행 중인 재판이 있어 참석할 수 없습니다." 2018년 12월 대법원은 사법농단에 관련되어 법관징계위원회에 회부된 13명의 판사 중 8명에게 징계를 내렸으나, 홍승면 판사는 무혐의로 면죄부를 받았다. 그 결과 법리를 어그러뜨린 무리 중 하나임에도 판사로서 여전히 판결을 내리고 있다. 
  
홍승면 판사는 2013년부터 2016년에는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으로 2016년부터 2017년에는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으로 지냈다. 재판연구관은 대법관 13인의 판결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이다. 재판의 독립성을 위해 법원행정처와는 접촉해선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사법농단의 핵심인 재판 거래 의혹은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는 판사들과 재판에 관련된 '문건'을 공유하며 재판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다.

이날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홍승면 판사에 대해 '문건'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누가 작성했는지를 확인하는 심문이 이어졌다.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사건,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에 대해 법원행정처와 이메일로 주고받은 내용이 증거로 제출되었다. 홍 판사는 '참고나 하라'며 받은 것들이라고 했다. 상급자가 건네는 업무와 관련된 자료는 참고를 넘어서 그 기조를 따르라는 뜻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이 모든 일을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여기는 증인의 태도는 뻔뻔했다.

홍 판사는 "질문의 취지를 모르겠습니다"라고 여러 차례 대답했다. 이는 전형적인 회피형 대답인데, 그럴 때마다 검사는 아주 잠시 침묵을 하거나 한숨을 쉬곤 했다. 오죽 답답했으랴. 검찰 측 질문의 의도가 드러날 때면 변호인 측에서는 "유도신문은 안 된다, 저렇게 질문하지 말라"며 제지했다. 판사는 그때마다 변호인단의 요구를 받아들었다. 검사는 질문을 바꾸어가며 재차 물었지만 대답은 역시나 같았다.

"질문의 취지를 모르겠습니다."

'질문의 취지를 모르겠습니다'라는 답변은 법리를 가장 잘 아는 판사들의 가장 영리한 대답이었다. 그 앞에서는 그 어떤 심문도 무력해졌다. "네"라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재차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증인이자 판사였다. 법정의 가장 높은 곳이 아닌, 피고인석과 증인석에 앉아있는 판사들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꼿꼿하게 펴고 앉아 있는 자세와 지지 않으려는 말투에서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겐 사법의 굴욕적인 역사와 무너진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방청 중 검찰의 질문과 증인의 답변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재판 전 검찰 측에서 준비한 주심문을 판사와 변호인단에게 공유한다. 이미 공유된 주심문과 증거 자료를 함께 보다 보면 마이크를 대지 않고 이야기할 때도 있다. 말의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재판을 모니터링하는 기자들이 소머즈(귀가 밝고 작은 소리도 잘 듣는 사람을 이르는 말)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들만의 리그로 일컬어지는 닫힌 법정이 아니라 시민에게 공유되는 열린 법정의 모습은 무엇일까,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이날 재판은 증인 신문으로만 진행되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끝이 났다고 한다. 참 더디다. 대체 언제쯤 법원은 사법농단이라는 얼룩진 과오를 스스로 씻어낼 수 있을까. 우리는 그때까지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수 있을까. 우리는 더 이상 양승태 재판부의 그늘 속에서 헤맬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필자는 '두눈부릅 사법농단재판 시민방청단'의 일원인 시민 민선영님입니다.
시민방청단 신청하러가기>> http://www.peoplepower21.org/Judiciary/163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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